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한유성 기자] 윤석열 정부에 대한 첫 번째 국정감사가 어제 시작되었습니다. 대통령의 순방외교 관련 이슈를 주된 쟁점으로 꺼내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첫 날 일정은 예상대로 파행의 연속이었습니다. 순방외교와 관련해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박진 외교부장관의 출석 문제부터 쟁점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 요구도 법사위 등 여야간 공방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지난 18일부터 5박 7일간 윤석열 대통령의 두 번째 외교 행보는, ‘빈손 외교’라는 평가와 ‘비속어 파문’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 속에 마무리되었습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조원씨엔아이에 의뢰해서 9월 24~26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순방외교에 대해 잘못했다는 평가가 70.9%였습니다. 순방 중 비속어논란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70.8%로 나타났습니다.

조문 불발, 대일 굴욕외교 등 순방일정마다 따라다닌 논란은, 외교라인의 문제점과 대통령실의 역량을 문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다자간 외교의 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바이든과의 48초 회담은 모든 국민을 뜨악하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미국과 해결해야 할 두 가지 경제 이슈에 주목하던 취재진에게, 당일 던져진 기사거리는 밧데리 문제 해결도 한미간 통화스왑도 아닌 ‘대통령의 비속어 발언’이었습니다.

사실 외교적 성과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고, 미국과의 이슈는 해리스 미 부통령의 내한으로 외견상 최소한의 해결 여지를 둘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유보적 판단도 가능해 보입니다. 하지만, 전 국민을 청취력 테스트로 내몰았던 비속어 파문은,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길로 들어섰다고 보입니다.

영국ㆍ미국ㆍ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영국ㆍ미국ㆍ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무엇이 되었든 본인이 한 말이면, 발언의 맥락과 취지를 설명하고 깔끔한 사과로 털어버리는 것이 순리이고 상식입니다. 그런데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했다’면서 MBC를 고발하는 사태를 만들었습니다. 언론단체들의 규탄이 이어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MBC의 정언유착이 낳은 언론참사’라며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문제를 키웠습니다.

그에 대한 국민의 판단은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으로 나타났습니다. 9월 마지막 주 한국갤럽의 조사 결과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24%로 급락했습니다. 추석 직후 조사에서 33%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불과 2주만에 정권 출범 후 최저치로 다시 내려간 것입니다. 계속 우위에 있던 국힘의 정당지지율도 민주당에 크게 뒤졌습니다.

3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조사결과도 직전 주에 비해 3.4%p하락한 31.2%였습니다. 최저치였던 29.4%보다는 높지만 30%선의 붕괴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고, ‘매우 잘못한다’는 응답이 다시 60%에 이르고 있습니다.

8월 초 바닥을 찍고 추석 전후 모든 조사에서 30%대 초반으로 상승했던 지지율이 분명한 하락세로 돌아선 것인데, 다시 상승 전환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지지율 상승 시기의 조사결과를 보면, 지지층의 외연을 확장한 것이 아니라 강경보수층의 결집도가 높아졌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런데 이번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보수지지층 가운데 37.7%가 ‘매우 잘못한다’고 답을 했습니다. 지난 조사 대비로 6.7%p가 상승한 것인데, 순방외교라는 기회 요인이 역작용을 일으키며 보수층 내에서 윤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다시 확산된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정감사가 시작되었는데, 정부여당의 반전카드는 30일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 통보’였습니다. 윤석열 정부 집권 초기부터 문제삼았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7월부터 감사원이 검사에 착수했는데, 정부여당이 수세에 몰리자 전 정권에 직접 칼을 겨누는 ‘문재인 때리기’에 나선 것입니다. 사실 보수층에서는 ‘왜 전 정권 적폐청산을 제대로 못 하느냐’는 불만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해당 사건에 대해 서훈, 박지원 국정원장에 대한 조사 요구도 거부된 상황인데, 혐의도 특정되지 않은 전직 대통령을 감사원이라는 칼을 앞세워 조준선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윤 대통령과 국힘의 의도는 분명한데, 과연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당장 민주당은 전면적인 대결을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이재명 당 대표는 ‘국민을 지키라는 총칼로 경쟁자를 짓밟았던 독재정권처럼 공포정치에 나선 것’이라고 규정하고 ‘모든 걸 걸고 맞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5개월 만에 완벽하게 붕괴된 공정과 상식을 다시 세워야 한다’면서 국정감사에 임하는 다수당, 민주당의 책임도 강조했습니다.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연이은 선거 패배로 이완된 지지층을 결집하고 중도층의 분노와 실망을 끌어안을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있는 듯 합니다.

