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대통령이 인정한 행정전문가 김동완, 충남발전의 주역으로 꼽혀

김동완 한나라당 당진군 당협위원장은 1958년 당진군 우강면 원치리에서 태어나 우강초등학교, 합덕중학교를 거쳐 인천 제물포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성균관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육군학사장교로 군복무를 하였다. 대학재학 시절 최연소로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김 위원장은 충청남도 도시과장을 시작으로 문화예술과장, 개발담당관, 최연소 금산군수, 기획관리실장, 행정부지사 등 30년 공직생활 중 17년을 충청남도에서 일해 왔다. 그는 행정자치부 재정과장, 지방세제국장,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지방재정), 미국 인디애나대 석사(공공재정), 경원대 대학원 박사과정(지역개발) 등 지역개발 전문가로서의 자질도 갖추고 있다. 그는 또한 청와대 행정관(국민의 정부), 사회정책비서관(참여정부), 사회통합위원회 통합지원단장(이명박 정부)을 맡는 등 3대 대통령으로부터 인정받은 진정한 행정전문가이기도 하다.

등소평처럼 체구는 작지만 한 번 결심하면 꼭 해내고야 마는 그의 성격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 “31년 공직생활에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당진을 위해 보따리를 풀겠다”는 그의 포부를 <폴리뉴스>, 자매지 월간 <폴리피플> 11월호(28호)가 지난 10월 14일 직접 만나 들어보았다.

“서해안고속도로 당진경유, 당진 매립공단 추진한 보람 느껴”

▶ 청와대 비서관, 충남 부지사 등 공직생활 30년간 종횡무진 활약하셨는데, 어떤 과정이 있었나?

옛 어른들 말씀에 ‘주마등같이 지나갔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충남도청에서 반 정도 근무했고, 나머지 반은 내무부(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로 명칭 변경)와 청와대에서 근무를 했다. 행자부에 근무했을 때 1948년 이후 처음으로 지방재정의 기본 틀을 바꾸는 작업으로 지방예산편성지침폐지, 지방채총액한도제 도입, 사회단체보조금제도 등을 현 시대에 맞게 개선하였고, 지방세국장으로써 ‘지방세중장기계획’을 수립하여 지방소득·소비세 도입, 지방세연구원, 지방세법 분법 등의 기초를 만들어 지방자치의 재정·세제의 틀을 구축하였다는 보람을 느낀다. 충남도에서는 충남도청이전, 세종시 위치확정, 서해안고속도로의 당진경유, 당진의 매립공단 추진, 백제문화권특정지역개발, 홍삼전매제도 폐지, 금산인삼제의 전국축제화 등을 추진했던 보람이 기억난다.

▶ 30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셨는데, 정치에 입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제가 가장 하지 않으려고 했던 직업이 정치였다. 이완구 前충남지사께서 저에게 “언젠가는 후회할 것이다” 라고까지 말씀하셨는데 결국 이 길로 오게 되었다. 아마 제가 행정고시를 최연소로 합격하고 공무원으로써 누구 보다 빠르게 승진하다 보니 자연히 50대 중반도 되지 않아 관직을 떠나야 하는 현실이 정치의 분수령으로 넘어오게 된 것 같다.

물론 직접적 계기는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후 원희룡 사무총장의 영입제의였지만, 당진의 한나라당 소속 도의원·군의원을 중심으로 많은 주위분들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입문한 것 같다. 그러나 제 성격상 일단 시작하면 제대로 하는 성격이라서 이번에도 저는 정치입문을 계기로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그리고,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욕을 먹는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부분이 제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느낀 가장 아쉬운 점인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개인적 욕심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보다.

사심을 버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올곧게 정치를 한다면 누가 정치를 욕하겠나? 그런데 현실은 그것이 아니라니까 안타깝지만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고 한다. 저는 앞으로 새로운 정치를 하기 위해 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정치를 하는 것은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헌신하고자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정치의 한 중심에는 국민이 있는 것이고, 말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주인으로 섬길 때 편안한 세상이 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다짐한다.

