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자치 없는 지방자치란 허울뿐”

< 본 글은 월간 폴리피플 2011년 3월호(20호) ‘민선5기 단체장 인터뷰’에 게재되었습니다. >

소문대로였다. 구로구청장실은 책상 하나와 회의테이블 두 개가 전부였다. 책장 겸 장식장과 의자 8개를 빼면 말 그대로 썰렁했다. 창가에 가지런히 놓인 몇 개의 난화분이 그나마 삭막한 분위기를 다독였다.

신임 이성 구청장은 “책상 하나만 있으면 된다”며 청장실을 기존의 1/3로 줄였다. 기존의 집무실은 외부에 나가 있던 1개 과가 사용한다. 대신 기존의 화장실과 침실을 합쳐 현재의 집무 공간을 마련했단다. 이렇게라도 아껴서 어떻게든 구청 살림살이에 보태려는 눈물 어린(?) 노력의 결과이다.

대체 기초단체의 형편이 어떻기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할까? “1년 예산이 대략 3천억 원인데,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와 복지예산을 제외하면 구청이 자체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예산이 겨우 250억 원쯤입니다”…

“예산자치 없는 서울의 구청장은 서울시의 ‘아바타’일 뿐”이라며, “소득세와 법인세 중 일부가 기초단체로 귀속되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 이성 구로구청장을 <폴리뉴스> 및 자매지 월간 <폴리피플>이 지난 2월 22일 만났다.

-당선 이후 선거법 위반 재판에 시달리다 이번에 2심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 것 축하드린다. 이제 마음 편하게 구정에 임하게 됐는데 재판에 대한 소회와 지금의 마음가짐에 대해 밝혀 달라.

재판을 하는 동안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고 여러 가지로 속도 상했다. 내가 금권선거를 한 것도 아니고 사람을 매수한 것도 아니고 허위사실 유포와 관련해 재판이 걸렸지만 그러한 사실도 없었다. 재판 과정에서도 그러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리나라 재판 사상 한 번도 유례가 없는 케이스이다. 후보자가 허위사실을 유포하지 않았는데도 허위사실 유포 혐의를 받았다. 공약책자나 다른 여러 가지 선관위에 등록하는 홈페이지, 공약집, 매니페스토 등 스물 몇 가지에는 모두 정상적으로 ‘안양시장 후보’라고 되어 있었는데 딱 한 군데 법정홍보물에 ‘안양시’라고 되어 있었다. 억울했다. 홍보물 교정을 잘 못 본 것인데 어째든 나도 책임이 있다. 교정을 봤어야 했다. ‘장 후보’ 석 자가 탈자되어 이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이제 마음이 후련하다. 한편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통과세를 낸 것 같기도 하다.

-나중에 안양시장 당선자와는 이전하는 쪽으로 해결된 것인가?

공약 자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시비를 안 건다. 다만 왜 안양시장 후보와 약속하겠다는 것을 안양시와 약속하겠다고 썼느냐는 것인데 아무도 공약 자체에 대해 허위라면서 시비 걸지는 않았고 지금 진행 중이다.

-행정고시 출신 엘리트 공무원이고 경북 문경 출신이다. 상식적으로는 한나라당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을 텐데 민주당을 선택했다. 특별한 배경이 있다면?

첫째, 내 본 성향 자체가 민주당에 더 잘 맞았다. 공무원이긴 했지만 변화를 더 선호하는 쪽에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 쪽 성향과 가까웠던 것만은 틀림없다. 이 지역 국회의원이었던 이인영 민주당 최고위원과도 각별하게 잘 지내고 있었고, 정치인으로서 존경해온 점도 크게 작용했다.

한나라당으로 출마해달라는 권유는 구로구 이외에 굉장히 많은 지역에서 받았다. 당시 상황에서 당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여러 곳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달라는 권유가 많았다. 그때 구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당선 가능성이 거의 20%도 안 된다고 다들 이야기했다. 한나라당 후보가 워낙 강력했고, 서울에서 네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사람으로 한나라당에서 인정받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또, 구로에서 민주당 후보로는 승산이 없다는 인식이 많아 실제 구로는 민주당 경합이 거의 없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러 가지 정치적으로 한나라당과 성향이 몹시 맞지 않기 때문에 설사 당선되더라도 한나라당으로 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또 나는 돈도 없다. 그 당에서 일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뒷받침도 있어야 하고 정치적인 배경도 있어야 하는데 백지상태였다. 어차피 한다면 민주당 쪽에서 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민주당 당적의 단체장 중 공무원 출신이 이성 구로구청장 포함해 2명 정도로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청장께서는 특히 서울시, 청와대 등에서 탁월한 행정능력을 평가받았다. 민선단체장을 맡고 어떤 차이를 느꼈나?

