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계단 오르면 나오는 좁은 방 3개, 화장실, 세면대
집주인 "보증금 없이 월세 내는 집, 서울에서 찾기 어렵다"
[폴리뉴스 김현우 기자, 이민호 기자] 서울 용산구 후암로57길 골목을 따라 야트막한 언덕길을 오르면 양 옆으로 여인숙과 여관이 모여 있다.
그곳에 '제일사 세탁소'가 있다. 주인 조모 씨(69)는 1990년쯤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이 세탁소가 있는 건물은 5층이다. 세탁소 바로 왼편에 딸린, 사람 어깨 너비를 겨우 넘는 문을 열면, 3층까지 이어진 좁은 계단 통로가 있다. 계단 폭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고 가파르다. 계단을 타고 2층부터 4층까지 3채씩 방이 있다. 계단은 3층에서 오른편으로 꺾어진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이 건물은 4층 건물이다. 5층은 추후에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5층에도 방이 2개가 있다. 이곳에서 4년간 거주한 이만호 씨(65)는 사업을 실패하고 쪽방촌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중국집을 운영했다. 호주에도 매장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은 잘 안됐고, 빚더미만 끌어안은 채 쫓겨나듯 여기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부인과 딸을 둔 가장이었다. 가족과도 멀어지게 됐고, 이젠 쪽방촌 생활이 더 편하다고 했다.
이 씨는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다. 살고 있는 쪽방의 월세 25만원은 일당을 뛰며 납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인력사무소’부터 찾는다. 중국집에서 요리를 하며 하루 일당을 뛴다. 일당은 현금으로 돈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월세도, 일당도 모두 현금으로 주고받는다. 그는 신용불량자인데, 계좌이체 등의 전산 거래를 하게 되면 기록에 남아 피하는 것이다.
중국집에서 하루 요리를 해 주고 이 씨가 받는 일당은 8만원이다. 요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음식업계도 어려운 터라 일주일에 평균 두 번 일을 나간다고 했다.
심지어 이 씨는 주민등록번호(주민번호)도 말소가 돼, 의료시설조차 이용이 불가능하다. 이 씨는 “신용불량자, 세금 미납자 등 일정 기간 동안 국가와 돈 문제가 얽히게 되면,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된다”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옆 방에 살던 분도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됐다. 간경화를 앓고 있었는데, 병원 진료를 보지 못해 2달 전 사망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공임대주택이 지어져도 주민번호 말소자는 입주 권한이 없다. 주민번호를 회복하려면, 채무를 다시 갚아야 하고, 4대 보험 가입 사업장에서 일하며 세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이미 늘어난 이자 등의 문제로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공공주택 재개발로 쪽방촌이 개발되면 이 씨도 예외 없이 집을 옮겨야 한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수급자는 임시 거주 시설 등에서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이 씨처럼 수급자가 아닌 경우에는 갈 곳을 잃게 될 수 있다. 공공임대주택조차 들어갈 수 없어, 현재로선 대안이 없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월 개발 계획 발표 이후 쪽방촌 거주민들을 최대한 포함하려고 한다"면서 "기존의 쪽방을 헐고 새로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서는 만큼 다른 공공임대주택에 준해 입주 자격을 따져야 하는 상황인데,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입주자 선발에 앞서 당국이 말소자들의 주민등록을 다시 살리는 방향으로 이끌 예정"이라며 "그밖에도 특정 시점 이후 입주하신 분들도 순위는 낮더라도 우선 공급 대상으로 포함할 수 있을지 포괄적으로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5층 쪽방 발코니로 햇살이 들어왔다. 층마다 작은 수도가 있다. 세수나 손세탁 정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세탁소집 2층에 사는 이금철 씨(75)는 인근 골목에 위치한 서울특별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세탁을 하고, 샤워도 해결한다고 말했다. 매주 월요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검사를 받고, 화요일 음성 결과가 나와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마진리가 고향인 이 씨는 이곳에 정착하기 전, 부산과 서울 등지에 위치한 공사장에서 철근이나 배관 공사 등을 맡아 했다. 친척과 함께 건설 사업을 진행하다 수십억원 사기를 당했다. 어느 기업의 이사를 하던 동생과는 이제 연락이 닿지 않는다. 부인이나 아들과도 헤어 진지 오래라고 말했다.
이 씨는 이 집으로 옮겨 온지 4개월째라고 말했다. 이전에 있던 집은 이웃이 술을 마시고 난리를 치는 통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으로 옮기기 전에 다른 집에 이틀 머물고 15만원을 떼였다. 한 달 월세가 28만원인 집이었다. 요를 못 깔 정도로 좁은 방인데, 돈을 줘야 나갈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건강이 나빠져 당뇨약과 혈압약을 먹고 있다. 과거에 공사장 일을 하다 철사에 눈을 찔려 왼쪽 눈 시력을 잃었다.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힘이 예전 같지 않고, 무엇보다 일을 하면 생계급여 54만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조모 씨는 세탁소 일과 월세를 받아서 생계를 이어갔다. 집은 의정부에 있고, 주말 이틀은 쉰다.
정부의 쪽방촌 공공주택개발 계획에 대해서 조 씨는 월세 수입과 세탁소 운영으로 살아왔는데, 굳이, 아파트 입주권을 받아서 뭐하겠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이 입주권에 투자할 수 있지만, 오래 일하지 못할 자신에게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지금처럼 월세를 받는 게 조 씨의 향후 소득이 보장되는 길이다.
조 씨는 쪽방 환경이 열악한 것에 대해 “보증금이 없고, 월세도 낮은 편이다. 언제든 나가고 들어올 수 있는 집이니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든 옮겨 다녀야 할 사람들이 낮은 가격에 살 집이니 환경이 안 좋은 대신 문턱이 낮다는 게 조 씨의 설명이다. 조 씨는 “서울에서 보증금 없이 어떻게 집을 구하나”라고 되물었다.
조 씨는 전기와 수도세를 포함해 좁은 방은 월세를 18~20만원, 햇볕이 들어오는 조금 넓은 방은 25만원을 받는다. 조 씨는 "보통 7~8명의 세입자가 입주한다"면서 “실질적으로 수령하는 금액은 얼마 안 된다”고 말했다. 조 씨와 인터뷰 후에 이 씨가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남산이 내 집 앞 마당, 햇볕도 볼 겸, 산책을 자주 간다”며 길을 나섰다.
서울특별시립 서울역쪽방상담소 관계자는 현재 상담소에 등록된 쪽방촌 식구는 1007명이라고 밝혔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 오차는 있지만,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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