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월 19일, 10만여 명이 경무대(지금 청와대) 앞에서 <리승만 물러가라>고 외쳤다. <4.19의거>는 동국대학교 학생이 이끌었다. 법학과 3학년 김칠봉이 이끌었다. <동국대는 경무대로 가자>, <리승만 물러가라>를 김칠봉이 선두에서 외쳤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부정선거 다시하라>고 외치던 대학생, 고등학생들이 <우리도 경무대로 가자>로 되었다. 박수치던 시민들이 합세하여 10만명을 헤아리는 숫자가 경무대 앞에서 <리승만 물러가라>를 외쳤다. 리승만은 경찰에 지시해서 그들에게 총을 쏘라고 명령했다. 땅바닥에 쓰러지면서도 리승만 물러가라는 소리는 하늘을 찌르듯 했다. 4․19학생의거에 리화녀자대학교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 리화대학교 학생은 4․19의거에 비겁했다. 만세토록 씻을 수 없는 부끄러움을 남겼다.

리기붕 아내 박마리아가 리화녀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리화녀자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그 때문에 리화학생이 비겁하게 되었다고 하면, 리화학교는 학교로 되기에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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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2일자 조선일보에 <광주에 사는 외과의사가 딸에게 보낸 편지>가 실리었다. 그 편지글을 아래에 옮겼다.

인옥아! 내 사랑하는 딸아!
내가 이 글을 신문에 기고하여 세상에 널리 읽히고자 하는 것은 나만이 딸을 가진 애비가 아니고, 또 나와 같이 너의 학교에 딸을 보낸 수천의 부모들이 모두 내 심정과 같은 것을 생각하고 이 부끄러움을, 이 고통을 함께 나누고, 함께 울고자 함이로다. 구태여 너의 학교 이름을 여기서 밝히지 않는다 해도, 한 마디로 서울 시내에 있는ꡐ대학교ꡑ라는 이름을 가진 학교 중에서 저 4․19데모 때에 나서지 않고, 빠져버린 대학교라면 둘도 있지 않고,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나는 그렇게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시골에서 어렵사리 외과의사 개업을 해서 네 뒤를 보아온 내가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한 사람의 이 나라 동포로서 이렇게 슬프고 괴로워 해보기는 내 생애에 있어서 이 번이 처음이다. 너의 학교는 수십년의 역사를 가지고 빛나는 전통을 자랑하며 수많은 여성지도자를 배출해 낸 이름 높은 학교였다. 세상에서는 너의 학교 학생들에 대해서 사치와 방종하는 경향이 있느니, 다른 학교보다 학비가 많이 드느니 하는 세평도 없지 않으나, 나는 그 말을 반박도 하여왔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할 말이 없게 된ꡐ부끄러운 아버지ꡑ가 되고 말았다. 나는 신문이란 신문은 모조리 뒤지면서 행여나 내 딸의 학교 이름이 나오지 않나 하고 얼마나 찾았는지 모른다. 이제는 시력도 약해지고 기억력도 좋지 않지만 나는 너의 학교 이름을 단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하고 말았다. 신문을 보면서도 눈물이 사뭇 북바쳐 견딜 수가 없는 이 벅찬 역사적 마당에서, 그 젊은 대열 가운데 하필이면 내 딸이 다니는 학교만 빠졌다는 것은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그 숱한 젊은이들 가운데 내 딸의 모습이 끼어있지 않고, 내 딸의 학우도 끼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것이 수십년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내 딸의 학교가 홀로 보여준 교풍이었단 말인가!