행정업무 내용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구청장은 최종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책임감이 무겁다. 부구청장일 때는 행정이지만 구청장의 자리는 정치와 행정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그것이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원래 정치라는 것이 책임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민선 구청장은 그 책임을 지는 것이다. 정치와 행정이라는 양 측면을 다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양면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정치적 결정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다. 나는 대학에 가서도 강의도 많이 해봤지만 반드시 그 점을 강조했다. 직업관료 또는 전문가가 행정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정치인이 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미국 역사에서도 수 백 년 동안 논쟁이 계속돼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저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행정을 하면서 배우는 최선의 합리적 결정보다도 정치적 결정이 우수할 때가 종종 있다. 아무리 최선의 결정을 내려도 주민들이 그것을 용인하지 않는 상태에서 밀어붙이면 진행되지도 않고 시간만 더 지체된다. 그럴 경우 그것은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최선이 아니라 차선, 3선에도 못 미친다. 좀 부족한 결정일지 몰라도 주민과 함께 내리는 정치적 결정이 결과적으로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는 수도 없이 볼 수 있다. 우리가 겪었던 세종시 문제 등도 다 그러한 예다. 이것이 우리나라 백년 뒤의 장래를 두고 볼 때 최선의 결정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결정을 내리는 구청장이든 대통령이든 행정인인 동시에 한편으로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 더 옳은지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는 전문 행정인으로서 30년 일해 왔지만 그때도 늘 정치적 판단이 우수할 때가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또 의회가 있는 것이고, 의회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곳이다.

지금 내가 구청장 자리에 와있는데 전문 행정가로서 30년 동안 경험을 갖고 있지만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 이제는 정치적 판단을 섞어서 결정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결정의 내용이나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구로구에서 4년 동안 부구청장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어느 구청장보다 지역현안에 대해 완벽에 가깝게 파악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구로구는 복잡한 역사를 지녔는데, 구청장이 생각하는 구로의 미래상, 비전을 제시해 달라.

우리 구로구의 미래상이라 하면, 과거 우리 구로구는 대한민국 산업의 중심지였다. 국가산업단지 1호가 구로공단이었고, 이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다. 앞으로도 산업 중심지로서 역할이 오랫동안 진행될 것 같다. 구로공단 자리에 디지털산업단지가 서있고 다시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는데, 작년에 기업체 수가 1만개를 넘어섰고 종업원 수가 13만명을 넘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한 장소에 이렇게 많은 IT기업이 밀집해 있는 지역은 드물 것이다. 지금 와있는 기업들이 우리나라 국가산업의 선두, 최첨단에 서서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 그 역할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서울 GDP의 1/4을 디지털산업단지가 감당하고 있다. 작은 규모가 아니다. 서울에 25개 구가 있으니 4%만 해도 평균인데 25%가 이곳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미래산업들이 항상 여기서 먼저 아이디어가 나오고 개발이 되고 제품으로 발전하는 역할이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서 진행되리라고 기대한다.

-과거 서울시에서 상암 DMC 개발업무를 맡았는데 이곳 업무와도 연관이 있나?

상당히 연관이 있다. 어떻게 보면 비슷한 분야 중 하나인데,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상암 디지털산업단지는 국가산업단지이면서 관에서 주도해 만들어낸 IT단지이지만, 여기 구로 디지털단지는 임대료가 싸다는 등의 여러 가지 장점으로 인해 하나둘 씩 IT업체가 모이기 시작한 것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서 어떻게 보면 자연발생적인 면이 훨씬 크다.