현재의 여론 지형은 윤 대통령이나 국힘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번과 같은 외교 참사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강경보수층 외에는 윤 정부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집토끼는 지킬 수 있겠지만, 스스로 토끼장 안에 갇혀버린다는 야당 모 의원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결국 국회의 박진 외교부장관 해임 건의는 완전히 무시하고 전 정권을 정조준하는 반전 카드를 꺼낸 것인데, 파행으로 갈 것이 분명해진 국정감사, 국민들은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 아니면 누가 더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윤석열 대통령의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생각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이 솔직함과 책임감, 소통 등이었습니다. 비속어 파문 와중에서 윤 대통령은 이런 이미지에 맞는 선택을 왜 할 수 없었을까? 그야말로 ‘깔끔한 사과’ 한마디만 있었어도, 우리 국민의 정서상 국격과 국익의 훼손이 우려되는 이슈가 이렇게 오래 갈 수는 없습니다.

주변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대통령은 무엇 하나 스스로 잘못했다고 시인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범죄자를 취조하고 죄를 판단하는 위치에 있던, 그래서 스스로의 오류는 인정하지 않는, 검사 생활 26년을 한 사람의 특징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윤 대통령과 측근들이 이슈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진짜 우려되는 것은,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라는 인식이 지배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요즘 보수 언론의 논조도 많이 분화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유독 ‘C일보’는 더욱더 강경 노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자 칼럼은 ‘윤 대통령, 총선 승리 전까지는 임시대통령이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비속어 파문을 윤 대통령 찍어누르기로 규정하고, 여기서 밀리면 총선은 물론 정권 재창출도 없다면서, 윤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전 정권의 적폐척결이고 윤 대통령이 할 일은 실수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권을 둘러싼 권력핵심들의 사고를 읽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사안을 언론 이슈의 중심에서 멀어지게 할 수는 있지만, 국민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슈를 더 큰 이슈로 덮는 것이 정치기술일 수는 있겠지만, 이번 비속어 파문은 그렇게 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국민 앞에서 하는 깔끔하고 겸손한 사과 한 마디는 사안을 사소한 실수로 만들고, 더 이상은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대통령과 국민의 약속이 됩니다.

‘반성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는 것이 상식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더 큰 실수와 실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일 권력 다툼 성격의 정치적 이슈라면 많은 질곡의 과정을 겪으며 해결점을 찾아가겠지만, 만일 그 실수가 경제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갈 길을 계속 간다’는 식의 부동산 정책이 어떻게 귀결되었는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에 비교될 수 없는 경제위기가 목전에 와 있습니다. ‘국제 여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대통령의 언급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대통령은 위기로 치닫는 현 상황에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닌가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6%를 넘나드는 물가상승률과 7%대의 주택담보대출 금리, 1,400원을 훌쩍 넘긴 환율에 무역 및 경상수지 적자까지,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악몽을 되살릴만한 경제지표들이 나열되어도,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은 ‘아직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만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정기국회마저 극한의 여야대결로 점철된다면, 민생의 위기를 더 키우는 결과만 낳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순방외교 과정의 작은 오류를 덮기 위한 대통령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역사는 무엇이라고 기록하게 될까요?

최고지도자의 ‘무치(無恥)’는 잘못을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을 때 허용됩니다. 대통령이 지켜야 할 유연함의 근거는 ‘국민의 이익’에 있습니다.

70%의 국민들이 사과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협치를 되살리고 정국의 난맥상을 푸는 해법의 출발점이 대통령의 사과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과 없이는 정국의 반전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이나, 동서고금의 어떤 지도자도 이런 상황에서 ‘사과’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의 빠르고 현명한 선택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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