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대선 정국에 '오만과 독선' 비판 부담...속도조절론 대두
최형두 "1개월, 언론자유가 왜 중요한지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시간"
'독선의 폭탄' 넘겨 받지 않은 文, 뒤늦게 "추가 합의 환영" 첫 발언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위한 협의체 구성, 9월 27일 본회의 상정 등의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 <사진=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가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위한 협의체 구성, 9월 27일 본회의 상정 등의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가운데는 박병석 국회의장.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이우호 기자] 여야는 31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내달 27일로 미루고 8인 협의체를 꾸려 논의하기로 했다. 이는 오만과 독선을 의식한 당 내 인사들과 청와대의 속도조절론이 힘을 받은 결과로 풀이된다. 그동안 당 내 의원은 물론 여당 원로들과 청와대도 강행처리에 우려를 표하며 속도 조절을 요구해왔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만나 약 1시간 동안 논의한 끝에 이 같은 방안에 합의했다. 전날 네 차례 회동에 이어 다섯 번째 만남에서 가까스로 합의점을 찾은 것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도 "추가 논의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여당의 입법 독주를 지켜봤던 청와대로서는 한숨 돌린 셈이다. 언론중재법이 강행처리 됐다면, 최종 '거부권'을 가진 문 대통령이 '독선의 폭탄'을 넘겨받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협의체는 양당 의원 각 2명과 각 당 추천 전문가 2명씩 총 8명으로 구성된다. 그동안 민주당은 '폭주 입법'이라는 비판에도 법안을 단독 처리했다. 지난 18일 문체위 강행처리에 이어 24일 법사위까지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25일 바로 본회의를 열 계획이었지만, 박병석 국회의장이 차수 변경을 이유로 중재에 나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민주당은 30일 본회의를 열어 강행처리 할 방침이었지만, 그 사이 여권 원로들과 청와대 이철희 정무수석이 다녀가면서 기류가 변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원로들은 대선 정국을 앞두고 언론과 야당에 전방위적 비판 속에 중도층 민심 이반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인태 전 사무총장은 "4월 7일 밤을 잊지 말라"고 송 대표에게 조언했다.

유 전 사무총장은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 뭐냐. 180석의 위력을 과시하고 독주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결국 심판받은 것"이라며 "법안 하나 처리하는 데 일주일 늦어지고, 한 달 늦어진다고 세상이 뒤집히느냐"고 조언했다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면담에서 "쥐 잡다가 독을 깬다. 소를 고치려다 소가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강조했다.

◇ 與, 여권 내에서도 언론중재법 비판 커지자...입법폭주 '잠시 멈춤'

당내에서는 언론중재법의 내용을 비판하는 의원들과 법안을 강행 처리하는 태도를 지적하는 의원들의 목소리도 컸다.

특히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31일 CBS 라디오에서 "여당이 의석 많다는 것을 명분으로 그냥 밀어붙이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의원이 적지 않다"며 "지난 4·7 재보선에서 봤듯, 힘자랑하는 정파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는 걱정하는 분들이 있다"며 거듭 신중론을 폈다.

4·7 재보선 선거 패배를 떠올리며 대선정국을 앞두고 '입법 독주' 비판만은 피하자는 우려였다.

당내 대표 '소신파'로 분류되는 조응천 의원도 지난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언론 보도까지 위축시킬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와 알 권리, 왜 대들보를 또 건드리나. 그러면 민주주의가 무너진다"고 비판했다. 

대선주자인 박용진 의원도 30일 YTN 라디오에서 "돈 있고 힘 있고 빽있는 사람들에 대한 언론의 견제·감시·비판 기능이 위축되면 개혁 동력이 상실된다"며 "급하게 끌고 가서는 안 된다. 다시 '독선적'이라는 비판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선 경선기획단장인 강훈식 의원도 같은 날 KBS 라디오에서 "좀 더 합의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당내 논의가 있다"며 "저도 청와대 일부에서도 부담스러워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송영길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절대 독단적으로 뭘 하지 않는다.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원총회도 하고 민변, 언론단체도 계속 만나고 있다"고 고민을 내비쳤다.

31일 오후에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속도를 조절하자는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설훈 의원은 "시간을 좀 더 두고 해야 한다"라고 발언했고, 허종식 의원도 "1~3개월 정도 언론계를 설득하고, 여야가 협의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 野, 독소조항 철회 관철될까...9월 본회의 뇌관 속 전운 고조

그럼에도 비판과 논란은 지속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국민의힘은 물론, 정의당도 언론중재법 개정안 자체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회의 상정 자체도 문제라는 인식 속에 여야가 이 간극을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열람 차단청구권 도입 등은 법안 처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31일 <폴리뉴스>와의 통화에서 "언론자유 같은 민주주의 기본권은 결코 양보 될 수 없는 사안이다"라면서 "민주당이 1개월간 언론자유가 왜 중요한지,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은혜 의원은 31일 SNS에 "독소조항 살라미로 제거한들, 언론중재법 자체가 독소다. 생선 살 발라낸다고 뼈가 어디 가겠나"라고 지적했다.

김재원 최고위원도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시한을 못 박아놓으면 사실 협의체라고 해놓고 내용을 여당 마음대로 끌고 갈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며 우려를 표했다.

즉 야당은 합의와 숙의를 거쳤다는 민주당의 '생색내기' 여론전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9월 본회의 전까지 토론하는 모양새를 갖추면서 강행처리를 해도 결국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30일 8월 임시국회 악법 처리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오늘 '언론중재법'을 기어코 밀어붙인다면 당명을 바꿔야 할 것"이라며 "입법 독주의 모습에는 '더불어'도 없고 '민주'도 없다"고 작심 비판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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