원래 들꽃이 생명력이 훨씬 강하듯이 이곳의 생명력이 지금의 상암동 쪽보다 훨씬 강하다. 상암동은 투자를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워낙 많다. 실제 영업보다는 ‘건물을 사두면 남지 않을까’ 하는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투자가들이 많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산업적 기능을 만드는 데는 상당히 많은 지원과 정치적 배려, 끊임없는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곳은 모이는 모든 분들은 실수요자들로 실제 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업체들이 매일같이 창업하고 부도나는 등 창업과 부도가 1년 내내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여기가 바로 산업의 ‘야생지대’이고 생명력 강한 기업들이 여기서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다.

-서울시에서의 마지막 직책이 감사관이었다. 구청장을 맡고 청렴도 문제를 많이 강조하고 있고 시민옴부즈만제도를 과감히 도입했는데, 타 지역에서도 도입 이야기는 있지만 실제 도입한 곳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히 구로구에 청렴도에 문제가 있어서 강한 조치를 취한 것인지? 더불어 평소 행정 청렴도에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도 말씀해 달라.

무엇보다 공무원이 깨끗한 것은 국민의 신뢰를 쌓는 데 있어 또 공무원 생활 제대로 하는데 있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일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깨끗하지 못한 공무원은 항상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되고 공무원 생활 제대로 못 끝낸다. 우리 구로구만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아직도 관행적인 부패문화가 상당히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구로구도 그러한 문제들 때문에 홍역을 몇 번 치렀다. 여기 있던 부국장이 바로 얼마 전에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뇌물사건으로 작년에 구속돼 큰 물의를 일으켰다. 구로구에서 그런 뇌물, 인사부정 관련된 사건이 몇 번 있었다. 그런 이미지를 먼저 털어내는 것이 공무원 모두를 위해서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다. 인사에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인사는 너무 어렵다. 사실 서로의 안면을 익히기 어려울 만큼 큰 조직들이 있다. 삼성, 현대, 서울시청 등 그렇게 큰 조직들은 능력만 기준으로 딱딱 인사하면 된다. 그런 데는 능력대로만 인사하면 탈도 없고 가장 공정한 인사이고 제일 좋다. 구청조직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 대부분 공무원들이 여기에 들어와서 다른 구청 못 가보고 서울시도 못 가보고 여기서 퇴직한다. 수십년씩 서로 얼굴을 맞대고 같은 부서에서 일해서 전원 다 동료가 돼있고 친구가 돼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한 가족이다. 따라서 이곳 구청인사는 삼성, 현대, 서울 시청처럼 능력만 가지고 인사하기는 어렵다. 같은 가족인데 갑자기 장남을 내려오라고 하고 차남이나 삼남을 위에 앉히고, 다음에는 다시 삼남 내려오라고 하고 사남을 올려놓으면 가족 간에 도저히 융화가 안 된다. 이론적으로는 능력 위주의 인사가 최선인데 구청에서는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조직의 안정성·융화를 살펴가면서, 깨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물론 공로가 있는 사람은 좀 더 빨리 성장하도록 하는 노력은 계속해야 하지만 무 베어내듯이 서울시청처럼 큰 조직에서 하는 방식의 인사를 할 수는 없다. 능력 모자라다고 어디 보낼 데도 없고 자를 수도 없다. 어차피 능력 모자라도 데리고 써야 하고 능력 출중하다고 특별히 더 봐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속 같이 수십년 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의 안정성·융화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제가 지난번 인사할 때는 온 지 얼마 안 돼서 특별히 업적을 받을 만한 기간이 안 됐기 때문에 주로 인사에서 소외됐던 사람들, 제가 보기에 별다른 이유 없이 낙오돼 있던 사람들을 구제해 주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더불어 조직의 융화를 더 다지는 데 신경 많이 썼다. 앞으로도 그 점은 많이 강조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배려할 것이다. 그렇지만 시청처럼 전적으로 능력 위주만 갖고는 인사 못 한다는 말씀을 드리겠다.

-서울시는 크지만 대부분 구청들은 가용예산이 너무 적어 고심이 크다. 구청장께서도 “예산자치가 안 돼서는 지방자치가 안 된다”고 말씀했다. 구로는 사업체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세수가 좀 있을 것 같은데 재정문제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지? 행정 전문가 입장에서 재정교부금을 늘리는 방법 외에 예산문제를 근본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지 의견을 제시해 달라.

