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능력' 없으면 사이코패스다.
'소통능력' 없으면 파시스트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한없이 강한자, 사이코패스고 파시스트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사진=연합뉴스>
▲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사진=연합뉴스>

나는 '톡까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열렬한 팬이었다. 지난해 6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기간 내내 '돌풍'을 일으키며 정치후원금 모집 사흘만에 1억5천만원 달성, 총 9만 3392표로  43.8% 득표율 기록으로 한국 정치사상 첫 30대 제1야당 대표가 된 것이다. 

내가 더욱 열광한 것은 이준석 신임 대표의 당대표 수락연설문 머찜머찜 때문이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존", "비빔밥이 가장 먹음직스러운 상태는 때로는 10가지가 넘는 고명이 각각의 먹는 느낌과 맛, 색채를 유지하면서 밥 위에 얹혀있을 때", "공정을 제1의 가치"...

멋지지 않은가? 그때 36세 약관의 나이다. 누구보다도 젊다! 젊음은 나라의 미래고 비전이다. 게다가 공정 공존 비빕밥에 대한 생각(?)이 여간네기가 아니다. 무엇보다 각양각색의 다양성을 '비빕밥'으로 읽을 줄 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보수꼴통 꼰대집단' 속에 핀 연꽃 같은 존재, 기적 같은 사건 발생,  참 보기 어려운 캐릭터 탄생, 늘 그렇고 그러리라는 생각 밖의 일을 맞닥뜨렸을 때의 놀라움이란... 

그런 점에서 '이준석 탄생'은 차라리 통쾌함 또는 시원함에 가깝다. 지루하고 심심하기만했던 보수꼰대 정치지형에 '차이와 개성'이라는 신약이 투입됐기 때문이다. 

'이준석 신약'은 어느덧 '꼰대 정치'의 핵심이 됐다. 더이상 국가와 민족, 조국과 전통, 전체성과 동일성의 가치가 모든 세대와 계층을 지배하는 욕망이 아니게 됐다. 다양성과 차이가 사라지면 남는 건 서열과 차등 뿐이다. 이제 사람들은 이준석의 '비빔밥'을 통해 한국 보수정치의 새로운 지향을 짐작하게 됐다. 

그렇다면 참 이상해지는 대목이 있다. 여기에서 반드시 환기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는데,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장애인 지하철 시위 현장에서 무릎 꿇고 한 말에 "사과할 일 없다"는 이준석의 언표다.   

나의 열렬 팬, 이준석은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최대 다수의 불행과 불편을 야기해야 본인들의 주장이 관철된다는 비문명적 관점으로 불법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며 '볼모' '인질' '비문명적'.... 장애인 단체(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비판을 이어갔다. 

드디어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그 장애인 단체와 만나 '이준석 대표의 발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보겠다'고 약속을 하자, 이준석은 "신속하게 하라"며 호기 넘치는 배짱을 부렸다. 아니, 경멸 섞인 비아냥이다.

여기서 '솔까말' 이준석이 나의 광팬임을 철회해야겠다. 근래 일련의 과정에서 보여준 이준석의 '분열증세'가 점점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서울시민과 장애인, 이대남 이대녀, 젠더 갈등.... 이러한 담론들의 공통점이 다양성의 옹호가 아니라 오랜 '갈라치기 습성'이었음을 보게 된 것이다. 모든 관성이 그렇듯이 갈라치기는 '자기분열'을 가져오게 된다.  나아가 보수진영에 '다양성 신약'을 투입하는 것은 사실상 '보수의 정체성'을 망각케 하는 짓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비빔밥'이라 하더라도 '갈라치기 숟가락'으로 비비면 '떡'이 된다는 원리와 마찬가지다. 

이는 입으로는 '포용의 정치'를 말하면서 뒷전에서 당대표의 '갈라치기 정치'를 특권화하는, 그런 권력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그리고 그런 차별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정치적 선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무엇이 좌절한 사람들을 괴롭히는가? 바로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는 자각이다. 그들의 가장 큰 욕망은 그런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것이다."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중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당대표는 '사회적 강자' 속으로 도망치지 말라. 도피는 맹목을 낳고 맹목적 질주가 곧 파시즘의 원천이다.  '갈라치기'가 한국의 진영정치, 분열정치의 키워드가 됐다는 건 이런 맥락이다. 이 지독한 레이스의 끝에서 도대체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다른 건 몰라도 더 불안하고 더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차이와 개성은 모두 침묵할 것이다. 파시스트의 얼굴은 항상 심각하다. 통념의 엄숙주의, 상식의 매너리즘, 소통불능 관계단절, 공감능력 상실... 아시다시피 모든 사이코패스에게는 '공감능력'이 없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아픔을 공감하지 못한다. 강자에 한없이 약해지고, 약자에게 한없이 강해지는 게 사이코패스고 파시스트다. 

갈라치기의 끝이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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