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거제의 관광섬 외도의 모습 (사진=하걸의블로그)
▲ 경상남도 거제의 관광섬 외도의 모습 (사진=하걸의블로그)

현재 섬과 바다는 글로벌 차원에서 유례없는 위기의 바람과 변화의 물결 속에서 급격한 ‘섬다움’(islandness)의 변화(change)와 혼돈(chaos)을 겪고 있다. 섬다움이란 곧 섬성(섬性) 또는 섬 정체성(island identity)을 일컫는다. 섬과 바다 세계에 불어닥친 위기의 바람과 변화의 물결에 따라 섬다움의 변화와 혼돈은 예전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섬과 바다가 겪고 있는 여러 위기 중 대표적인 것이 기후변화(climate change)를 넘어선 기후 위기(climate crisis)라고 할 수 있다. 기후 위기는 기후변화를 포함한 자연과 생태환경의 위기에서 비롯되었다. 기후 위기는 인류세의 위기와 지구의 생태환경, 인류의 사회문화와 역사의 위기를 수반한다.

섬과 바다는 정체성의 변화와 혼돈의 경계 위에 서 있다. 기후 위기의 바람과 그에 따른 변화의 물결은 섬과 바다에 자연환경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뉴노멀 시대가 열린 것이다. 뉴노멀 시대에 섬과 바다는 섬다움의 변화와 혼돈의 경계 위에 서 있다. 이러한 정체성의 변화와 혼돈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개발이나 발전을 넘어서 재생이나 활성화, 나아가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뉴노멀 시대에 인류는 섬과 바다 정책 수립과 실천을 위한 비판적 성찰과 숙고, 실행이 무엇보다도 긴요한 시점에 와 있다.

섬다움(islandness)에 대한 개념 정의는 섬의 어원에 대한 근본 인식과 그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다. 섬의 영어 표현은 ‘아일랜드’(island)이다. 아일랜드는 ‘아일’(is, isle: 물 또는 해수)과 ‘랜드’(land: 땅 또는 땅덩어리)의 합성어이다. ‘아일’은 물이나 해수를 의미하고, ‘랜드’는 땅이나 육지를 뜻한다. 따라서 아일랜드란 물이나 해수로 둘러싸인 특별한 땅이나 땅덩어리, 육지를 가리킨다. 섬이란 땅 또는 땅덩어리 중에서 물이나 해수로 둘러싸인 특별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섬은 땅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심도 있는 함의를 지닌 개념이다. 따라서 섬다움이나 섬 정체성으로 번역되는 ‘아일랜드니스’(islandness)는 땅 중에서 물이나 해수로 둘러싸인 특별한 의미를 지닌 땅이기에 물의 정체성이 갖는 특징과 의미의 변화와 혼돈의 양상과 의미 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근본 이유이자 근거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뉴노멀 시대 섬다움의 변화와 혼돈에 대한 인식과 실천은 바로 이러한 섬다움의 변화와 혼돈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변화와 그에 따른 혼돈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항구도시 목포. 서해, 서남해 연안도시들은 해수면 상승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 항구도시 목포. 서해, 서남해 연안도시들은 해수면 상승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변화와 혼돈이란 무엇이며, 그 의미는 어떻게 해석되는가? 혼돈은 카오스(chaos)다. 카오스의 사전적 의미는 그리스 철학에서 우주가 발생하기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 즉 온갖 사물이나 정신적 상태가 뒤섞이어 갈피를 잡을 수 없거나 그러한 상태, 또는 하늘과 땅이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태초의 혼돈이나 무질서 상태를 일컫는다. 즉 혼돈, 혼란이나 무질서, 초매(草昧: 천지가 처음 개벽하던 거칠고 어두운 세상을 일컫는 말로, 사물이 잘 정돈되지 않은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상태를 일컫는 철학 용어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혼돈은 질서(cosmos) 이전의 태초의 상태로, 질서의 가장자리 또는 주변이나 변경의 자리에 위치한다. 질서 이후에 혼돈은 질서의 창조적 파괴를 통해 다시 무질서를 창조한다. 혼돈은 질서의 가장자리나 변경에서 시작하여, 결국 무질서의 중심 또는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혼돈의 가장자리는 질서와 창조, 진화, 혁신, 발전의 갈림길이다. 동시에 혼돈은 무질서에서 질서로 넘어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혼돈의 길목에서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 인류 역사와 사회문화가 변화하는 순간은 항상 혼돈과 질서의 가장자리 또는 경계, 접경에서 시작된다.

