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양극화’ 대응 미숙으로 정권 재창출 실패

“청와대에 있는 동안 제일 답답했던 게 비정규직 문제였다. 여러 번 회의도 하고 전문가도 만나고 했는데 딱 답을 제시하는 사람을 잘 못 봤다. 전부 진단하고, 비판은 하면서 대안 제시는 잘 못한다. 우리나라 지식인의 수준이 그런 단계다.”

참여정부 시절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아 경제정책을 총괄한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지난 2008년 초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키웠다는 비판에 대해 자신의 고뇌를 이 같이 밝혔다.

비정규직을 비롯한 양극화 문제는 보수진영의 의제라기보다는 진보의 핵심의제임에도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참여정부가 여기에 속수무책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진보진영은 이 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6.2지방선거를 계기로 복지논쟁이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르면서 진보적인 정치지형이 되살아나고 있음에도 비정규직을 비롯한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무상급식을 두고 범진보 제 정치세력이 합의의 틀을 마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2011년에는 민주당을 비롯한 범진보진영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형편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 일정에서 양극화 아젠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2002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게 ‘양극화’는 천형이었다. 그리고 그 핵에는 ‘비정규직’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출범시 이 문제에 관한한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IMF 외환위기 결과로 진행된 양극화는 2002년 대선까지도 미래 한국사회의 최고 골칫덩이로 숙성되는 기간이었기에 이때까지 정치이슈 전면에 부상하지 않은 탓도 있다.

그러나 5-6년간 내적인 숙성기간을 거쳐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는 노 대통령 집권시기에 사회 갈등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고 참여정부는 여기에 허겁지겁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임기 내내 보수와 진보 양측으로부터 ‘양극화’와 관련한 비판을 감수해야 했고 여러 차례에 걸쳐 ‘민생’을 못 챙긴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했다.

참여정부는 2006년에서야 이와 관련해 두 가지의 처방을 제시했으나 모두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았다. 하나는 노동운동가 출신인 이목희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적극적으로 주도해 비정규직 사용제한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2년을 넘긴 비정규직 노동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한 현행 비정규직법 제정이다.

그러나 이 처방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보다는 버스 떠난 뒤 손 흔들기에 불과하다는 좌절감만을 남겼다. 또한 같은 해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주도로 증세와 복지 그리고 사회투자를 통한 일자리창출을 도모한 ‘비전 2030’도 제시했지만 당시 시급하게 제기된 현실문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결과 참여정부는 집권 후반기에 진보와 보수 양진영으로부터 ‘민생 파탄 정부’란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보다 큰 문제는 차별의 고착화

그 결과 2007년 대통령 선거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으로 귀결됐다. 국민들은 ‘보다 높은 성장’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참여정부가 이룬 4%대 후반의 성장률을 뛰어넘는 7%대의 성장으로 3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그의 비전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만 3년이 된 지금 ‘비정규직’ 문제는 한 치의 진전도 없이 오히려 후퇴했다. 사용기간 2년 제한은 무력화됐고 노동유연성 강화란 명목하에 비정규직 사용목적의 폭도 넓혔다. 비정규직을 보다 양산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최근 올 8월 기준으로 근로형태를 조사한 결과 총 고용노동자 1704만명 중 비정규직은 이 중 33.3%인 568만명이다. 노동자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다. 그야말로 비정규직은 어느덧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비정규직의 확대와 고착화는 고스란히 노동자 내부의 격차와 차별 확대를 의미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먼 나라 이야기다.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특히 대기업 사업장에서는 이는 더 심각하다. 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작업복 색깔에 따라 임금과 복지에서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노동자 평균임금에서 올 1분기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은 229만원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125만에 불과하다. 임금격차가 1.83배나 된다. 복지혜택까지 감안할 경우 비정규직은 그야말로 절반의 인생만 사는 셈이다. 이는 2009년 임금격차 1.75보다 확대된 것이다.