저도 꿈이, 우리 구로에 사업체가 많기 때문에 사업체가 많으면 세금도 많이 걷히는 그런 지방자치가 되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자치단체장이 기업을 위해서 뛸 필요가 없는 지방자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 나가서 외국기업을 데리고 오든 투자를 유치하든 국내 다른 기업을 우리 관내에 끌고 들어오든 이익 될 게 아무 것도 없다.

법인세, 소득세 다 국세이기 때문에 우리 구청은 기업체로부터 세금 안 받는다. 서울시도 안 받는다. 이렇게 소득세나 법인세가 없는 지방자치는 지방자치가 아니다. 그러면 지방자치 단체가 기업을 위해서 뛰어야 될 이유가 없다. 동경만 하더라도 법인세가 전체 세입의 50%가 넘는다. 전 세계 모든 나라는 소득세, 법인세가 다 세금의 중심이 돼있는데 우리나라 지방자치 제도는 소득세, 법인세 다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소득이 올라가도 우리 세금만 안 올라가고, 기업체 1만개 돼도 세금 못 받으니까 구로구는 가난하다. 그럼 무엇을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재산세를 받기 때문에 땅값이 올라야 된다.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야만 세수가 늘어난다는 말이니까 이런 지방자치 제도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그 부작용이 전국에서 일어나고 있다. 전국의 모든 자치단체장이 자기 관내에 있는 기업을 쫓아내기 위해서 혈안이 돼 있다. 우리 구로구도 그런 역사를 계속 지내왔다. 관내에 있는 제일제당에 ‘제발 좀 나가달라’ 하고, 다른 공장에도 나가달라 했다. 공장 하나 쫓아내고 그 자리에 아파트 지으면 세금이 몇 배 늘어난다. 또 주민들 민원도 없어진다. 외국에 있는 자치단체장은 다른 자치단체에 있는 기업을 하나라도 더 자기 자치단체로 끌어오기 위해서 회장 만나서 협상을 하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우리나라 자치단체장은 자기 관내에 있는 기업을 다른 데로 쫓아내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니 국가적으로 기업하기 어려워지고 이는 올바른 지방자치가 아니다. 우리 관내에 기업이 1만개가 있어도 구로구가 여전히 가난한 이유다. 이는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 재정이 우리나라 지방자치 제도 자체의 문제다. 지금 서울시에 25개 자치구가 있다지만, 제가 보기에 자치구는 없는 것이다. 구로구든 중랑구든 서울시 안에 있는 구는 서울시의 아바타다. 서울시에서 하라는 것 외에 할 게 없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금년도 우리 예산이 3,000억인데 적은 돈이 아니다. 상당히 큰돈이다. 그러나 대부분 공무원 봉급 줘야 하고 구청 전기요금 내고 차량 유지비 내고 거기서 남는 돈은 매월 기초생활수급자, 노령연금 등 법에서 정한 예산이다. 그것 다 떼고 구청이 쓰겠다고 편성한 예산은 3,000억 중 250억 정도 된다. 나머지 2,750억은 공무원 봉급과 정부에서 주는 노령연금 등을 구청에서 대신해 심부름하는, 전달하는 액수이고 나머지 250억은 우리 예산인데 이 예산 가지고 우리 구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거의 없다. 보통 도로 1m 개설하는 데 2억 든다. 도로 100m 개설하면 200억 나간다. 그것 가지고 문화행사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해야 하는데 사실상 구청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구청장이 포부를 가지고 구청 나름대로 뭘 해야겠다고 계획하는데 절대 구청 돈으로 복지관 하나 못 짓는다. 그렇게 하려면 시청 가서 아양 떨어야 한다. 특별교부금을 따오든 시청 사업으로 전환하든 어떤 방식으로라도 서울시에서 돈을 받아오기 위해서 아양 떨어야 하고, 돈을 받아오면 그 사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업을 했을 때 “구청장 역시 일 잘한다”고 하는 것이고, 못 따오면 “구청장 일 못 한다”고 하는 것이다. 정부에 가서 아양 떨든 서울시에 가서 아양 떨든 그 길 외에 아무 방도가 없다.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사실 자치구가 아니라 ‘아바타구’다.

