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의미

   이미 오래전 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인간 소외가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인간 소외는 모든 것들이 화폐나 상품 관계로 치환되어 현실을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가 사라지는 현상을 지칭한다. 간단히 본래의 목적이나 가치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돈에 의해 평가되고 지배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미국 테슬라 회장인 일론 머스크의 한 마디에 비트코인의 가격이 출렁이고, 미국 중앙은행의 결정에 따라 달러의 가치가 출렁이고, 모순적이게도 모든 경제활동의 출발점이었던 우리의 삶도 따라서 출렁이는 세계를 살고 있다.

   기술이나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고 한다. 기술과 자본은 중립적이며 냉혹한 계산에 따라 움직일 뿐이기에 우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반도체 등의 첨단 산업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 대립을 보고 있으면, 냉혹한 자본이라는 것도 결국 환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기술에도 고향이 있다. 그 기술이 출발한 장소, 국가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지난 20세기 한국의 산업 기술 중에는 일본에서 전파된 것이 많았고, 이로 인해 기술에는 마치 상표처럼 일본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그래서 기술을 사용하는 한국인은 일본인을 만난 적이 없더라도 일본의 문화를 생각하며 일본에 열등감을 느꼈다. (한국에 전파된 일본 기술이 다시 일본으로 전파되기도 하였다. 일본인은 이 기술을 매개해 한국을 상상하였다. 시사인 630호 “‘머구리’의 고향은 일본일까 조선일까” 참조) 이처럼 냉혹한 기술과 자본의 세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받아들여왔다.

인간-기술 네트워크

   20세기 전후 동력 운반선의 등장과 일본 헤게모니의 강화는 남해 도서 및 연안 사람들을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과 더 가깝게 연결하였다. 오랫동안 한반도의 정치, 경제체계에 속해 있던 남해 도서 지방은 점점 일본 경제 체계 속으로 편입되어 갔다. 그래서 섬 주민 중에는 일본에 일을 하러 가거나, 특정 계절에는 심지어 어선을 타고 일본에서 조업을 하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도 도서 지방에서 어획된 해산물은 일본으로 향했다. 그래서 남해 도서 지방에서는 일본에 가보지 않았던 사람도 서울보다는 일본 오사카나 도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일본 사람이 기리는 명절과 선호하는 음식, 일본 가공회사의 거래 방식, 일본의 어업 기술 등. 이는 단순히 기술이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술은 그 자체로 새로운 관계를 함축한다. 인간의 경험과 문화는 환경과 기술과 함께 공진화해 왔다.

   지난 20세기 우리는 산업혁명을 거치고 정보화 혁명을 경험하였다. 철도와 동력선의 등장, 특히 육로 교통망의 확대에 따라, 도서 지방은 새로운 생활권 속에 편입되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섬을 품고 있던 섬의 수도, 목포는 많은 섬을 각 섬에서 쉽게 닿을 수 있는 육지에 내줄 수밖에 없었다. 도서-육지 간 사회적 관계를 맺어주던 목포 객주의 역할은 교통 혁명에 따라 대도시 광주의 상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정보화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섬을 지리적 거리와 관계없이 더 많은 곳과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해 주고 있다. 수협 중개 판매를 거쳐 개별 인터넷 판매가 점점 활성화되고 있고, 이는 대도시와 섬의 거리를 더 가깝게 만들었다. 기술은 개성을 가진 행위자로 각자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인간과 인간을 연결한다. 기술은 자신만의 선호를 가지고 있어 자신(기술)과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한다. 인터넷 기술은 문자를 통해 상대의 감정을 읽고 적절한 상호 작용 의례를 표현하는 일에 능숙한 사람과 더 잘 연결된다.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는 소셜 네트워크 분석은 기술 친화적인 사람과 아닌 사람을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한다.

부분적 연결과 거주 공공성

   섬은 원래 해로를 이용해 육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다양한 네트워크를 맺어왔다. 기술은 과거 멀게만 느껴졌던 행정, 경제, 보건, 교육 네트워크에 섬을 더 가깝게 연결해 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기능적으로 분할할 수만은 없는 인간의 삶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 혁명에도 불구하고 부분적 연결만으로는 섬은, 섬에서의 삶은 재생산되지 않는다. 높은 소득, 우수한 보건의료만으로는 섬에 외지인을 유인해 살게 할 수는 있지만, 섬에서의 삶은 재생산되지 않으며 생업공간으로만 남을 것이다. 섬이 재생산되기 위해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결혼을 하고 자아를 성취하고 자녀를 키우고 또 죽은 자를 기리는 일, 사회적 인간으로의 삶이 가능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섬은 무릉도원이 아니다. 섬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섬에서 삶을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는 기술 혁명을 통해 수많은 부분적 연결을 붙여 놓는 것 이상의 무엇이며, 우리가 섬에서 삶을 꿈꿀 수 있는가와 관련되어 있다. 

오창현

문화인류학자이자 한국민속학자. 목포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조교수.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전문위원, 한국문화인류학회, 한국민속학회, 일본 민속학회 회원. 
한국과 일본의 생업과 기술, 농어촌 공동체 문화를 연구해 왔다. 한국과 일본의 어업기술과 해산물 소비 문화를 중심으로 한국의 근대적 특질과 물질문명의 전개 과정을 규명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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