이대로 갈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규직의 경우 노사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어 임금인상이 매년 반영될 수 있지만 비정규직은 법적 최저임금 수준에서 답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균취업시간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각각 48.1과 40.8로 7.3시간 차이가 난다. 비정규직은 기업사정에 따라 언제든지 사업장에서 격리조치 당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고용의 불안정성은 곧 비정규직으로 하여금 비인간적인 굴욕을 감수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으로 고착화되고 있음에도 이 문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사회정치적 의제에서 밀려났다. 참여정부 시절 고조됐던 국민들의 관심도도 점차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외면한다고 해서 없어질 문제가 아닌 이상 다시 우리 사회정치적 의제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은 고의적으로 이 문제를 축소하고 외면하고 있다.

진보적 해법, 논쟁은 있으나 대안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

최근까지 거론돼 온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 째, 재계의 고용유연성 확대방안이다. 비정규직을 지금 보다 더 확대해 사업장 내에서 비정규직이 다수를 차지하게 해 비정규직이 비정상적인 것이 아닌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노동형태로 만들어 차별을 시정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진보진영의 비정규직 철폐다. 비정규직 탄생 자체가 노동을 시장주의에 극단적으로 편입시킨 것이라는 비판이다. 이는 곧 대안으로 현재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파생되는 실업문제 등에 대해 복지수준을 사회안전망이 확고히 구축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 제시하는 방안이다. 노동자계층 내의 격차해소이다. 이를 위해선 대기업과 공기업에 속한 노동자와, 교사 등 공무원들의 사회경제적 특권을 줄여나가는 것이 선행되면서 비정규직의 차별시정조치가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고용유연성 확대정책’은 첫 번째 보수진영의 해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2009년에 비정규직 개정을 강행한 것도 이러한 정책적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양산정책은 대기업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란 인식이 국민들 속에 자리 잡으면서 이미 더 이상의 설득력을 잃고 국민적 반발에 부딪힌 상태다.

재계와 정부는 비정규직의 확대가 기업의 고용비용을 낮춰 투자확대를 야기해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고용조건이 개선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10년 이상 그 방향으로 지금껏 달렸지만 그 결과가 대기업의 이익만 확대됐을 뿐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은 더 악화됐다는 비판만 받고 있다.

문제는 진보 진영내의 대안이다. 진보 진영 내에서 비정규직 해법을 둘러싸고 구체적인 해법 창출에 나선 상태는 아니다. 다만 논쟁만이 있을 따름이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진영이 주장하는 ‘비정규직 철폐’는 대안이라기보다는 당위성에 치우쳐 있다는 약점이 있다. 한국사회에서 실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 사회세력간의 합의도출을 목표로 한 현실적인 대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진보의 선명성과 이념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지만 실제적인 적용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오히려 이 문제에 대해선 김대호 소장의 주장이 오히려 솔직하고 현실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공무원, 공기업, 교사 포함)의 진입장벽이 견고해지면서 노동의 격차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이를 점진적으로 해소해야 비정규직 문제 등 우리 사회의 각종 차별문제에 대한 해법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논쟁이 자칫 대기업 노조 책임론으로 번질 가능성 우려

그러나 진보진영 내의 논쟁은 아직 불이 붙은 상태는 아니다. 출발선상에서 전열을 가다듬는 형국이다. 본격적인 논쟁은 대기업 정규직 등을 비롯한 상대적으로 좋은 고용조건을 향유하는 노동계층과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 등 차별받는 노동계층간의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두고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엔 정부의 역할과 기업의 문제, 복지문제까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들이 모두 결부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과정에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노총 조합원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 사회는 뜻하지 않은 소용돌이에 빠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사회적으로 일방적 양보를 강요하는 불합리한 상황 전개도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특히 지금 재계와 보수적인 정권이 사회적 의제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한 상황에서 정부와 기업의 역할이 가지는 절대적인 기능은 도외시 한 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격차만 강조될 경우 정규직만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 있는 역기능을 낳을 수 있다. 노, 사, 정에서 사용자와 정부는 빠진 채 노동자 내부의 문제만 거론될 수 있다는 우려다.