문제는 소득세, 법인세를 줘야 한다. 소득세, 법인세를 주면 자구책이 생긴다. 우리가 기업체 찾아가서 부지런히 우리 관내로 유치하도록 할 것이고, 그 기업이 망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이고 기업이 잘 되면 우리가 세금 받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 파리 에펠탑에서 15분 거리에 우리 구청 규모의 이시레물리노(Issy-Les-Moulineaux)라는 시가 있다. 10년, 15년 전에 한 신문에서 세계 명시장 시리즈로 연재됐는데 그때 일번으로 나온 사람이 이곳의 앙드레 상티니 시장이었는데 약 30년 전에 민선시장으로 당선됐다. 이시레물리노 지역은 파리에 있는 공단이었고 쓰레기소각장이 거기에 있었고 옛날 굴뚝공장이 다 그 안에 밀집해 있었다. 파리에서 제일 가난한 지역이었다. 우리 구로구와 비슷했다. 그곳 시장이 당선되고 난 뒤 1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기업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의 본사 내지 유럽지사가 이시레물리노라는 그 작은 시 안에 꽉 찼다. 지금은 그 시가 유럽 전체에서 소득 1위이고, 유럽의 어디를 가도 그 도시만큼 발전한 도시는 없다. 모든 시설이 최상급이다. 보도블록 하나도 다르다. 옛날 그 공장지대가 지금은 아주 부티가 난다. 그리고 세금이 너무 많이 걷혀서 작년인가 재작년에 프랑스 국회에서 정식으로 논의해 이시레물리노의 세금을 국가가 환수하도록 하는, 그 도시 하나만을 대상으로 한 법률이 제정됐다. 세금이 너무 많이 걷혀서 주민으로부터 받는 세금도 폐지해버렸다. 기업에게 받는 세금만으로도 넘쳐나서 그 도시가 다 쓸 수 없을 만큼 늘고 있기 때문에 주민세를 폐지하고 일부 국고로 환수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앙드레 상티니 시장 한 명 당선되고 나서 그 도시가 유럽 제일가는 부유한 도시가 됐다. 지금까지 30년 넘게 시장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성공한 것은 그 가난한 도시를 살리기 위해 발로 뛰면서 기업을 유치해서 부흥시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사람이 오건 세종대왕이 되살아오건 누가 나오더라도 우리 구로구를 금방 좋은 도시로 만들 방법이 없다. 외국 가서 기업을 데려온들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세금이 없다. 유일하게 더 받을 수 있는 세금이 있다면 여기 땅값을 올리거나 부동산 투기를 일으켜야 한다.

-이는 행정만 갖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결국 정치가 작동해야 되는 문제인데?

우리 지방자치 제도 자체가 정말 잘못됐다. 법인세 적용하면 자꾸 부익부빈익빈 이야기하면서 기업 없는 동네 더 가난해지고 부자동네 더 부자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안동 등 기업 하나도 없는 동네는 굶어죽으라는 이야기냐 하는데, 안동공단 생긴 지 30년 넘었는데 그 안에 김치공장 하나밖에 없다. 국가가 안동공단을 세워놨지만 30년 넘도록 기업이 한군데도 안 간다. 그렇지만 안동시에 법인세 받도록 제도를 정비해 주고 여러 가지 세금감면 등의 권한을 준다면 안동시장이 안동에 있지 않고 서울에 와서 살 것이다. 중소기업이든 뭐든 기업 하나 데려가기 위해 온갖 노력 다할 것이고 결국 안동이 발전할 것이다. 기업이 없어서 발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서 자구책이 세워지고 더 노력할 것이다.

-취임하신 뒤 구청 앞의 고질적인 민원성 집회가 없어졌다는 보도도 접했는데, 주민과 소통에 큰 어려움은 없나?

도저히 모든 민원을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고, 민원에는 양 당사자가 있고 이해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어느 편을 들 수도 없는 것이어서 100%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지금 보는 것처럼 우리 구청 앞에는 시위대가 없다. 시위대가 없어진 지 굉장히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는데 주변 주민들이 조용하다고 다들 좋아한다. 1년 내내 데모하던 곳에 데모가 전혀 없다. 데모 없어진 것은 지난해 8월부터였다. 해결을 해 준 것은 아니었고 열심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만나주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 것이 문제지 열심히 들어주고 같이 걱정만 해 줘도 거의 다 이해한다고 저는 생각한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들이 불가능하고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추진해보겠다”고 했는데, 대표적으로 추진해보고 싶은 것들은 무엇이 있나?

