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폴리뉴스’ 자매지 월간 ‘폴리피플’ 26호(2011년 9월호) ‘COVER STORY’에 실린 ‘야권통합 전망’ 편입니다 >

한국 정치사와 야권통합 논의

한국 정치사에서 야권통합 또는 후보단일화 문제는 반복적으로 익숙하게 등장해왔던 주제의 하나이다. 현대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었던 1954년의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이후 이 대통령의 3선을 저지하기 위해 야권통합 논의가 진행된 바 있었다.

1967년 제 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박정희 정권의 독주를 막기 위해 다시 야권통합, 후보단일화 논의가 전개된 바 있지만 박정희의 재집권을 막지는 못했다.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선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은 이후 야권은 김영삼·김대중 두 후보의 단일화 문제로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 실패했고, 군사독재 세력을 계승한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고 말았다.

이후 야권의 김영삼이 3당합당을 통해 집권세력으로 넘어갔고, 199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당시 야당의 김대중 후보가 정당이 아닌 재야민주세력과 정책연합을 단행했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에 맞서 당시 제1야당인 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는 정치성향이 전혀 다른 자민련의 김종필 후보와 DJP연합을 통한 후보단일화에 성공하여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도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에 맞서 노무현-정몽준이 막판 후보단일화를 이루었고 이후 단일화협약은 다시 파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노무현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에 맞서 범여권이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단일정당을 만들었지만 최종적으로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에는 실패했고, 대선에서 참패를 맛보아야 했다.

2012년을 향한 야권통합 논의의 전개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고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야권은 정권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능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지리멸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의 일방적 독주에 대해 시민사회가 자발적 저항으로 맞섰고 그 힘이 야권의 힘의 공백을 일정하게 대신하는 현상도 빚어졌다. 이명박 정권 초기에 대통령의 사과까지 이끌어냈던 촛불 정국을 거치면서 움츠렸던 야권은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고 시민사회는 정치영역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재인식하게 되었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거대 집권세력에 맞서기 위한 반MB 야권연대 전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야권 정치세력에게 후보단일화를 통해 이러한 국민적 요구를 받들 것을 압박했다. 그러나 소위 5+4협상으로 불렸던 전국적 차원의 야권연대 논의는 실패로 돌아갔고 인천광역시, 경상남도, 경기도 고양시 등 일부 지역에서만 정치협상에 의한 후보단일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6.2 지방선거의 결과는 야권의 승리로 나타났지만 후보단일화에 실패했던 서울시장 선거와 후보단일화에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패배하고 말았다.

6.2 지방선거 직후라 할 수 있는 2010년 7월 27일 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은 성공적인 연대를 이루지 못했고 그 결과 패배하고 말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야권 지지세력은 야권연대를 통해서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2011년 4월 27일 실시된 재보궐선거는 야권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각인시켰을 뿐 아니라 정당을 달리 하는 세력 간에 협상 등을 통해 후보단일화를 이루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인식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범야권세력 내에서는 야권연대를 통한 여야 1:1 구도형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 성사시킬 것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편차가 나타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야권연합은 이승만, 박정희 독재정치 하에서도 민주주의가 위기 상황에 처할 경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모색이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과정에서는 진보정치 세력이 독자적으로 자신의 길을 걸었고 시민사회는 오히려 정권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에 통합·연대 논의는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로 넘어 오면서 양극화의 극단적 심화와 서민경제의 파탄, 민주주의의 후퇴와 남북관계의 단절 등 파국적 상황을 경험하면서 민주 진보진영 전체가 절박한 위기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민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조차 국가와 정치권력의 의미를 다시 인식하면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중요성을 직시하고 야권통합 논의에 적극 나서게 되었다.

야권연대 방식을 둘러싼 논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단순 명쾌한 방식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야당과 시민사회 세력이 단일한 정당을 결성하여 총결집하는 것이다. 정파등록제 등을 통해 정당의 노선, 이념과 정책 그리고 정당의 문화와 정치활동 방식 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각 정파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선상에서 총선과 대선을 위한 선거정당을 운영하자는 발상이다. 무엇보다도 단일정당이 아닐 경우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현행 선거법과 제도 하에서 당을 달리 하는 후보들이 경선을 통해 단일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정치협상이나 여론조사 등을 거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쉽지도 않을 뿐 아니라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총선에서는 단일 정당 내에서 협상을 통해 정파별로 목표의석을 정하고 일차적으로 지역 경선에 맡기되 이를 전략공천 지역과 비례대표를 통해 보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에 대해서는 그동안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길을 걸어왔던 진보정당 측에서 자신들을 일개 정파로 격하시키려는 의도로 보고 강력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1야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념적 성향이 다른 세력과 같은 당에서 활동하는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가진 세력도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진보정당에서도 단일정당으로의 대통합에 소극적인 입장임을 감안하여 비교적 이념적 성향이 비슷한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 진보정당과는 후보단일화 등의 선거연대를 하는 방식을 염두에 두는 세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으로 진보정당에서 제기하고 있는 방식으로 진보정치세력이 우선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한 다음, 민주당과는 총선과 대선에서 연대하는 “선 진보통합당 후 민주당과의 총선 대선 연대” 방식이다. 진보적인 제 정치세력들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재통합을 이루는 과정에서 함께 참여하고 그런 다음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는 민주당과는 여야 1:1 구도 형성을 위한 선거연대 방식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 야권단일정당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입장과 진보정치운동에 몸담으면서 ‘선 진보통합 후 선거연대’를 지향하는 입장을 대비하면 1987년 6월항쟁 이후 재야민주화 운동 세력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비판적 지지’와 ‘독자 후보’ ‘후보단일화’ 등으로 나뉘었던 것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또한 진보정당이 내년 총선을 거치면서 자신들이 바라는 바대로 원내교섭단체를 이룰 수 있는 의석을 갖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한가에 대한 판단도 나뉘어 있다고 보인다.

