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빈부·성별·연령 등 초월해 모든 이가 독립과 동아시아 평화 외쳐”
“독립운동 연구기반 취약··· 법안 만들고, 다른 방안 필요하면 시행할 것”
“여야를 떠나 수많은 갈등에서 해결책 찾아 노력하는 자세로 의원 생활 하고파”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24일 폴리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윤주경 의원실>
▲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이 24일 폴리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윤주경 의원실>

[폴리뉴스 대담 전규열 정치경제국장, 정리 강필수 기자] “3·1운동 정신을 기억하고 살아있는 정신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3·1운동을 맞는 소감이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초선, 비례)은 24일 진행한 <폴리뉴스>와 인터뷰에서 3·1운동의 의미를 풀어내는 한편, 독립운동의 의의와 관련 분야에 진출하게 된 계기, 현대 독립운동사 후손에 대한 처우와 독립운동사 연구의 현실 등을 소개했다.

이날 윤 의원이 먼저 언급한 것은 3·1운동의 정신이었다. 윤 의원은 “3·1운동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미를 많이 생각하신다. 그 속에 숨어있는 것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위해, 그런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3·1운동 정신”이라고 밝혔다.

이어 3·1운동의 정신이 잊혀진 국내 현실을 언급하며 “그런 정신보다는 3·1운동조차도 정쟁의 한 부분이 됐다.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았던 2019년 가장 아쉬웠던 것은 ‘통합’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3·1운동은 빈부, 성별, 연령 등을 초월해 모든 이가 독립과 동아시아 평화를 외쳤다”고 언급했다.

또한 “요즘은 (각종 경제·사회 문제에) 일본을 야단칠 겨를조차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3·1운동의 의미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함께 나가자고 일본에 손을 내민 것이었다. 한마디로 세계주의와 조화를 이룬 열린 민족주의였다. 현대에는 그런 것을 잊어버렸다”며 “물론 민족주의는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국민을 분열시키는 면이 있어 서운하다고 생각했다. 3·1운동 102주년을 맞이한다며 그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누가 노력하는가. 저조차도 어렵다. 그러한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로 102주년을 맞이한 3·1운동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묻는 질문에 윤 의원은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로 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윤 의원은 “3·1운동을 계기로 민국이 등장했다. 과거와 같은 왕조 국가로 돌아간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3·1운동을 통해 군주정을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를 향한 열망이 본격화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아직도 우리는 고민하고 있다. 민주화가 됐지만, 그것이 국민에게 다가왔고 완성됐는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에 상황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는 이래야 한다는 기준을 갖고 그에 못 미친다고 싸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민주국가는 국민이 주인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국가이며 변화하고 발전하는 국가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너무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고 파묻혀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고 평가했다.

이를 통해 윤 의원은 “3·1운동 정신을 기억하고 살아있는 정신을 만드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3·1운동을 맞는 소감이다”라고 언급하며 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우측)과 전규열 폴리뉴스 정치경제국장(좌측)이 24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윤주경 의원실>
▲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우측)과 전규열 폴리뉴스 정치경제국장(좌측)이 24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윤주경 의원실>

독립운동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를 두고 윤 의원은 스스로를 “보통사람처럼 학교에서 배운 국사 지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상하이의 독립운동가 묘역을 방문한 것을 지목했다.

윤 의원은 “3·1운동 80주년을 맞은 1999년 윤경빈 광복회 회장께서 상해에 한 번 같이 가면 어떻겠느냐 제안을 주셨다. 방문한 것은 12월 19일 윤 의사의 순국기념일 즈음이었다”며 “상해에 만국공묘라는 독립운동하시다가 중국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묻혀계신 곳이 있다. 유해는 송환했지만 묘가 남아있는 곳이 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곳에서 참배를 하다보니 이분들이 왜 이곳에서 이렇게 묻히셨을까”라고 생각하며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행사에도 참가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라고 언급했다. 이후 “김구 선생의 손자인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께서 독립기념관에서 활동토록 제안하셨다. 그렇게 길이 열려 활동하게 됐다”는 것이 윤 의원의 설명이다.