하나씩하나씩 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소위 이상이라고 했던 일들이 세월이 지나면 현실이 되는 일이 많은데, 현재 무상급식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예전에는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지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관내에도 복지와 관련된 일들이 있는데 금년에 몇 가지 새롭게 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 1년간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 등이 금년에 시작됐다.

-보육비·의료비 지원 등 복지 부문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현안이 눈에 띄는데 재정문제로 힘든 점은 없나?

올해는 그래도 억지로 꾸렸다. 그러나 워낙 재정이 어렵기 때문에 계속 이렇게 꾸릴 수는 없다. 그동안 써왔던 소위 고정비용, 예산심의 할 때 별다른 신경 안 쓰는 비용으로, 매년 물가상승률 곱해버리거나 공무원 봉급 늘어나면 인상률 곱해 적용하는 경직성 경비 또는 고정적으로 쓰이는 비용인데, 그 부분에 손을 댔다. 과연 고정비용이 진짜 고정비용인지 줄일 수 있는 비용인지 다시 검토해보라고 했다. 이는 대부분 살림살이 비용인데, 책상·컴퓨터 교체비용, 전기요금 등이 과연 고정비용인지 전면적으로 스크린해서 엄청나게 줄였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그 돈을 가지고 다른 복지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그 돈은 한 번은 줄일 수 있어도 두세 번씩 줄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어느 구청이나 교육문제와 일자리 창출 문제가 현안이다. 구로구도 상대적으로 교육환경이 열악하고 저학력 문제로 주민 불만이 높다. 행정의 책임자가 주민의 자녀 학력문제까지 신경 쓰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보나?

갈등이다. 그러나 우리 구로구에는 특목고도 있고 예술고등학교, 세종과학고, 자율형 사립고 등 있을 것 다 있다. 그런데 과학고, 외고, 예술고도 없는 강남구으로 이사 간다고 하고 있을 것 다 있는 구로구로는 안 온다고 한다. 따라서 특목고, 외고 유치한다고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현실적으로는 어느 정도 학력수준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치단체를 꾸려가기 어렵다. 주민들 애향심 자체가 없어진다. 주민들이 터에 뿌리내리고 살겠다는 마음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이 학년이 높아질 때마다 이사 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하다. 집 팔아서 다른 데 전세로 가더라도 이사를 가야겠다는 압박감 때문에 부부간에 싸움이 발생하고 계속 갈등이 일어난다. 그런 상황에서 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란 어렵다. 기본적인 수준은 유지해야 자치단체를 안정시킬 수 있고 애향심이 생길 수 있다. 그런 현실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자치단체장들이 나서서 그 지역의 학력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은 이해를 해야 하고, 저도 그런 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제 교육이념과는 맞지 않다. 아이들을 경쟁으로 자꾸 내모는 것이 옳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특히 구로나 금천 쪽 자치구는 학력격차가 너무 심하다. 예를 들어 강남구와 언어·수리·외국어 3개 영역의 총 평균점수가 작년 같은 경우 60점 이상 차이가 났다. 330점 대 270점이었다. 그래가지고는 안 된다. 10~20점 정도 차이면 모르는데 평균 60점 차이면 반에서 1등과 중하위권 정도의 수준차다. 아무리 교육이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정도까지 가서는 안 된다. 그것이 이 지역 자치단체장의 고민이다. 최소한 어느 정도 수준의 평균까지 만들어놓고 교육이념을 따질 때이다. 지금은 너무 바닥이다.