진보진영은 바로 이 점 때문에 논쟁의 출발선에서 서로 머뭇거리는 형국이다. 대기업 노조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지만 사용자와 정부가 지금처럼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내부논쟁에 휩싸일 경우 이들에게 이용만 당할 뿐이란 인식이다. 이로 인해 그나마 진보의 자산으로 치부되는 노조조직에 심대한 타격만 줄 뿐이다.

바로 여기서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전부 진단하고, 비판은 하면서 대안 제시는 잘 못한다. 우리나라 지식인의 수준이 그런 단계다”고 말한 속사정으로 풀이된다. 비정규직 문제에 비판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논의에 대해선 소극적이란 뜻이다.

그 결과 ‘비정규직 양산과 확대’란 보수적인 해법은 지금 이 시간에도 실제적이고 실효성을 가지고 노동시장에서 관철되고 있으나 이를 견제할 진보적인 해법은 구호 수준에서 제시될 뿐 구체적 대안으로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해법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다. 결국 이 문제는 ‘동일임금-동일노동’ 원칙을 우리 산업과 사회에 얼마나 제대로 정착시키느냐의 문제로 논쟁은 가열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또한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두가 공유하는 인식이기 때문이다.

범진보진영은 재집권을 위해선 비정규직을 포함해 ‘양극화’문제에 대한 유효한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국민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리고 노동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까지 이 범주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중소 영세사업장 노동자 또한 임금이나 고용조건에서 비정규직과 비슷하다. 오히려 대기업 비정규직 보다 못한 것이 현실이다.

5인 이상 20인 이하의 소기업 노동자가 2011년 7월 1일부터 주40시간제에 편입된다. 대기업 노동자 보다 무려 7년이나 늦게 시행된다. 여기에 속하는 노동자만 200만 명이다. 이들의 수가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 수보다 많다. 그러나 그들 목소리는 미약하다. 우리 사회는 대기업 노조들에게 이러한 차별을 7년이나 감내하라고 감히 강요할 수 없지만 이들에겐 아무렇지 않게 행해진 것이다.

2012년 정치일정 대비, 비정규직 해법 본격적으로 모색해야

진보진영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2011년에는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이러한 ‘양극화’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제시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만 한다. 막연한 신자유주의 반대나 비정규직 철폐 주장만으로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대선시 양극화 문제에 치인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이란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열악한 노동시장 여건에서 일자리가 많아지면 그나마 일선 현장에서 고용의 안정성이라도 조금 더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3년간 ‘양극화’와 관련해 어떠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개선될 기미도 없다. 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보수적인 해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도 많이 약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성적표가 범진보진영에게 반사이익은 줄지언정 진정한 대안으로 인정하는 보증수표는 아니다. 국민을 설득해낼 수 있는 대안이 없을 경우 오히려 역풍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국민들은 민주당 등 범진보진영에 ‘비정규직’을 비롯한 ‘양극화’문제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대안 제시를 요구할 것이란 점은 자명하다. 국민들이 현실에서 겪는 차별과 격차로 인한 고통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MB와 한나라당의 ‘친서민’ 정책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짜 대안을 절실히 바라고 있는 현실이다.

게다가 최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가 회사측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지만 정규직 노조 조합원들이 연대파업 동참을 거부함으로써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그리고 사회적 관심망에서 고립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또한 분신까지 감행하는 과격양상을 띠고 있다.

노동 양극화문제의 핵심고리인 비정규직 문제를 계속 방치할 경우 노동자계층 내부분열을 키울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2011년 범진보진영 내에선 진정성과 당위성, 심정적 구호로 제시되는 양극화 대안이 아닌 실효성을 가지고 노사정 모두를 끌어들일 대안을 치열한 논쟁을 거쳐 마련하는 한 해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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