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벽에 막혀 번번이 좌절 이번에는...‘종전선언’은 정치선언, 임기말 한계도 존재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문재인 대통령이 9월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의 문을 다시 한 번 두드렸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68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반도정세를 규정하는 ‘정전협정’의 틀을 깨는 ‘입구’로 치부되는 ‘종전선언’의 관문 앞에 다시 섰다.

‘종전선언’은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지만 아직도 그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10.4선언에서 남북 정상이 종전선언 추진에 합의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외면으로 그 벽을 허물지 못했다. 당시 미국 부시 행정부가 ‘검증가능한 핵폐기’를 ‘종전선언’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는 방법으로 이를 무산시켰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2018년 4.27 판문점선언에서 다시 ‘종전선언’이 나왔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2018년 연내 종전을 선언하기로 합의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또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반대를 넘지 못했다. 당시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을 보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추진 등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한국 통일의제 추진을 위한 ‘외교적 춤판(fandango)’으로 바라보며 의심했다. 결국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로 귀결됐고 이후 남북한은 경색국면으로 갔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2020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라며 종전선언을 국제사회에 호소한데 이어 올해 9월 21일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또 한 번 제안했다. 종전선언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집요한 의지가 묻어난다. 

북한은 9월24일 외무성 리태성 부상이 ‘미국의 적대시정책이 남아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이라며 냉랭한 담화를 발표했지만 7시간 만에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담화에서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조건으로 종전선언 제안을 “좋은 발상”으로 평가하고 “건설적인 논의를 해볼 용의가 있다”고 남북대화에 나설 뜻을 밝혔다.

김 부부장은 다음날 25일 담화에서 “종전이 때를 잃지 않고 선언되는 것은 물론 북남공동연락사무소 재설치, 북남수뇌상봉(정상회담) 등 여러 문제들도 건설적 논의를 거쳐 빠른 시일 내에 보기 좋게 해결될 수 있다”고 남북정상회담 추진도 꺼냈다.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 부부장 담화가 지닌 무게를 볼 때 ‘종전선언’을 매개로 남북한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음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 ‘종전선언’ 제안에 북한이 반응한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내년 2월에 열릴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평화의 시계’가 다시 작동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남북한은 ‘종전선언’에 대해 2006년 이후 오랜 동안 공감대를 구축했지만 국제사회에서는 통용되지 못했다. 미국의 ‘종전선언’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종전선언’ 추진도 다름 아닌 ‘미국’이라는 벽을 어떻게 넘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미국은 종전선언을 북한에 대한 보상으로 바라본다. 즉 ‘한반도 평화협정 협상’으로의 이행을 전제로 깔고 있으며 ‘종전선언’을 할 경우 미국의 ‘대북 군사적 옵션’이 제한될 것으로 생각한다. 미국은 대북 군사적 압박수단을 쥐고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하고자 한다.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하더라도 미국으로선 부담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비핵화 협상에 들어가는 입구”,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상으로 들어가자는 정치적 선언”으로 규정하면서 “종전선언으로서 현재의 법적지위는 달라지는 것이 없고, 종전에 정전협정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는 여러 가지 관계들은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미국에게 종전선언에 참여할 것을 누차 요구해왔다. 유엔에서 4번에 걸쳐 국제사회에 종전선언을 호소한 것은 미국의 태도변화를 촉구한 것에 다름 아니다.

北 전향적 접근으로 美의 ‘종전선언’ 활용 가능성 존재, 내년 3월 대선변수로 부상

북한 김여정 부부장이 문 대통령 ‘종전선언’ 제안에 평가하면서도 대북 적대정책 철회를 전제로 내건 것도 이러한 사정과 연결돼 있다. 미국이 대북 군사적 압박을 포기하려하지 않는 한 실현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처음 리태성 부상이 ‘시기상조’라고 한 맥락에는 ‘미국을 설득했느냐’는 질문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종전선언에 대한 입장은 신중하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미국은 종전선언에 대한 논의에 열려 있다”고 밝힌 부분은 전향적이다. 국무부의 네드 프라이스 대변인은 9월 24일(현지시간) “우리는 북한에 대한 적대적 의도가 없다.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내보이고 있다.

다만 지금처럼 꽉 막힌 북미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미국은 ‘종전선언’을 촉매로 삼을 개연성은 있다. 북한은 북미대화에 앞서 선결요건으로 ‘대북적대시 정책’ 철회 및 미국의 선제적 조치를 요구해왔다. 제재완화 등 가시적 조치를 취할 수 없는 미국으로서는 정치적 선언인 ‘종전선언’을 북미대화를 여는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조건을 달았지만 종전선언에 응하기로 하면서 문 대통령이 바라는 대로 한반도 정세가 ‘종전선언’을 향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은 있다.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 등 이벤트가 연출될 개연성도 있고 나아가 남·북·미·중의 종전선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중국 또한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종전선언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왕이 외교부장의 9월 15일 방한해 문 대통령과의 만난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전선언 성사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 문 대통령의 마지막 도전의 성패는 미국에 달려 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이 임기가 불과 8개월도 채 안 남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북한은 내년 3월 한국의 대선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려 할 것이다. 임기말 정권과 외교적인 거래를 하기엔 위험부담이 있다. 나아가 미국이 ‘종전선언’을 수용하더라도 문 대통령이 말했듯이 ‘정치적 선언’이기에 향후 정세 변화에 따라 언제든 무산시킬 수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7년 대선 2개월 전에 진행된 10.4 남북정상회담처럼 많은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 출범과 함께 없었던 것이 된 전례도 있다. 차기 정권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정책을 이어받는다는 전제가 없으면 임기말 추진되는 ‘종전선언’은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다.

바로 그 때문에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추진은 대선을 가르는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의 유력 대선후보들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부정하는 상황이기에 더하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정책’의 발전적 계승이냐 전면 부정이냐를 두고 대치전선이 형성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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