-일자리 창출 문제와 관련해서 구로구는 관급공사를 맡으면 일정 비율의 구민을 고용하도록 했다. 아이디어라고 생각은 되는 한편 다른 문제도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다른 각 구청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 구로구에 배우러 오겠다고 한다. 작년에 시발됐는데, 신도림동에 대성디큐브시티라는 대규모 주상복합건물과 호텔, 백화점이 동시에 들어선다. 금년에 개장하는데 매장, 호텔 등에 근무할 신규직원 1,000명 중 500명을 구로주민으로 채용하기로 대성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3월 말경부터 직원채용이 시작되는데, 그 직원의 절반은 구로구에 주소지에 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것이 없는 일자리를 새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일자리를 가지고 구로구 주민에게 혜택을 더 주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시 전체적으로 봐서는 타 지역 주민들의 취업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고 불공평한 면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또 구로 관내에서 발주한 각종 공사를 할 때 가능하면 구로구민을 감독이나 설비에 채용해 달라고 건설업체에 부탁해 호응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났다면 모르지만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 주민들의 채용기회가 줄어들기 때문에 ‘고정된 일자리에 왜 구로구 주민들로만 채우느냐’, ‘잘못된 정책 아니냐’는 비판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가장 근원적인 문제의식은, 자치단체장들이 기업을 돕고 지역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풍토에서 어떤 단체장도 일자리 문제를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단체장이 없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DJ가 최초로 일자리 100만개 늘리겠다고 공약했었다. 역대 서울시장선거에서 일자리를 가지고 공약을 내건 시장이 한 명도 없었고 구청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서울시에 고용대책이라는 것이 없었고 고용을 담당하는 과가 없었다. 서울시에 고용종합대책과를 처음 만든 것이 2009년도 제가 담당 본부장을 맡으면서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지방자치 역사상 최초의 고용종합대책이었다. 그만큼 자치단체는 고용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이것이 우리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기업을 돕는 것도 우리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대부분의 단체장이 기업을 아무리 도와줘봤자 늘어나는 세금이 없기 때문에 우리와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돕도록 모든 단체장이 나서야 그 결과로 기업하는 환경이 좋아지고 지역에 일자리가 늘어난다. 지금 당장은 내가 구로주민을 위해서 타지역 주민을 차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단체장들이 이렇게 나서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모든 기업들의 환경이 좋아지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단체장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이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나?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저는 복지란 선택의 문제이지 옳다 나쁘다 하는 선악과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지금 이를 선악의 문제로 끌고 가고 이념의 문제로 끌고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 둑이 무너지면 우리나라가 망한다든지, 나쁜 일을 가지고 인기를 얻기 위해 선동한다는 식으로 선악의 문제나 규범의 문제로 끌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복지 문제는 그러한 문제가 아니고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나라마다, 그 시대의 여건마다 복지 중 어느 것이 시급한가 하는 판단의 기준은 다를 수 있겠지만, 무상급식은 나쁜 일이라거나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논리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가 어디까지이고 우리가 어디까지 부담할 수 있는지 판단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나쁘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초등학교·중학교 학생들에게 급식을 주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이냐 아니냐 문제와 지금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를 부자는 되고 가난한 사람은 안 되고를 따지면 이념적 문제, 선악의 문제로 갈린다.

우리가 의무교육이라 할 때 가난한 사람의 자녀는 수업료 안 내고 이병철 아들은 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교육은 정부가 감당해야 될 기본적인 책무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이병철이든 아니든 간에 정부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65세 이상 노인에 대해서도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또한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이기 때문에 지하철요금은 이병철도 무료이고 가난한 노인도 무료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점심급식을 하는 것이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라면 그것을 부담하는 데 부자는 돈을 받고 가난한 사람은 안 받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이 옳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양분해 이념적 싸움을 하고 흑백논리, 선악의 논리로 몰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서울시에 있을 때 휴직하고 자녀와 세계일주 하는 등 남들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을 단행했었다. 다른 단체장이 쉽게 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어떤 업적을 생각하고 있는지 혹은 어떤 구청장으로 주민에게 기억되고 싶은지 말씀해 달라.

출마할 때 약속했던 것을 지켜나갈 것이다. 제가 유세하고 다니면서 계속 했던 이야기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원한다면 나를 찍지 말라. 나는 카리스마 없는 구청장이다. 대신 제일 편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언제라도 편하게 말걸 수 있는 구청장이 되어있을 것이다. 카리스마를 원한다면 나를 찍지 말라”였다. 끝나도, 1년, 2년, 3년 지나도 길가다가도 많은 주민들이 나에게 농담 걸고 이야기 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이 약속을 지킬 것이다.

인터뷰어 : 이명식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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