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한국 정당의 실패를 말하고 있다. 한국 정당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에는 이른바 ‘안철수 현상’에 시민후보론까지 가세하면서 한국 정당정치는 더욱 비판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정당정치가 안고 있는 근본적 한계에다 시대 변화에 조응하지 못한 정당개혁의 실패가 가중된 결과이다. 특히 실패한 집권여당을 대체하는 대안 야당의 실종은 정당 실패의 결정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정당이 근대 대의정치의 중심 기구로 자리해오고 있지만, 그 기능은 양면적이다. 관점에 따라, 시대적 조건에 따라, 정당의 긍정적 역할이 강조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대중의 정치적 참여를 매개하고 동원하는 구심점이 되기도 하고, 그 참여를 왜곡하고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간에 정당과 같은 정치조직의 출현은 불가피하다. 정치권력 투쟁에서는 개인보다 세력화된 조직이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정치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최대한 살리도록 하고, 그 부정적 기능은 최소화시키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치문화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치지만, 크게는 정당정치 관련 정치제도에 의해 좌우된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정당정치가 시작됐던 1공화국의 이승만 대통령은 정당정치를 아주 부정적으로 보았다. 하나의 민족이라는 ‘일민주의’를 내세우면서 정당이 가지고 있는 파당적 폐해를 지적했다. 이승만 대통령 자신이 특정 정파의 대표가 아니라, 전 국민의 대표임을 자임하고자 하는 속내도 있었다. 미국의 와싱톤, 해밀톤 등도 정당의 분파적 특성을 지적하면서 정당정치의 폐해를 강조했었다. 여러 다른 나라에서도 국가 수립 초기의 지도자들에게서 반(反)정당정치 시각은 자주 나타난다.

그러나 권력 투쟁은 정치조직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이승만 또한 집권 2-3년만에 한국 최초의 집권여당인 자유당을 만들게 된다. 정치참여 조직으로서 정당이 명확하게 규정된 것은 제3공화국 박정희 정부였다. 정당법이 만들어졌고, 대통령과 국회의원 후보는 정당 추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헌법에 규정했다.

물론 정당과 정치활동 자체가 제약받았던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적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음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이후 무소속 제도 등이 복원되었지만, 3공화국 정부에서 만들어진 정당 위주의 정치참여 제도는 한국정치에서 정당 특권화의 뿌리가 되었다. 대의민주주의는 정당정치라는 근대 초기의 시각이 최근까지 한국의 대의정치에 대한 시각을 지배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정당에 대한 불신은 컸다. 민주적 책임정치의 기제로서 정당의 제자리 찾기에 주목하기보다, 기계적인 정당 책임정치론과 그에 대한 불신이라는 대책 없는 정당정치론이 지배했다.

민주화 이후 정당의 역할에 커졌지만, 그에 대한 신뢰는 크게 증가하지 못했다. 그 역할을 언론과 시민단체가 대신했다. 언론은 정치를 비판하고 견제한다. 그런데 정치에 대한 불신과 언론의 비판 기능은 공존한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정치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고 있는데, 그 요인의 하나로 언론의 역할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정치에 대한 불신 대신에 언론에 대한 신뢰가 증대한 것도 아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을 무기 삼아 영향력을 증대시켰지만, 그만큼 언론에 대한 신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SNS가 새로운 소통과 여론의 기제로 등장한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비정치인 안철수 교수가 단번에 50%를 넘나드는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수십만의 SNS 소통, 그리고 기성 언론 매체의 호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통적 언론의 힘과 새로운 소통기제로서의 SNS가 결합한 태풍이었다.

무엇보다 민주화 이후 불신 받는 정당의 영역을 대체한 것은 시민사회 단체였다. 한국 시민운동 세력은 정당을 보완하는 수준을 넘어 고도로 정치화됐다. 시민운동 세력이 준 정당의 수준으로 정치화되면서, 시민단체에 대한 보편적 신뢰는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정적인 분기점이 2000년 총선연대의 낙천·낙선이었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장 보선에 나선 박원순 변호사가 신망받는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였다는 것만으로 국민들의 새로운 기대를 담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안철수 교수와 절묘하게 바톤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정치, 특히 기성 정당정치에 대한 대안처럼 부각됐다. 그러나 역사성과 정치적 기반을 가진 기성 정당을 넘어서는 1인 정치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성 정당에 대한 차별성을 내세우려고 했던 박원순 변호사도 좀더 적극적으로 민주당 등과 함께 하려는 것 같다.

사실 시대적 상황이 바뀌면서 정당의 고유 기능은 많은 부분이 무용하게 됐다. 정치에 대한 정보, 정치 여론 형성, 이제는 정당 없이도 가능하다. 때로는 정당보다는 더 빠르고 생활밀착적인 정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러니 일반 국민은 정당이 점차 국민의 일상적 요구와 괴리되는 측면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정당들이 생활정치를 강조하고 SNS를 적극 활용하려고 하는 현실이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이렇게 정당이 유별난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정치권력 통로는 독점하고 있다. 그러니까 정당에 대한 불신·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 정당정치 실패에는 대안 야당의 실종이 있다. 대안 야당의 실종은 정당 실패 현상이기도 하고 실패의 요인이기도 하다. 집권여당에 대한 실망은 흔히 나타난다. 그래서 야당이 대안이 돼 집권한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집권여당에 대한 실망에도 불구하고 대안 세력이 애매한 상태가 돼, 민주적 정당정치의 순환구조가 깨진 것이다. 2008년의 촛불정국도 이미 그런 정당정치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물론 지난해부터 야권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일정하게 있다. 적어도 총선에서는 집권여당에 책임을 묻는 대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들 대체로 진단한다. 그러나 여전히 분명한 대안 야당은 없고 애매한 야권만 있는 것 자체가 책임 정당정치의 실종이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87년 체제의 극복에 대한 요구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현재의 야권 연합은 87년 체제의 진영 구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야당의 재편, 정당정치의 전환, 나아가 한국정치의 패러다임 전환이 맞물려 있는 복합적인 전환기이다.

2011. 9. 22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폴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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