인옥아! 요즈음은 별로 수입도 많지 않고 모아 놓은 재산도 없다는 것, 누구보다 네가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남의 자식에게 빠짐이 없이 무엇이나 부족함이 없이 네 뒤를 밀어오기에 있는 힘을 다 하였다. 그리고 내가 네게 바라는 것은ꡐ비굴한 행복ꡑ보다ꡐ당당한 불행ꡑ을 사랑할 줄 아는 여성이 되어지이다 하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서울의 거리가 온통 너와 같은 젊은 세대의 불길로 거세게 타오를 때, 인옥아! 너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ꡐ피의 폭풍ꡑ이 강산을 휩쓸고 마침내 낡고 썪은 것들이 너희들 젊음 앞에 굴복을 하고 만 그 시각에 나의 피를 받은 너는 대체 어디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더냐? 그 불덩어리들 속에 타오르는 심장의 피빛이 네 피와는 다르더란 말이냐? 그 암흑을 밀어나가는 북소리들이 네 목소리와는 다르더란 말이냐? 너는 정녕 그 젊은 기수들 속에 네 생명을 바쳐 사랑하는 애인 한 사람 없었더란 말이냐?

서글픈 일이다. 분한 일이다. 네 젊음을 스스로 모독한 시대의 고아(孤兒)가 되고 말았구나! 어찌 네 가슴에 뺏지를 달고 이 태양 아래 활보할 수 있으랴! 총탄에 넘어진 아들 딸을 가진 비통함보다 털끝 하나 옷자락 하나 찢기지 않은 너를 딸로 가진 이 애비의 괴로움이 더 깊고 크구나!

인옥아? 어서 뺏지를 떼고 교문을 나와 병원으로 달려가거라. 죄인과 같은 부끄러움과 겸손한 태도로 아직도 병상에서 신음하는 그 젊은 영웅들 앞에 네 피를 아낌없이 부어라. 그 젊은이들이 너 같은 여자의 피라도 받아 준다면....그리고 그만 시골로 내려오너라. 그 편이 한결 애비된 내 마음이 편할 것 같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함께 조용히 생각해보자. 결코ꡐ부자집 맏며느리감ꡑ을 만들기 위해서 너를 대학에 보낸 애비가 아니라는 것---네가 잘 알 것이다.

이 찬란하고 장엄한 역사의 아침 앞에서 이렇게 흥분하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다. 인옥아! 이 늙어가는 애비의 말을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너의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 보아라. 사랑하는 딸자식을 위한 애비의 심정이 어떠할까를...광주의 아버지로부터
<1984 학민사ː四一九 민중사. 자료집> 머리글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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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화녀자대학교 학생은 <4.19의거>를 보고도 못본 체했다. 만세토록 전해 질 부끄러움을 남겼다. <리승만 물러가라>를 외친 사람이 서울에서 10만여 명이었는데, 그 속에 리화녀자대학교 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되고서도 여지껏 부끄러워하는 글 한 편이 없었다. 그렇게 되고서도 대학교라는 간판을 걸어서 될까. 겨레의 슬픔을 못본 체하면 비겁한 사람으로 된다.

학교가 학교로 될려고 하면 교훈이 뚜렸해야 한다. 학교 설립이 오래되었다고, 그것이 자랑거리로 되지 않는다. 학교가 지니고 있는 자랑스러운 일이 쌓이면 그것이 교풍으로 된다. 교풍에서 교훈이 나와야 한다.

리화녀자대학교에 교훈이 <眞>으로 되어 있다. <진>은 <참진>으로 읽는 차이나글자이다. 배달말로 되지 않고 차이나 글자 하나로 되었으니, 가슴을 때리는 가르침이 될 수 없다. 거기에다가 <진>이 명사이다. 수박, 참외가 명사이다. 명사는 교훈이 될 수 없다. <진을 찾자>라고 하든지, <진을 찾지 말자>라고 하든지, 동사부가 들어가야 한다. 리화녀자대학교 교훈이 <진>으로 된 것은 미인선발 대회에 나갈려고 생각하다가 보니, <미스 코리아 진>, <미스 코리아 선>, <미스 코리아 미>가 머리에 떠오르게 된 것이다. <미스 코리아 진>이 되어야 <미스 유니버셜 선발대회>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수영복을 입고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가서 <미스 코리아 진>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학교로 된 것이다. 그 곳에서 떨어진 학생을 위로하는 선발대회가 또 있다. 녀왕을 뽑는 <퀸 선발대회>가 또 있다. <녀왕>이 되었으면 하는 <허풍>에서 비겁한 사람을 기르게 된다.