질서의 핵심이 균형성이라면, 혼돈의 핵심은 역동성이다. 질서가 균형성에 기반을 두고 안정과 평형, 조화를 지향한다면, 혼돈은 불균형의 역동성을 통해 질서의 균형성을 교란하여 요동 속에서 무질서의 질서를 만들어낸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미 설파했듯이, 혼돈이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삶을 얽매는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뜻한다. 혼돈 요인들은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역동성을 통해 자기 공명을 일으켜 스스로 깨우치고, 사소한 계기에서 그에 따라 모든 것은 변화의 양상을 띠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실상을 파악하는 일은 자신만의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생각 속에서 무의식과의 대화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해진다.

혼돈은 ‘무질서 속의 질서’, 즉 ‘카오스모스’(chaosmos: chaos+cosmos)로 재정의된다. 카오스모스란 카오스(chaos: 혼돈, 무질서)와 코스모스(cosmos: 우주, 질서)의 합성어로, 혼돈 속의 질서, 혹은 혼돈 상태가 정제되고 안정화된 방식으로 나타나는 세계를 일컫는다. 카오스모스는 혼돈과 질서, 불안정과 안정, 불확실성과 확실성의 융합으로 구성되며, 혼돈의 과거로부터 질서의 미래로 나아가는 특성을 지닌다. 카오스모스에서 혼돈은 단순한 무질서, 혼돈, 무한의 의미가 아니라 ‘무질서 속의 질서’라는 의미로 재정의된다. 혼돈과 질서가 절묘하게 통합된 ‘복잡한 질서’의 세계가 카오스모스인 것이다. 따라서 카오스모스의 세계에서 혼돈과 질서는 서로 대립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인 개념이다. 카오스모스에서 카오스의 혼돈이 지닌 역동성과 코스모스의 질서에 기반을 둔 균형성이 서로 융합한다. 변화의 역동성과 스스로 절제하는 자유성이 그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혼돈 속에 질서가 있고, 질서 속에 혼돈이 있는 것이다.

2021년 1월 31일에 촬영된 전남 고흥군 시산도와 주변 양식장 인공위성 사진 (출처=미국항공우주국)
▲ 2021년 1월 31일에 촬영된 전남 고흥군 시산도와 주변 양식장 인공위성 사진 (출처=미국항공우주국)

삶의 현장 속에서 정체성의 변화 자체는 카오스모스에 속해 있다. 혼돈과 질서가 서로 대립·충돌하여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다. 혼돈 자체에 혼돈을 잡아주는 질서가 존재하며, 그 안에서 혼돈과 질서의 상호 작용이 이루어진다. 카오스모스란 혼돈의 질서화 작용에 다름 아니다. 사물은 그 자체로 서로 분리되거나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상호작용하면서 인간을 포함한 자연 또는 생태환경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 자연과 인간 역시 개별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성 속에서 혼돈과 질서, 무질서와 질서, 카오스와 코스모스 사이를 진자처럼 왕복 운동하면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뉴노멀 시대가 이미 눈앞에 도래한 현재, 섬과 바다는 정체성의 변화와 혼돈의 경계 위에 서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은 뉴노멀 시대를 초래했다. 섬다움의 변화와 혼돈의 경계에 선 섬과 바다, 그리고 섬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삶의 경험에 대해 카오스모스라는 개념을 통해 융합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과 긴박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홍석준 교수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학위와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목포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도서문화연구원 원장직을 맡고 있다.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사)한국동남아연구소 소장, (사)한국문화인류학회 이사, 역사문화학회 회장,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의 <도서문화> 편집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지은 책으로, 『위대한 지도자를 통한 아세안의 이해』(공저), 『동남아의 이슬람화1』(공편저), 『동남아의 이슬람화2』(공편저), 『맨발의 학자들: 동남아시아 지역전문가 6인의 현지조사 경험』(공저), 『ASEAN-Korea Relations: 25 Years of Partnership and Friendship』(co-author), 『동아시아의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공저), 『Southeast Asian Perceptions of Korea』(co-author), 『동남아의 한국에 대한 인식』(공저),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문화인류학 맛보기』(공편저), 『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공저), 『동남아의 사회와 문화』(공저), 『동남아의 종교와 사회』(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글로벌시대의 문화인류학(제4판)』(공역), 『베트남 전쟁의 유령들』(공역), 『베풂의 즐거움』(공역), 『동남아의 정부와 정치』(공역), 『샤먼』(공역) 등이 있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과 이슬람화를 포함한 동남아시아의 사회와 문화 및 동아시아의 문화와 문화적 정체성 관련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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