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한가운데서 조율과 원칙을 지켜내는 서울시 조은희 정무부시장은 여성 최초의 정무부시장이다.

<폴리뉴스> 및 월간 <폴리피플>은 지난 7월20일 그를 만나보았다.

조 부시장은 편집국장과 인터뷰에서 "정무가 여성에게 맞지 않다는 선입견이 없어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다른 분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다. 여성이 하지 않던 영역에 새로 시작하는 길을 터줄 수 있도록 벽돌 한 장을 더 얹고 싶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원칙이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운 조정자"로서 시장을 조력하는 부시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조 부시장은 특히 2008년 여성정책관으로 서울시에 들어오면서 부터 여성관련 많은 업무를 했다. 여성행복프로젝트인 '여행(女行) 프로젝트'와 '서울형 어린이집'이 대표적이다.

특히 여행프로젝트는 '국제연합(UN) 공공행정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서울시 정책이 앞으로도 지속되기를 희망하고있다.

[다음은 조은희 부시장 인터뷰 일문일답]

-여성 최초의 정무부시장으로서 1년을 지낸 소감은 어떤가? 부시장자리 자체도 참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선거도 치러야 하고 시와 시의회의 긴장과 갈등 사이에서 많이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말씀하신 대로 1년이 쉽지는 않았지만 보람은 있었다. 정무부시장이라는 자리는 여성이 한 번도 없었던 자리이고 부시장이라는 자리 자체도 여성이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정무라는 것이 보통 때도 남성만 해왔지만, 지방자치제가 부활하고 최초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시의회 3/4이 야당이고, 25개 구청 중 20개가 야당이고, 진보교육감이 있는 상황인데, 이는 즉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한가운데서 정무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슈도 굉장히 첨예했다. 처음에는 서울광장, 무상급식, 각종 예산 등을 놓고 민주주의의 새 질서를 찾아가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질서와 균형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보람은 있었다.

- 나름 원칙을 갖고 있었을 텐데, 어떤 원칙으로 부시장직에 임하고 있나?

제가 있을 동안 ‘시의회와 시정협의 중단’이라는 단어까지 썼고, 저 개인적으로도 야당들이 시장님을 고발하면서 제가 실무책임자로서, 시장님 다음으로 가장 프론트라인에 서있었기 때문에 검찰 소환조사도 받아봤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상대해 이야기를 듣고 우리 이야기를 전하는 과정을 1년 동안 거치면서 저 자신이 굉장히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정무부시장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 것은 듣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서 굉장히 많이 들었다. 들으면 들은 대로 실천하려고 했다. 부시장 취임 전에 양화대교 공사를 중단하라고 해서 중단했는데, 제가 부시장 되는 날 사무처장을 같이 임명했다. 그날 취임식하기 전에 저희들이 내정된 사람들과 인사하기 위해 임명장을 갖고 시의회에 들렀는데, 들어가니까 고함을 지르시더라. 참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시장님이 양보를 하셨다. 6개월 내내 저희들이 듣고 시의회 이야기를 반영하면서 소통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의견을 관철하기보다 시의회 의견을 관철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쭉 겪다 보니까 이는 진정한 소통이 아니라고 느꼈다. 뭔가 시민이 원하는 방향이 있을 텐데, 시민의 대의기관이기 때문에 시의회가 주장하는 대로만 한다고 다 시민의 뜻을 바로 반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민이 시장님을 뽑아준 이유가 있을 것이고 시의회를 뽑아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일방통행은 소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킬 것은 지키고 들어줄 것은 들어줘야 한다는 원칙이 섰다. 들어줘서 소통을 뚫어나가야 할 것은 뚫어나가야 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는 지켜야 한다는 것을 1년 동안 배웠다고 할 수 있다.

힘겨루기 자체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교훈이 됐다. 가령 부부관계도 그럴 것이고 친구관계나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러한데, 무조건 들어주는 것만이 문제해결의 능사는 아니다. 내 입장도 충분히 알리고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다는 것을 상대가 이해를 해야 한다. 상대가 무조건 밀어붙이면 다 된다는 식으로 하면서 나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는 것을 모를 때가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그것은 양보가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빠른 소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동안 많은 부시장들이 임기 후 정치권에 편입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두언 의원이나 정태근 의원 역시 정무부시장 출신인데, 정계로 갈 생각이 있는지?

8월 24일 이후 저에게는 달력이 없다. 주민투표가 언제가 될지 모르는데 8월 24일경으로 큰 이변이 없는 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8월 24일 이후는 달력이 없어서 주민투표가 잘 진행되고 우리가 바라는 대로 총력전으로 갈 것이라고 본다.

-지난 2008년 여성가족정책관으로 서울시에 들어오셨다. 그 전에는 언론인으로 생활하셨다. 서울시 여성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

