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항마’ 문재인의 가능성이 야권통합의 동력

< 본 글은 ‘폴리뉴스’ 자매지 월간 ‘폴리피플’ 26호(2011년 9월호) ‘COVER STORY’에 실린 ‘야권통합 전망’ 편입니다 >

야권에 문재인發 야권통합의 태풍이 상륙하고 있다. 유력한 차기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앞세운 야권통합 운동기구인 ‘혁신과 통합’의 출범은 정체국면에 빠진 야권진영 전체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야권 통합 추진기구 ‘혁신과 통합’(가칭)이 8월 17일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혁신과 통합’은 9월 6일 창립식을 열고 본격적인 통합운동에 나설 계획이다.

‘혁신과 통합’에는 김두관 경남도지사,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국민의 명령’ 문성근 대표, 서울대 조국 교수, 시인 도종환, 김용택 등 야권 통합을 주장해왔던 시민단체와 각계 인사 305명이 이름을 올렸다. 정당 밖 참여정부 지지세력과 시민정치세력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혁신과 통합’의 출범이 남달리 주목을 받는 이유는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문재인 이사장의 정치행보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문 이사장은 최근 여러 여론조사에서 차기대권주자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제쳤다. 8월 26일 폴리뉴스-한백리서치 공동조사에서도 13.0%의 지지로 8.9%의 손학규 대표를 4.1%p차로 따돌렸다.

유력한 야권 대권주자로서 부상하고 있는 문 이사장의 정치적 파괴력은 기존 민주당과 진보정당들이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는 큰 산이다. 이러한 문 이사장의 정치적 파괴력은 한국의 정치지형이 낳은 산물이다. 지역구도를 중심축에 두고 이념구도가 보조축으로 돌아가는 정치지형에서 문 이사장이란 존재 자체가 양쪽 축을 모두 뒤흔드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문 이사장이 대권주자로 부각되기 전까진 야권통합의 흐름은 두 개의 축 중 보조적인 이념축만이 작동해왔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간의 대중적인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소통합’은 지난 5월 31일을 기점으로 본격화됐으나 호남과 PK의 ‘지역통합’은 수면 아래서 잠복해 있었다.

민주당내 친노세력과 정세균 최고위원이 ‘지역통합’에 중심점을 둔 ‘남부민주벨트복원론’을 제기해 왔으나 당내 주류의 흐름과는 떨어진 상태였다. 민주당 주류는 현재의 정당구조를 유지하면서 PK 친노세력을 개별적으로 끌어안는 방식의 ‘지역통합’에 무게를 두었다.

게다가 4.27 재보선을 통해 민주당의 야권 내 리더십에 도전하는 유시민 참여당 대표를 제어하는 데 성공하면서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영남 친노세력 흡수에 적극 나서기보다는 기다리는 쪽으로 이들의 선택지를 좁혔다.

그러나 정치적 반전은 문재인 이사장의 ‘운명’에서 다시 갈렸다. 문 이사장의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은 6월 출간과 동시에 15만부 판매기록을 세우며 세간의 관심을 증폭시킨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책을 통해 “이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당신(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며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을 승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 결과 책 발간 두 달 만에 야권의 대선주자 1위에 올라서며 지난 4.27 재보선 과정에서 불거진 민주당과 참여당간 볼썽사납게 진행된 ‘노무현 적자논쟁’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면서 친노세력과 PK를 중심으로 한 영남 야권진영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러한 포지션의 문 이사장이 ‘혁신과 통합’ 출범을 주도하며 야권통합 행보에 나선 것은 다름 아닌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향한 민주당 밖의 친노와 PK의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세력화를 통해 민주당 변화를 이끌고 진보진영과의 결속력도 강화해 2012년 反한나라, 反박근혜 전선 구축의 선봉에 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드러낸 것이다.

문재인, 탈 한나라당 PK정치세력화의 구심점

문재인의 부상이 의미하는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PK지역의 정치적 구심점 생성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PK출신이었지만 지역정치의 구심 역할을 담당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PK는 2004년 총선과 2008년 총선에서 자신의 정치적 대변자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선택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서거는 PK의 정치적 변화의 서곡이었다. 2009년 10월 경남 양산과 올해 4월 김해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박희태, 김태호 의원 등 거물급 인사를 투입했음에도 무명의 야당 후보에 가까스로 이겼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경남은 김두관 지사를 내세운 야권이 승리했고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민주당 김정길 후보가 44.6%의 득표율을 올렸다.

