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함께 경제성장을 통한 근대화를 요구
박 교수는 ‘민주화의 주체는 누구였는가’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지금까지의 4.19연구들은 진보/혁명세력의 관점에서 좀 더 혁명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4.19에서 미국과 문화 헤게모니에 대해 다소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혁명에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대중/학생이나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들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미국’의 헤게모니적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는 “기존 4.19에 대한 논의에서는 ‘민족과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와 정의’가 강조되었다”며 “그러나 실제 당시 한국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었던 헤게모니는 미국이 주도하는 ‘근대’ ‘성장’ 그리고 ‘미국식 민주주의’”였다고 당시 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그는 미국의 역할론은 제기하며 “4.19 혁명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주도에 의해 이루어진 혁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이러한 4.19혁명을 미국 입장에서는 “그것이 한국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막는 역할을 한 반혁명을 위한 혁명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4.19를 ‘미국 헤게모니 하의 혁명’인 근거로 “미국의 대외정책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에서 농지개혁과 더불어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제기된 경제개발론/근대화론이 반혁명적 헤게모니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로스토우의 경제성장의 제단계는 ‘반공산주의 선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그 내용 중에는 ‘공산주의라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서 경제개발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정부 10년도, 보수 헤게모니서 벗어나지 못해
이러한 미국의 헤게모니는 당시 한국 국민대중의 경제성장을 통한 근대화 요구와 부합함으로써 4.19혁명의 성공에 기여했지만 달리 4.19혁명에 대한 반혁명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결과적으로 4.19 혁명을 주도했다고 자부하는 개혁/혁명 세력과 보수 세력들은 왜 모두 실패하고 말았는가?”는 질문을 던지며 “대중들이 원하고 있었던 것은 단지 정치적 차원에서의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통한 근대화 역시 대중들이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경제적) 요구가 정치적 민주화나 민족문제로서의 통일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였을 수 있다”며 “개혁/혁명 세력은 이 점을 읽지 못했고, 보수 세력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를 추진하기에는 스스로의 문제가 너무나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4.19 혁명의 결과는 오히려 ‘반혁명’의 이념이 승리하는 형태로 나아갔다”며 “1987년 민주화운동이 가져온 새로운 민주주의적 기제 역시 ‘반혁명’의 내용을 크게 넘어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그는 “민주화의 결과로 들어선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는 이전 정부에 비해 진보, 개혁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은 보수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적극적으로 편입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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