제가 시장님 인사스타일을 말씀드리면, 제가 임명장 받을 때 시장님을 처음 뵀다. 여러 분들이 그렇게 말하면 “설마” 하면서 놀란다. 그때 저를 임명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여성행복프로젝트가 있는데, 이를 살려달라”고 했다. 정책을 여성의 관점에서 반영하는 아이디어는 본인이 냈지만 그것이 실행이 안 돼서 사실상 사당화 될 위기였다. 여행프로젝트라면 결국 교통본부에서도 여성의 관점을 생각해야 하고 맑은환경본부에서도 여성의 관점을 생각해야 하고 모든 본부에서 여성의 관점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귀찮아서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쉽지가 않다. 그래서 시장님께서 “하다가 잘 안 되면 말 잘 안 듣는 부서에 대해서 나에게 이야기해 달라”고 하셔서 내가 “그렇게 자꾸 시장님께 이르면 왕따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시장님께서 “무슨 일을 성취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게 마련이다.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3년 2개월 전에 여성가족정책관을 맡았다. 그동안 제가 긴 기자생활을 하고 여러 가지 생활을 하면서 직장도 많이 옮겨 다녔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제 친정과 시댁이 다 시골에 있다 보니까 아이를 양육하는데 정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우리 아이가 인터넷에 거의 중독되면서 ‘인터넷과의 전쟁’, 그러다 보니 아이가 비만이 와서 ‘비만과의 전쟁’, 또 학교 성적도 떨어지면서 자식과 치를 수 있는 전쟁은 다 치렀다. 그러면서 남편과 양육문제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면서 트러블을 좀 겪기도 했다. 일하는 여성이 겪는 고충을 제가 그냥 고스란히 겪었다고 저 스스로 생각할 정도인데, 여성가족정책관이 되니까 너무 행복했다. 내가 정말 몸으로 부딪히고 힘겨워하고 울었던 일들이 거기에서 고칠 수 있는 정책으로 반영시킬 수 계기가 된 것이다. 이런 기회를 갖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면서 여행프로젝트를 정말 열심히 진행했다.

여자에게는 크게 세 가지 욕구 있는데, 일하면서 자녀를 키우고 싶은 욕구, 자녀를 키우다가 재취업하고 싶은 욕구, 전업주부로 있을 때는 자아를 찾고 문화생활 갖고 싶은 욕구다. 이 외에도 불쾌, 불안요소의 제거, 도시생활 속에서 밤에 안전문제 등 아주 사소한 것을 변화시킴으로서 여성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들을 제 경험과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갔다. 그렇게 여행프로젝트가 2년 만에 '국제연합(UN) 공공행정대상'을 받아서 전 세계에서 모범이 되고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정책이라는 공동 인정을 받았다. 또한 10대 여성들의 위기, 성매매로부터 위험에 노출된 가출청소년들을 재교육시켜서 사회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이번에 또 받았다. 그러한 것들을 세팅해나가고 있다.

세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오세훈이라는 여성정책에 관심 있는 사람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조은희라는 사람이 호흡을 맞춰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사람들이 빠져도 시스템은 계속 돌아가야 정책이 지속 가능하도록 정착될 수 있다. 그런 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이것이 어느 정도 정착됐다고 본다.

아들을 하나 키우면서도 어려움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어린이집 문제를 들여다봤다. 서서히 줄고는 있지만 국·공립은 대기자가 많고 민간어린이집은 비어 있다. 그래서 민간어린이집을 국·공립 어린이집 수준만큼 맞춰주는 것이다. 교사월급, 서비스 질, 유치원비용 등을 국·공립 수준으로 맞추는 것이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서울형 어린이집과 함께 현재 2,400개가 있는데, 이는 보건복지부가 적극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서 가져갔다.

과거에 일하던 엄마들의 재취업 프로젝트인 ‘엄마가 신났다’를 했었다. 저도 겪었는데 가정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기가 굉장히 힘들다. 그때 정보 제공에서부터 적성검사, 취업알선, 사후관리까지 해 주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로 대도시들의 국제회의체인 메트로폴리스 회의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저런 프로젝트가 70개 정도 되는데,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인정받으면서 생각한 건 이게 시작이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세팅되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면 이를 훨씬 심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심화 방향과 관련해 각론으로 들어가면, 지금 어린이집 중심인데, 0~2세까지는 70% 이상이 가정에서 키운다. 그렇다면 집에서 키우는 아이들에 대한 공적영역인 중앙정부, 지방정부에서의 기여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여성행복화장실’, ‘여성행복공원’, ‘여성행복주차장’ 등을 많이 만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이 공적영역을 넘어 사적영역까지도 확대되어져야 한다.

행복이란 주관적이고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우리가 주관적인 개인의 행복을 만족시켜줄 수 없다. 그러나 아주 정책적으로 나오는 현실적인 이야기들, 일자리 영역에서 육아휴직에 있어 차별을 없애거나, 승진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물론 여성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지만 저는 여성가족정책관 출신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 진보교육감님이 오셨는데 교육부, 교육청이 방과후학교 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다. 교육감님은 방과후학교 시 영어·수학 등의 학과수업 외에 예체능을 주장하시는데 이는 철학이 다르기 때문에 의견이 좀 다른 것 같다. 과외를 따로 안 하는 대신 학교에서 하는 것이 방과후학교다. 기회가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에게 출발선은 동일하게 해줘야 한다는 측면에서 학원 못 가고 과외 못 하는 학생들에게 방과후학교에서 충분히 우수한 선생님들에게 교육받을 수 있는 문제까지도 관심을 갖고 있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은...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있는데 여행프로젝트 중 지속 가능한 것은 사소한 관심이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그것을 튼튼히 건강하게 해주면 정책이 지속 가능해질 수 있다. 이는 정책도 그렇고 사람관계도 그렇다. 한 번 하고 내년에는 없고, 잠깐 좋아서 이용하다가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해야 한다.

어떤 부시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와 관련해, 어떤 평가가 저에게 내려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최초의 여성 부시장, 정무부시장…정무가 여성에게 맞지 않다는 선입견이 없어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분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다. 여성이 하지 않던 영역에 새로 시작하는 길을 터줄 수 있도록 벽돌 한 장을 더 얹고 싶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더 노력하고 있다.

여소야대 정치상황에서의 부드러운 조정자, 서울시가 흔들리지 않도록 뒷바라지 잘하는 부시장, 원칙을 지키는 부시장,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 화합과 평화, 원칙과 아름다운 결실이 남아 있었다는 평가가 쓰일 수 있는 부시장이 되어 있기를 하는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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