이처럼 가속화하는 PK의 한나라당 이탈 흐름에 신공항, 부산저축은행 사태까지 겹쳐지면서 YS의 3당 합당 이후 무너졌던 PK개혁세력은 이제 한나라당을 대신해 이곳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발생한 이러한 PK 정치지형의 변화는 이미 2012년 총선, 대선의 최대변수로 꼽혀왔다.

그러나 이러한 PK 정치지형의 변화를 구체화하기 위해선 세력화가 필요하며 세력으로 묶어내기 위해선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구심이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PK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또한 존재해 왔다. 민심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이 없을 경우 구름이 흩어지는 것처럼 과거의 관성으로 회귀할 것이란 시각이다.

이러한 중요한 고비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정치적인 구심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그의 출사표인 ‘운명’에서 밝힌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야권 대권주자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곧 PK 정치지형 지각변동의 현실화를 예고한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문 이사장은 ‘문재인의 운명’ 북콘서트에서 “내년 총선을 들여다보면 가장 중요한 것이 부산, 경남”이라며 “안철수 원장과 조국 교수,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힘을 써주신다면 총선 분위기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PK 정치세력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진영뿐 아니라 한나라당까지도 ‘문재인발 야권통합’이 가시화되면서 2012년 총선과 대선에 대한 주판알을 다시 두드려야 하는 상황이다.

문재인, 야권 유일한 ‘박근혜 대항마’로 부각

PK정치지형 변화의 구심점으로 문 이사장의 등장은 2012년 총선 뿐 아니라 대선지형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박근혜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중심축인 영남을 TK와 PK로 분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PK에서 30%에 가까운 득표로 영남의 표를 가르면서 대선 승리를 이뤄냈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 문 이사장이 대권주자로 나설 경우 PK에서 노 대통령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된 PK의 탈 한나라당 흐름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더 증폭될 수 있다는 진단 때문이다.

이는 ‘박근혜 대세론’이 부산·경남지역에서 허물어진다는 뜻이다. 대세론에 힘입어 부자 몸조심하듯 신중한 행보를 거듭해온 박 전 대표에겐 강력한 지지기반인 PK가 떨어져 나갈 판이다. 30%대 지지율에 갇힌 박 전 대표로선 중도로 외연을 확장해야 할 시점에 ‘집토끼’가 달아나는 최대의 위기로 몰릴 수 있다.

더구나 문재인에 대한 최근 여론조사 결과 자체도 그가 대권도전을 구체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리얼미터 조사로 처음 3%대의 지지율로 출발했지만 불과 12주만에 11.7%까지 치고 올랐다. 자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노무현 지지세력의 선택에 따른 것이다. 문 이사장이 대권도전 의사를 보다 분명히 할 경우 그 파괴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나아가 야권진영에서 ‘박근혜’에 맞서는 유일한 카드로 문재인 이사장으로 교통정리가 진행될 경우 그 위력은 배가되면서 ‘박근혜 대세론’ 자체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진단이다.
바로 이러한 문 이사장의 PK 정치세력화 가능성과 박근혜 대세론에 맞서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혁신과 통합’이 주도하는 ‘야권통합운동’이 9월 이후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문재인발 야권통합의 핵은 ‘호남+PK연합’

문재인 이사장을 중심으로 민주당 밖의 이해찬 전 총리 등 친노세력과 시민단체가 총결집해 ‘야권 대통합’에 나선 것 자체는 민주당 내부를 뒤흔드는 요인이다. 특히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대권주자 지지세가 현저하게 꺾이고 있는 상황까지 맞물려 있다.

당 밖의 유력주자인 문 이사장의 대권가능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민주당의 고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다. 그를 당내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민주당은 많은 양보를 감수해야 한다. 문재인 이사장을 비롯한 친노인사들에 대한 개별입당 방식은 이제는 물 건너갔다.

문 이사장을 민주당의 대권주자로 영입하는 차원이 아니라 민주당 밖의 친노세력과 PK세력을 정치세력으로 그 지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야권 대통합’이다. 즉 PK와 영남지역에서 호남이미지의 현 민주당에서 탈피한 새로운 통합정당을 통해 2012년 총선에 임하자는 것이다.