독자 여러분. 광복후 리화녀자대학교가 1966년에 <梨花八十年史>라는 책을 내었소이다. 무식쟁이가 지은 책이름으로 되었소이다. <史>라는 글자는 <나라 흐름을 기록할 史> 字로 된다. <梨花八十年國>이라는 나라가 발행하는 책이 <梨花八十年史>로 된다. 나라가 아닌 단체가 <史>라고 하면 역적죄에 걸린다. <梨花八十年誌>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었어야 하건만 <梨花八十年史>라는 무식쟁이 책을 내었소이다. 1960년 4월 19일 경무대 앞에서 리승만 물러가라고 외쳤던 의거인이 10만여명이었다. 리화대학교학생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로부터 6년 뒤에 <<梨花八十年史>라는 역적책을 내었던 것이다. 1966년에 나온 <梨花八十年史>라는 책이 본이 되어, 나라안 곳곳에 ○○面史가 나오고, ○○郡史가 나오고, ○○道史가 나오고, 서울市史가 나와서 나라사람 전체가 무식쟁이로 되었소이다.

나라흐름, 겨레흐름을 기술하는 것을 <史>라고 한다. 고조선사기(古朝鮮史記),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가 나라흐름 기록이다. 나라흐름 기록할 <史>로 된다. 나라물건을 기록할 지(志) 字가 또 있다. <世宗實錄地理志>가 있고, <高麗史樂志>가 있고, <國朝人物志>가 있다. 또 집단의 흐름을 기록할 <誌> 字가 있다. <公州郡誌>가 있고, <慶州郡誌>가 있다. 1996년에 경상북도 도지사 리의근(李義根)이 <慶尙道七百年史>라는 책을 만든다고 했다. 그 책 편찬위원 위촉장이 나에게 왔다. 나는 <○○誌>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어야 한다고 했으나, 1999년에 <慶尙道七百年史>라는 무식쟁이 책이 나오고 말았다. 이 모두가 <梨花八十年史>라는 무식쟁이 책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무식쟁이로 된 것이다. 1997년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50年史>라는 이름으로 책을 낸다고 회장이 통지문을 돌렸다. 나는 또 주장했다. 책이름이 <○○50年誌>로 되어야 한다고. 회장이 내 말에 따라 주어서 <경북대학교○○50年誌>라는 책이 나오게 되었다.

<梨花八十年史>라는 무식쟁이 책이 1966년에 나왔다. 그로부터 31년 뒤 경북대학교가 <경북대학교 50年誌>라는 책을 내어서 유식한 사람이 경북대학교에 있게 되었다.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놓여야 안전하게 된다. 말이 더욱 그러하다.

독자 여러분. <서울시 100年誌>라고 해야만 나라가 소중하게 됩니다. 무식쟁이들이 모여서 <서울市史>라는 책을 내었소이다. 차이나가 와서 <서울시>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소이까>라고 물으면 서울시장이 부끄럽게 됩니다. <동국대학교 100年誌>라고 해야만 나라가 소중하고 겨레가 소중하게 되고, 겸손하게 됩니다. 잘못을 바로잡는 그 힘으로 나라가 바로잡혀 나가게 됩니다.

