[폴리뉴스=윤청신 기자]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에서 좌충우돌 동거 라이프를 시작한 4인방 박원숙과 문숙, 혜은이, 김영란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는 혼자 사는 중년 여자 스타들의 동거 생활을 통해 중장년 세대가 직면한 현실과 노후 고민에 대해 가감없이 이야기하고, 서로의 상처와 고민을 함께 나누며 위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5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2'(이하 '같이 삽시다2')에서는 문숙이 박원숙, 혜은이, 김영란 등 동거 멤버들과 또 다른 추억을 쌓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문숙과 동거 멤버들은 가구 조립에 도전했다.

박원숙이 가지고 온 조립형 가구를 본 문숙은 "(다 만들어진) 선반을 갖고 와야지. 왜 이걸 가져와? 해주는 사람을 데려와야 하는 거 아니야?"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직접 선반 조립에 나선 네 사람은 설명서에 쓰여 있는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며 돋보기를 꺼내 들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우여곡절 끝에 선반을 완성한 네 사람은 행거 조립에도 도전했다. 문숙은 "이건 눈 감고도 해"라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행거는 문숙의 활약으로 빠르게 완성되었으며 문숙은 "나 천재인가 봐. 더 사오시지 그러셨어요? 밤새도록 할 수 있어. 만들어서 팔자"라며 가구 조립 사업을 제안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구 조립에 몰두한 혜은이와 문숙은 거실에서 잠을 청했다. 혜은이의 속마음을 듣게 된 문숙은 "앞으로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던 희한하고 멋진 일들이 엄청 일어날 거야. 감당할 수 있어야 해. 이제 정말 나만을 위해서 사는 거야"라며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해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같이 삽시다2'는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평균 나이 60세 여가수와 여배우들의 리얼한 동거를 담은 프로그램이다. 경상남도 남해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동거 생활을 통해 이들이 혼자 살면서 느낀 외로움과 다양한 감정들을 공유한다.

1949년생으로 올해 나이 일흔 두살인 박원숙은 1970년 MBC 공채 2기 탤런트로 정식 데뷔했다. 대학 시절 임신을 하게 되자, 데뷔 전 공채 시험에서 한 번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도전에서 3000: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해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73년 코카콜라 CF 모델로 주목을 받았다.

활발한 활동을 하던 중 1981년 당시 남편의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을 하게 됐다. 홀로 아들을 키우던 중, 3년 후 다시 전 남편과 재결합을 하지만 다시 이혼을 선택한다. 1989년 아르헨티나에서 사업을 하는 남성과 재혼 했으나, 1995년 또다시 이혼의 아픔을 겪는다.

2003년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지만, 활발한 연기 활동을 지속하였고 연기자로서의 프로 의식은 후배 연기자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요즘은 주로 재벌 사모님, 악독한 시어머니 역을 자주 맡고 있다.

최근 배우 김동현과 이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던 가수 혜은이는 1954년생으로 올해 나이 예순 일곱살로 제주 출신으로 제주시에서 '낙랑쇼'의 단장이자 유명 변사였던 김성택의 딸로 태어나 7살 때(1962년) 충청남도 대전시 선화동으로 이주해 자랐다.

1975년 '당신은 모르실 거야-길옥윤'로 가요계에 데뷔해 폭발적인 가창력과 빼어난 미모로 혜은이 신드롬을 일어켰다.

1977년 2집 '진짜 진짜 좋아해'(동명 영화 OST|문여송/길옥윤), 3집 '당신만을 사랑해'(동명 영화 OST(1978)|길옥윤)가 모두 히트하면서 인기 정상에 오르며 당대 최고의 가수로 자리매김 했다.

1954년생으로 올해 나이 예순 일곱살인 문숙(오경숙)은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동양방송 최초의 여고생 공채 탤런트로 뽑히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1974년 영화 '태양 닮은 소녀'에 출연하면서 충무로가 주목하는 신예로 급부상했다.

23살 연상의 이만희 감독과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결혼 후 1년 만에 이만희 감독이 세상을 떠나면서 문숙은 미국으로 떠나 국내 활동을 중단하고  자연치료사로의 삶을 시작했다.

멤버들중 막내인 김영란은 1956년생으로 올해 나이 예순 다섯살로 1974년 영화 《죽엄의 다리》로 이미 영화배우 첫 데뷔한 후 건국대학교 1학년 재학시절 탤런트 시험에 응모해보라는 친구들의 권유로 장난삼아 응모, 1976년 TBC(동양방송) 공채 17기 탤런트로 정식 합격했다.

김영란이 안방극장의 인기 탤런트로 스타덤에 오른 것은 1978년 MBC 드라마 《옥녀》를 통해서였다. 이 드라마를 시작으로 《안국동 아씨》, 《새아씨》, 《교동마님》을 비롯, 1996년에 출연한 《용의 눈물》까지 인기 사극에 자주 등장해 ‘사극 전문 탤런트’로 명성을 얻었다.

1983년부터 7년간 장기 방송된 대하사극 시리즈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도 거의 매 작품마다 왕비나 명문가의 안방마님으로 등장해 한동안 ‘왕비 배우’ 라는 별명이 따라다닐 정도였다. 1981년 MBC 드라마 《교동마님》에서 '정난정'역을 맡아 큰 인기를 얻었지만 지나칠 정도로 잔인했던 악역 이미지로 고심, 방송국에서 이미지쇄신 차원에서 MBC 《김영란의 오늘의 요리》라는 교양요리프로그램으로 보상해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1982년에는 연예계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워싱턴주립대학에서 6개월간 어학을 공부하고 1983년 MBC 드라마 《배비장전》, 《추동궁 마마》로 복귀했다. 평소 재테크에 관심도 많아 <김영란의 주부경제>, <KBS2TV 김영란의 알뜰재테크> 등 경제와 관련한 TV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했고, 덕분에 탤런트로서는 경제지식도 많이 갖추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