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표본 오차 대표주자인 여론조사 문항, 정치적 타협 대상으로 전락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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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뉴스 홍경환 기자] 2002년 대선 이후 우리나라 정치에서 여론조사는 필수항목이 되었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선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 후보간 후보 단일화가 ‘여론조사’를 통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후 각 정당에는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결과에 여론조사를 반영하기 시작했고, 국회의원 공천에도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했다. 

대선 후보와 국회의원 후보를 결정하는데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환영할 일이다. 정치인들 간의 이해관계에 의해 선출된 후보는 국민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인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후보가 정치인들 사이의 물밑 거래로 뽑히면, 일반 국민들은 정치에 대해 더욱 무관심해진다. 남의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론조사가 지니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각 정당의 대선 후보를 선출할 때면 끊임없는 잡음이 나온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이후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경선장에서 시위를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은 후보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0.33% 앞섰으나 여론조사에서 9% 가까이 앞선 이명박 후보가 최종 후보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홍준표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는 앞섰지만 당심에서 앞선 윤석열 후보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정치적 타협 대상이 된 ‘여론조사 문항’, 여론조사는 과연 정확할까?

그런데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은 없을까? 과연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결정지은 여론조사는 얼마나 정확했으며,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결정지은 여론조사는 정확히 실시된 것이 맞느냐 하는 의문이다. 

시계바늘은 2007년으로 되돌려보자. 당시 각 언론사는 자체 여론조사를 실시하면서 이명박 후보가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 결과 중 하나. 중앙일보는 자체 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박근혜 후보보다 높다고 보도했다. <사진=중앙일보 보도 캡처>
▲ 2007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 결과 중 하나. 중앙일보는 자체 조사 결과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박근혜 후보보다 높다고 보도했다. <사진=중앙일보 보도 캡처>

그런데 기사를 유심히 보면 이상한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여론조사를 실시할 때 ‘할당추출법’이 사용됐다는 내용이다. 

할당추출법은 부정확한 여론조사 기법이다. 여론조사가 정확히 실시되려면 무작위추출법이 사용되어야 한다. 할당추출법이 왜 부정확한 여론조사 방법인지 설명하려면, 많은 지면이 할애되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은 여론조사 기법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다만 독자들은 할당추출법은 화웨이가 만든 폴더블 스마트폰, 무작위추출법은 삼성전자가 만든 폴더블 스마트폰 정도의 품질 차이가 난다는 점만 기억하면 되겠다. 

여론조사의 품질을 결정짓는 요소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조사원들의 숙련도가 어느 정도 되느냐 여부도 중요하고, 여론조사 문항을 어떻게 작성하느냐도 중요하다. 이런 것들은 통계학 용어로 비표본오차라고 한다. 

그런데 국내 어떤 언론사도 여론조사의 품질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2007년 MBC의 한 보도를 보자.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여론조사 문항을 놓고 대립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을 보도한 MBC 뉴스. <사진=MBC 캡처>
▲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을 보도한 MBC 뉴스. <사진=MBC 캡처>

기사 내용을 뜯어보면 “이명박 후보측은 누가 대통령 후보 되는 게 좋은가라는 선호도 방식을, 박근혜 후보측은 투표일에 누구를 찍겠느냐는 지지도방식의 질문을 내세우며 신경전을 벌여왔습니다. 선호도방식일 경우 이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지지도방식일 경우 박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기 때문입니다.”라고 돼 있다. 

공영방송인 MBC 조차도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싸우는 것만 중요하지, 여론조사의 품질이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점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보수 진영 대선 후보 적합도 1위 유승민은 왜 꼴찌를 했을까?

여론조사 문항이 여론조사 품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해가 잘 안되는 독자들을 위해 시계 바늘은 2017년 대선 당시로 옮겨보겠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불출마를 선언한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로,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가 보수진영을 꿰찰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했다. 

2017년 대선 과정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보수후보 적합도' 1위를 기록했다. <사진=YTN 보도 캡처>
▲ 2017년 대선 과정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보수후보 적합도' 1위를 기록했다. <사진=YTN 보도 캡처>

당시 YTN이 조사 의뢰하고 엠브레인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보수진영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를 묻는 질문에 유승민 의원이 32.9%로 1위를 차지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9.2%로 뒤를 이었고, 남경필 경기도지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순이었다.

그럼 실제 대선 투표 결과는 어떠했을까? 결과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여론조사 결과와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선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가 실시되는 이유는, 각각의 대선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 얼마나 득표를 할지 예측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2017년 YTN 여론조사를 보면 ‘예측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해 실시된 여론조사는 ‘예측 가능성’이 얼마나 되었을까? 당시 실시된 여론조사 문항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정확한 내용은 알수 없으나, 기자의 판단으로는 2017년 대선 당시 실시된 YTN 여론조사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 판단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당시 한나라당 경선관리위원회에서 선호도와 지지도를 절충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선호도는 누가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는 방식이고, 지지도는 누구를 대선 후보로 지지하느냐고 묻는 방식이다. 

유승민 후보가 1위를 한 ‘적합도’ 방식, 이명박 후보가 1위를 한 ‘선호도’ 방식 모두 ‘실제 투표 결과’를 예측하는 내용이 아니기에,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선거결과와 괴리가 상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07년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자 입장에서 본다면, 부정확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해 이명박 후보가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으므로, 과학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대선 후보직을 강탈 당한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2012년 대선,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여론조사는?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마케팅 조사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제품의 판매량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다. 만약 기업이 실제 판매량 예측에 실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마어마한 수량의 제품이 재고로 남게 되고, 기업은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정확한 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선 후보와 관련한 조사는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

2012년 대선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후보 단일화’에 원칙적 합의를 했고, 단일화 방식은 여론조사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원칙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단일화는 진척이 없었다. 여론조사 문항을 놓고 양측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후보 측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경쟁할 야권 단일 후보로 누가 적합하다고 보십니까’라고 묻는 방식을 고집했다. 2017년 대선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여론조사에 1위를 한 방식이다. 

여론조사 문항을 ‘적합도’ 방식으로 구성하는 것은 2017년 대선 당시 결과에서 보듯, 실제 투표 결과와 상당한 괴리가 발생하는 방식이다. 그렇다고 안철수 후보 측이 고집한 여론조사 문항이 실제 투표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당시 안철수 후보 측은 ‘누가 경쟁력이 있다고 보십니까’라는 문항을 고집했다. 

만약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한국시리즈 우승팀으로 누가 더 적합하다고 보십니까?’라는 여론조사로 결정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또는 ‘한국시리즈 우승팀으로 누가 더 경쟁력이 있습니까?’라는 여론조사로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결정짓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러나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그러했고, 2021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과정에서 실시된 여론조사는 과연 얼마나 정확했을까? 

정치권이 여론조사 문항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과정을 지켜보면, 필자는 이런 말이 떠오른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지구가 태양 주변으로 돈다는 것은 과학이다. 진리요 진실이다. 그런데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않고, 정치인들이 ‘타협’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치인들은 왜 과학을 놓고 ‘인정’하려 하지 않고 ‘타협’을 하려는 것일까?

내가 더 심각하게 보는 것은 이런 정치권을 바라보는 언론이다. 여론조사를 놓고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이런 심각한 현상에 대해 제대로 보도한 언론사가 있기는 한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막대한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영언론사의 ‘수준’이 정치인들과 별반 다를바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 후진성에 국내 언론사들도 막대한 기여를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이런 후진적인 언론사에 나는 왜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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