서울성남고등학교 교훈이 <정의에 살고 정의에 죽자>로 되었다. 성남고등학교 졸업생 김칠봉이 고등학교 교훈이 큰바위 얼굴이 되어 큰인물로 되었다. 그가 동국대학교 법과 3학년이 되었을 때 4.19의거를 이끈 지도자로 된 것이다. 서울성남고등학교를 설립한 사람이 김 석원(金錫源 1893~1978) 장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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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화녀자대학교는 정의로운 사람을 만드는 교훈을 새로 만들어서 당당한 사람이 길러지도록 되었으면 좋겠다. 나라와 겨레가 머리 속에 굳세게 들어가 있는 유식한 사람이 교수단에 없으면 <梨花八十年史>라는 무식쟁이 책을 만들게 되나이다. 남의나라 대학교 졸업장으로 교수를 뽑으면 언제나 국적없는 대학이 되나이다. 비겁한 사람을 기르지 말고, 부끄러움없이 사는 당당한 사람을 길러야 한다. 약사빠른 사람을 길러서는 안 된다.

리화녀자 대학교는 프란체스카(Francesca Rhee1900~1992)에게 법학박사학위를 주었다. 프란체스카는 대통령 리승만 아내이다.리승만 첫째 아내는 박씨였다. 리기붕 아내 박마리아가 리화녀전 졸업으로 광복 후 리화녀자대학교 강사, 부총장을 했다. 박마리아를 도우기한다고 리화녀자대학교 학생이 4.19의거를 못본 체 했다고 하면, 이것은 참으로 비겁한 짓이다. 박마리아가 남편 리기붕을 출세시킬려고 하던 그 길에서 집이 망하고 말았다. 비겁하게 살면 콩가루집안으로 되고, 당당하게 살면 자손이 번창하게 된다. 마리아집이 남긴 가르침을 리화녀자대학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고, 정덩당당한 사람이 되자>라고 교훈을 세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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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화학당이 세워진 날이 1886년(병술) 5월 31일이라고 한다. 갑신왜란(1884)이 일어난 2년 뒤가 병술년이다. 아메리칸 선교사(스크랜턴)가 세웠다고 한다. 큰뜻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다. 1996년에 <이화여대 110년史>라는 무식쟁이 책을 또 내었다. <史>라는 글자 뜻을 아는 사람이 리화녀자대학교에 없다. 졸업생에서 큰인물을 내려고 하면 나라를 소중하게 여기는 교훈이 있어야 한다.

◑머리속에 나라가 없는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게 된다. <을사 5적>, <경술 7적>이 모두 머리속에 코리아가 없는 놈들이었다. 머리속에 겨레가 없는 사람은 겨레를 배반하게 된다. 비애왕(悲哀王)은 겨레를 배반하고 나라를 자팬왕에게 넘겨 주었다.

◑나라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리화녀자대학교에 있었다고 하면 책이름을 <梨花女大 110年誌>라고 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발행하는 모든 책이름은 교지(校誌)로 되어야 한다. 교지(校誌)를 이라고 한다. <梨花八十年誌>라고 해야 바르게 되어 무식쟁이를 면하게 된다.

◑시청(市廳)에서 발행하는 모든 책이름은 시지(市誌)로 되어야 한다. 시지(市誌)를 이라고 한다. <서울市誌>라고 해야 바르게 되어 무식쟁이를 면하게 된다. 서울에 있는 무식쟁이들이 모여서 <梨花八十年史> 책을 들먹이면서 <서울시史>라는 책을 내었다. 사울시장에게도 책임이 조금 있다. 유식한 사람에게 물어보고 책이름을 정했어야 했다.

◑도청(道廳)에서 발행하는 모든 책이름은 도지(○○道誌)로 되어야한다. <道誌>를 이라고 한다.

◑나라흐름을 적은 것을 <史>라고 한다. <史>를 라고 한다. 코리아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 대학교 문과 교수자로 되고 있다. 기초를 가르칠 사람이 없게 되어서 문과가 망하게 된 것이다. 자팬한테 글을 배운 사람이 대학교 교수자로 되다가 보니, 나라말이 뒤죽박죽으로 더럽게 된 것이다. 말이 더럽게 되면 사람 머리가 그 만큼 더럽게 된다.

라고 하면, 사양사람들이 웃으면서 무식쟁이 학교라고 말하게 된다. 소인배는 잘못을 알면서도 고치지 아니한다.

려증동/경상대 명예교수/배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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