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후계를 자임하는 세력은 실종(?)
키즈하면, 우리에게는 이른바 ‘박세리 키즈’가 익숙하다. 1998년 미국 LPGA(여자골프협회)에 입문하던 첫 해에 세계적인 골프 선수로 우뚝 선 박세리를 보며, 골프 선수의 꿈을 키워 성공한 선수들이다. 이제 20대 초중반이 된 그들이 미LPGA를 비롯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고 있다. 언론에서 이들을 ‘박세리 키즈’라 불렀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을 박세리 키즈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YS 키즈, 아이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쓰는 키즈(KIDs)가 당 대표급 정치인에게 어울리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박세리 키즈’와 ‘YS 키즈’에서 동시에 연상되는 건 하나 있다. IMF 환란이다. 박세리 선수의 투혼과 성공은 1998년 IMF 환란 당시 침울할 수 있는 국민에게 역경을 헤쳐 나갈 희망의 에너지 역할을 했다. 박세리의 경기 모습을 배경으로 “헤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는 양희은의 상록수 노래와 함께 나왔던 공익광고가 생각난다. YS는 IMF 구제금융 체제로 들어가게 됐던 당시의 대통령이었다. 정반대 이미지의 연상인가?
어쨌든 YS의 발탁으로 국회의원이 돼 정치에 입문하게 된 연유로 홍 대표가 YS키즈를 자임하는 모양이다. 안상수 전 대표, 김무성 전 원내대표, 이재오 장관, 김문수 지사, 친박계를 제외한 한나라당의 주요 인사 대부분이 넓은 의미의 YS 계열이다.
한나라당 대표만이 아니다. 사실 민주당의 손학규 대표도 YS 대통령의 발탁으로 1993년 4월 광명 재보궐선거를 통해 교수에서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YS 키즈 라고까지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YS 계열인 셈이다.
1990년 3당합당 때 YS와 결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YS계열로 1988년 13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2002년 4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이후 노무현은 YS를 찾아가 시계를 보여주며 그와의 인연을 되새기며 지원을 끌어내려 했었다. ‘YS시계’ 사건이다.
“총재님이 89년께 일본에 다녀오면서 사오신 시계인데 아주 정확해서 계속 찼습니다. 그러다 총재님을 비난할 때는 끌러놨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생각이 다 맞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총재님 생각나면 한번씩 차곤 했습니다. 97년부턴가는 계속 차고 다닙니다. 이번에 대통령후보에 당선될 때도 차고 있었죠." 노무현 후보의 이런 말에 YS는 "정말 장하다, 여당의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보통 험한 길이 아닌데 얼마나 장하냐"며 다독였다. 이번 홍준표 의원 방문 시에도 "여태까지 내가 공천한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홍 대표 만큼 멋있는 코스를 밟아온 사람은 없다"고 치켜 세웠다.
당사자는 저분이 우리의 대통령이었나 할 정도로 때론 동문서답과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하기도 하지만, YS 키즈, YS 계열 출신이 여기저기에서 활약하고 있다. 친노, 친박과 더불어 현재 한국정치 계보의 주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최근의 한국정치 계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이른바 DJ계열의 비중도 결코 작지 않다. 정세균, 정동영, 천정배, 이인영 등을 비롯해서 민주당의 주요 정치인들의 상당수가 김대중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나 새천년민주당을 통해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박지원 의원 등 아주 일부를 제외하곤 현재 활동하는 이들이 특별히 DJ 계보 등으로 구분되지는 않는 것 같다. 여러 배경이 있다. 또 이미 민주당의 역사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정치적 계보는 정치세력화의 자원이 되기도 하면서, 분열적 파벌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세력으로서의 계승보다는 민주주의, 인권, 평화, 복지의 지향, 그리고 ‘국민과 함께’라는 DJ의 ‘반걸음 리더십’과 같은 정신의 계승이 더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DJ의 정치사적 위상에 비해 그의 후속 세대를 자임하는 세력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manma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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