진보통합 논의는 지난 5월 31일 진보대통합을 위한 연석회의에서 최종 합의문을 발표함으로써 실무적인 절차만 남은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후 국민참여당이 5.31 합의에 동참할 뜻을 밝혔고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수용할 뜻을 밝힌 반면 진보신당은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다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진보신당 측에서 주장하는 방식으로 먼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한 이후 국민참여당과 다시 합치는 문제는 차후에 논의하는 방식으로 될 경우에는 국민참여당이 또 어떤 선택을 할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한편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 야권연대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던 시민사회에서는 ‘혁신과 통합’(가칭)을 내걸고 범야권 단일정당 결성을 촉구하는 움직임을 가시화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 흐름에 지난 4.27 재보선 이후 야권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함께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민란운동을 주도해온 문성근, ‘내가 꿈꾸는 나라’에서 대중적 신망이 있는 서울대 조국 교수 등이 함께 한다는 점이다. 야권 지지층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사들이 대거 야권단일정당 결성을 압박하는 운동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그 파장이 얼마나 미칠지 관심을 끈다.

향후 정치일정과의 관련성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사퇴함으로써 하반기 정국이 요동치게 되었다. 10월 26일 실시될 재보궐선거에서 새로운 서울시장을 선출해야 하는데 여야 모두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야권통합 논의 또한 이 문제와 직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0.6%P차이로 승패가 엇갈렸고 당시 진보신당의 노회찬 후보가 3.6%를 차지했기 때문에 여야의 격돌이 예상되는 10.26 재보선에서도 야권이 한나라당과 1:1 구도 형성에 실패할 경우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 양상을 띨 수밖에 없는 10.26 서울시장보선을 앞두고 서울시장후보 단일화 협상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논의에 촉매제 작용을 할 것인지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경상남도의 경우 야권이 후보단일화에 성공하여 승리했고 이후 범야권이 공동으로 도정을 운영하는 경험을 축적해 나가고 있다. 만약 10.26에 실시될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후보단일화를 이루고 그 과정에서 서울시정을 야권이 공동으로 이끈다는 정치협약을 맺어 실천해 간다면 이는 향후 대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진보통합정당 결성 문제도 시한이 매우 촉박하다. 민주노동당은 8월 28일 전당대회에서 통합문제에 대한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야 하고 진보신당도 9월 4일로 전당대회 일정을 정해 놓은 상태이다. 통합논의를 이끌어 온 주체들은 9월 말까지는 통합정당 결성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수순을 밟을지, 또 참여의 범위가 어떻게 될지 아직은 단정을 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은 8월 20일 손학규 대표가 12월에 통합전당대회를 열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이에 대해 최고위원들이 동의함에 따라 곧 통합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과 일정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통합의 상대라 할 수 있는 진보정당이 아직도 완강하게 단일정당 결성에 참여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있는 상태에서 뾰족한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마찬가지로 ‘혁신과 통합’ 모임 또한 전국을 순회하면서 세를 모아 야권 통합단일정당에 대한 국민적 압박의 수위를 높여간다는 방침이지만 진보정당이 끝까지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어떤 경로를 밟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흥미와 감동과 주는 통합·연대 과정이어야

현 시점에서 야권통합정당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합의 가장 큰 주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얼마나 설득력 있고 진정성이 담긴 양보안을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통합의 상대 측이 끝내 응하지 않을 경우에는 더 이상 시간만 끌고 매달리는 형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오히려 지켜보는 국민들에게 짜증과 피로감만 가중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에는 가능한 세력끼리 대오를 정비하고 여야 1:1 구도형성을 위한 선거연대 협상에 나서야 한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지사 후보단일화 과정이나 4.27 재보선에 김해을 후보단일화 과정의 경우 자체로 단일화에는 성공했지만 본선에서는 한나라당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다른 여러 요인이 있었을 것이지만 후보단일화 과정 자체가 야권 지지 유권자들에게 흥미를 유발하거나 감동을 주는 데 실패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총선의 경우 전국의 253개 지역에서 동시 다발로 이 같은 협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을 달리 하는 상태에서 후보단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이 야권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며 감동을 줄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치열한 경쟁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일 것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야권에서 이 같은 명승부가 얼마나 연출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볼 대목이다.

가진 것이 많은 쪽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희생과 양보를 결단한다면 이는 충분히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 야권에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확고한 장악력과 리더십을 지닌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총선과 대선의 승리를 위해서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표현처럼 팔을 떼어 주거나 눈을 주는 아픔까지 감수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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