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0일 한덕수 국무총리를 만나 “야당의 협조를 받으려면 야당을 공격하거나 자극하는 수사를 자제해야 우리도 협력할 명분이 생긴다”며 “한동훈 장관에게 그만 좀 하시라고 전해달라”고 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우 위원장은 당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청취를 위해 국회를 찾은 한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한동훈 장관에게 그만 좀 하시라고 이야기해 달라’며 웃었다고 한다. 공개석상에서 그런 말을 한 걸 보면 농담조였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전해지는 얘기로는 비공개 면담 자리에서도 강하게 한 총리를 압박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2022.7.20 [국회사진기자단]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2022.7.20 [국회사진기자단]

단순한 농담 혹은 지나가는 말로 치부해도 좋을까 아니면 진심을 담아 무게를 실은 압력으로 보아야 할까. 일도양단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아도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일부 언론의 규정처럼 ‘수사 거래’ 언급으로 보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정권 차원의 의도가 있든 없든 각종 수사를 둘러싸고 윤석열 정부와 전임 문재인 정부의 대치 전선이 전방위적으로 형성된 상황이다. 야당으로서는 문 정부를 겨냥한 수사보다 미래 권력인 이재명 의원을 대상으로 한 수사에 대해 더 큰 위기감을 느낄 수도 있다. 아니면 우 위원장의 말처럼 야권 대상 수사가 계속되는 한 야당이 민생을 위해 정부 여당과 흔쾌히 협력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충정(?)의 발로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우 위원장의 발언은 여러모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검찰청법에 규정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거나 적어도 행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한 장관 개인의 의지와 별개로 현행 법에 따른 수사지휘를 하더라도 법무부장관은 구체적 사건에는 개입할 수 없다. 서면으로 검찰총장만을 지휘할 수 있을 뿐이다.

우 위원장이 어떤 사건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한 장관이 전 정권 혹은 이 의원을 대상으로 한 모든 사건을 ‘그만 좀 하라’는 지시를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만에 하나 한 총리가 거대 야당의 협조를 받기 위해 그 같은 말을 전했다 치자. 국무총리와 법무부장관을 거쳐 검찰총장(현재는 직무대행)이 일선 검사장이나 일선 수사팀에 그만 좀 하라는 지시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하달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국기문란에 해당한다며 나라가 뒤집힐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 이른바 재판거래 혹은 사법농단이라는 이름으로 대법원장, 대법관을 비롯한 수많은 법관들이 사법처리 대상이 된 것 못지 않은 파동을 목격하게 될 게 분명하다. 특정 사건에 대한 수사 지시가 동일한 경로를 거쳐 내려가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면 ‘야당을 공격하거나 자극하는 수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지시 역시 상상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일일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지만 현재 문제가 되는 수사는 대부분 지난 정부에서 시작된 일이다. 이재명 의원 관련 수사 역시 마찬가지다. 검찰이나 경찰이 늑장 수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탈북 어민 북송사건 정도만 현 정부에서 불거진 새로운 사안이다. 해묵은 사건을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가 정치권 눈치 보기인지 수사 역량 부족인지 윗선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벌써 마무리를 지었어야 할 사건이 대부분이다. 압수수색을 한 지 오랜 사건들조차 결론은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사실을 지적하고 정치적 고려나 편향성 없는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은 야당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비상대책위원장이지만 우 위원장은 실질적인 야당 대표이다. 정부 여당의 국정 운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비판하고 견제하는 역할은 야당이 마땅히 해야 할 고유한 임무이다. 그 선을 넘어 수사 자제를 국정 협조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정치적 측면에서 보아도 부적절할 뿐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실책에 가깝다.

특히 이 의원 수사가 막바지로 향하면서 당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거론되는 ‘사법적 리스크’에 실체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수사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한 바 있다. “국민의힘이 이 의혹을 고발해 (수사기관이) 3년 동안 탈탈 털었는데 아무 것도 안 나와 무혐의가 되지 않았나”라며 “사골을 우려먹는 것이다. 적당히 우려먹어야 한다”거나 방탄 출마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피하려 국회의원이 되려 하는 것 아니냐고 모함한다”며 “총알도 없는 장난감 총으로 겨눈다고 방탄이 (필요하겠나), 진짜 방탄이 필요한 건 국민의힘”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사자가 이 정도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는데 우 위원장이 걱정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언감생심 ‘수사거래’는 지나가는 말이라고, 일부 언론의 이른바 프레임이라고 믿고 싶다. “저희 더불어민주당도 경제 위기, 민생 위기를 극복하는 데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우 위원장의 발언이 진심이라면 거기에는 어떤 조건도 거래도 있을 수 없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국회가 정상화 수순에 접어들었다. 수사는 수사대로 빨리 결론을 내도록 촉구하고 정부와 여야가 경제 위기, 민생 위기 극복에 전폭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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