지금 ‘혁신과 통합’은 ‘소통합’에 나선 진보진영에 민주당과의 ‘대통합’에 나설 것을 주문하며 압박하고 있지만 실제 궁극적 목표는 민주당의 전면적인 개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혁신과 통합’의 기본노선은 ‘국민의 명령’에서 제시한 정파등록제에 기초해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해 새로운 ‘연합정당’을 만들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진보정당들이 참여할지 여부와 관계없이 민주당의 전면적인 개혁을 전제로 한 것이다.

‘혁신과 통합’이 표면적으로는 진보진영에게 “참여당과의 소통합은 인정하면서 왜 민주당과의 대통합에는 반대하느냐”며 압박하는 있는 것도 민주당내 개혁동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포석으로도 해석된다.

문 이사장도 진보정당의 원내교섭단체 확보와 관련해 “민주당과 연합정당을 만들어 내부에 일정한 몫을 인정받는 것이 그 목표 달성에 유리하다”며 대통합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도 실제로는 “통합에 진정성 있게 응하면서 기득권도 내놓을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며 민주당에 더 신경을 쓰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 또한 최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유언이라며 “민주당이 70%고 나머지가 30%니까 민주당이 70을 먹고 나머지에 30을 주겠다는 자세로 통합하려 하지 말고, 내가 70%지만 70을 내주고 30%만 먹고도 통합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또한 야권통합을 위한 민주당의 대폭적인 양보를 압박하는 발언이다.

민주당은 4.27 재보선을 통해 유시민 대표를 대권주자 대열에서 낙마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지금은 문 이사장을 맞아 ‘대통합’논의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문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혁신과 통합’은 올 연말까지 민주당과의 ‘통합협상’을 본격적으로 벌여나갈 전망이다. 그 결과를 지역정치구도로 보면 ‘호남+PK연합’의 탄생을 의미한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PK정치세력의 존재 자체가 미미해 세력연합이 아닌 ‘영남후보론’으로 국면을 돌파한 것과는 다르다.

문재인 이사장으로선 ‘호남+PK연합’에 시민사회와 진보정당까지 참여한 ‘대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기간당원제를 근간으로 하는 민노당, 진보신당, 참여당의 합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차선으로 새로 탄생할 ‘진보통합당’과의 총선과 대선에서의 연대에 방점을 둘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발 야권통합의 최종목표는 지역적으로 ‘호남+PK 연합’과 이념적으로 자유주의와 진보의 연합이다. 그러나 현실적 난관에 봉착할 경우 이념적 통합보다는 지역적 통합에 무게중심이 더 실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현실이다.

문재인의 아킬레스건, 호남의 ‘反영남후보론’

그러나 이러한 문 이사장의 도전에 난관 또한 만만치 않다. 과연 호남이 이를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른바 야권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는 ‘문재인의 아킬레스건’이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호남의 반노정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호남 민심이 지금 ‘영남후보론’에 대한 반감을 회수한 것은 아니다.

유시민 대표를 물러서게 한 데도 호남의 비토정서가 일정 강하게 반영돼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문 이사장은 PK 정치세력의 대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문 이사장은 지난 2006년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부산정권’ 발언으로 호남 민심과 거리가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이사장으로선 야권통합과정에서 호남 민심의 동의를 이끌어야내야만 한다. 이는 정치공학적인 역학구도의 문제가 아니다. 호남정서의 문제이다. 문 이사장은 영남에서의 민주세력의 복원에 일정 성과를 이뤄낼 가능성을 보였지만 이 지점에서는 호남 민심을 얻어야 하는 과제도 동시에 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 과정이 야권통합의 과정이며 이를 통해 2012년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 유산인 ‘지역주의 청산’이다. 문재인 이사장은 바로 이 부분에서 노무현의 유산을 승계한 셈이다.

따라서 문재인발 야권통합은 2007년 열린우리당 해산 이후 다시 호남 기반으로 돌아간 민주당의 변화를 견인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한나라당의 지역기반인 영남을 균열시켜 야권진영의 새로운 교두보로 만들려는 도전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 이사장의 도전의 승부처는 바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의 대권 가능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야권통합의 동력은 강화되지만 반대로 그의 대권 가능성이 정체되거나 약화되면 그만큼 야권통합 동력도 약화된다.

이제 문 이사장은 본격적은 정치적 검증대에 들어섰다. 그가 이 과정에서 난관들을 헤치고 야권의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할 지의 여부가 바로 ‘야권대통합’의 과정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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