윤 의원은 독립기념관 관장으로 재직하던 시기 기억에 남는 일화로 독립기념관의 7개 전시관 가운데 4관을 ‘평화누리관’으로 공간을 만들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도록 한 것을 지목했다. 독립기념관이 독립운동 관련 유물을 보러오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독립운동가의 뜻을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한 공간을 만든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또한 역사의식 고취를 위해 고민하던 중 군을 떠올렸고 이에 육군과 업무협약(MOU)을 맺었던 일도 언급했다. 휴가 장병이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면 휴가 1일을 보상하는 내용인데 향후 국방부와도 MOU를 맺으며 ‘휴가보상제’가 육군에서 전군으로 확대된 것이다.

윤 의원은 독립운동가 후손을 향한 예우와 지원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며 “독립운동가는 손자까지 혜택이 주어져, 광복을 맞은 시점에 3대가 지난 경우가 많다”는 상황을 소개하고 “이제라도 전향적으로 위안이 될만한, 어떻게 하면 후손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구상하며 이를 법제화하도록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윤 의원은 독립운동사 연구의 현실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윤 의원은 “독립기념관장을 시작할 때 독립운동가 인명사전을 편찬하는 것이 있었는데, 독립운동사 전공 학자가 50명 수준이었다”며 “그분들도 은퇴하고 계신다. 연구기반이 너무 취약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예결위하면서 연구기반 강화를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연구용역을 해야겠다 싶어 예산을 받았다”며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것에 따라 법안을 만들고,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면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누구나 독립운동을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연구기반을 마련해놓으면 이런저런 연구가 시행되며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바람직한 방향이 제시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윤 의원은 대한민국의 건국 연도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역사가 2500년, 한국은 2000년이니 한국은 동생의 나라다. 형의 나라(일본)가 동생의 나라(한국)를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의식을 소개하며 “독립운동가들은 반만년 우리 역사를 잊고 지혜 문화 미풍양속을 잊어 나라가 망했으니 이를 되찾아야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우리는 430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생각했다. 단군을 시조로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임시정부에서도 개천절, 삼일절, 임시정부수립일 정도의 국경일을 갖고 있었다. 건국의 연도를 찾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이다. 이를 빌미로 서로가 분열하고 미워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의 문화민족으로 하나가 됐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소망이다”라고 강조했다.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좌측 두번째)과 폴리뉴스 전규열 정치경제국장(우측 첫번째), 강필수 기자(좌측 첫번째)가 24일 인터뷰 후 기념활영을 하고 있다. <사진=윤주경 의원실>
▲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좌측 두번째)과 폴리뉴스 전규열 정치경제국장(우측 첫번째), 강필수 기자(좌측 첫번째)가 24일 인터뷰 후 기념활영을 하고 있다. <사진=윤주경 의원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질문에 윤 의원은 “사람들은 내가 윤봉길 후손이라 대접받고 자랑스럽겠느냐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얘기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더 많았다”고 말했다.

과거 윤 의원은 “학창시절에 저런 애랑 놀지 말라는 친구 어머니 얘길 들었다”며 “할머니께서 기념행사에서 사람 죽인게 뭐 대단하다고 비아냥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속을 많이 상해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하이에서 느낀 직접적인 계기와 사회에서 만난 어느 분이 제 할아버지 같은 분이 계셔서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며 “할아버지는 이런 분들의 마음 속에 살아계시는구나 싶어 위안을 받았다”고 부담을 극복한 일화를 소개했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윤 의원의 의원실에는 2016년 취역한 손원일급 잠수함 ‘윤봉길함’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이 윤봉길함에 대해 윤 의원은 “(승조원이) 잠수함을 타며 윤 의사가 어떤 인물인가 알고 싶어지고, 윤 의사의 의거가 갖는 의미를 되새길 기회가 되고 있다”며 “그분들 마음속에서만이라도 윤 의사가 살아 숨 쉬게 하고픈 것이 소망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윤 의원은 어떤 의원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는 본지의 질문에 경청을 언급했다. 윤 의원은 “경청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며 “여야를 떠나 이 사회에 있는 수많은 갈등에서 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로 의원 생활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1959년생인 윤 의원은 사단법인 매헌 윤봉길 기념사업회 이사, 사단법인 매헌 윤봉길 월진회 이사,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 광복7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 독립기념관 관장 등을 거쳐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국회에서 윤 의원은 국방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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