▶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현역의원 교체지수가 60%~70%에 달하고 있다. 현역의원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위적 세대교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말이 있다. 정보화시대로 오면서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최근에 나타나는 현역의원 교체지수가 높은 것은 그동안 국회가 생산적이지 못하고 당리당략차원에서 몸싸움을 많이 했던 업보가 아닌가 생각한다. 집안에서도 부부가 싸움만 하면 가세를 어떻게 키워나가고 자식을 어떻게 키우나? 따라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 되기 위하여는 부부가 신뢰하고 상호협력 해야 하듯이 여야간에도 서로 신뢰하고 국익을 위하여, 인류애를 위하여 상호협력 한다면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 지역의 현역은 김낙성 의원이다. 지역에서 현역의원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고향 선배님을 제가 감히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제가 알고 있는 김낙성 의원님은 고향에서 대과없이 청렴하게 공직을 해 오신 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만 고향에서 저에 대해 유권자들이 말씀하시는 것은 ‘제가 경향 각지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인맥을 쌓았고 정책에 대한 경험도 많으니 고향발전을 위해 일해 보라’는 말씀들이 계셨기에 부족하나마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

“타협의 문화, 토론의 문화가 정착되는 정치 만들 터”

▶ 18대 국회는 그 어느 국회보다 본회의장 점거농성과 여야간 몸싸움이 많았고, 최근에는 성희롱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의원 제명안을 부결시켜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한국 정치의 문제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제가 당진에 오면서 그 원인을 알았다. 최근 유권자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정치현실을 잘 알고 있다. TV 보고 또 보고 경로당이나 모임에 가서 토론을 통해 복습하고 하여 정치사건 하나 하나를 정확히 알고 계시더라. 그런데 정치인들은 그 부끄러움이라 할까 아니면 공개하기 어려운 일에 대해 인위적으로 감추려하고 폼을 잡으려하니 존경심 보다는 욕설이 나오는 것 같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되, 끝까지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누가 불신하겠나? 여야간 다툼도 마찬가지다. 너무 총론에 집착하다 보니 명분싸움 밖에 없다. 서로 좀 더 각론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타협의 문화, 토론의 문화가 부족한 것 같고 또한, 서로 미운 감정이 내재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가 근대사를 지내 오면서 역사의 굴곡 속에서 발생한 것이 있고 이를 서로 해소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이를 해소하려고 노력했지만 욕심들이 크다 보니 합리적 대안을 찾기보다 명분싸움에 치중했기 때문에 진정한 화해가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저희 세대만 하여도 그런 감정이 없으니 차차로 풀려나가지 않을까 생각해 보다.

▶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가?

저는 거창한 정치구호 보다 소박한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일단 믿었으면 좋겠다. 정치노선이 다르고 이념이 다른 것을 어떻게 하겠나? 오히려 ‘서로 다름’이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제가 사회통합위원회를 구성하여 출범시킬 때 그 로고를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를 붙인 것을 용역사에서 제안했었다.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는 악보에 같이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서로 얽히면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낸다. 저는 직감적으로 ‘바로 저거다’라고 생각하고 대통령께 보고를 드려 확정했다. 이제 ‘서로 다름’이 미움이 아니라 융합의 시초라고 시작하는 생각이면 될 것 같다.

“힘든 이들과 함께하는 ‘마중물’ 역할 하겠다”

▶ 김낙성 의원은 3선의원으로 지역기반을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 김낙성 의원과 비교할 때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저한테는 α가 하나 더 있다고 하더라. 정직과 청렴하면서도 행정의 풍부한 경험 그리고, 많은 경향각지의 인맥들이 있다고들 말씀해 주신다. 제가 고향을 위해 필요한 사람이라면 기꺼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한다고 생각을 했고, 고향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자하는 마음 그 자체가 저는 좋다. 또한, 저는 경제의 파이(π)를 키운다거나, 경제 성장 일변도 보다는 힘든 사람과 함께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사람이다. 그것이 모토가 되어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힘을 줄 수 있고 마중물로써의 역할을 하는 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다.

▶ 현역 의원은 대체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신인은 예비후보 등록 전까지 마땅히 자신을 알릴 수단이 없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주로 해 왔나?

발로 뛰었다. 시골출신이 무슨 강점이 있겠나? 10여리 떨어진 합덕중학교를 다닐 때 다져 놓은 튼튼한 다리가 큰 무기다. 그리고 수행비서를 두지 않았다. 권위주의적인 것은 싫었다. 제가 유권자에게 직접 “김동완입니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수행비서가 이야기하면 뒤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걱정들을 많이 한다, 관직을 떠났으면 야인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래도 필요해서 정치 좀 하라는데 무슨 체면입니까? 재활용인데… 그냥 체면이 안 서면 안 서는 대로 알아주면 알아주는 대로 다녔다. 어떤 때는 몸이 불덩이 같이 몸살이 날 때도 있었지만, 한 분이라도 더 만나기 위해 불철주야 발로 뛰었다. 지난 1~2월에는 조카딸네 집에 잠시 있었는데, 조카딸이 제 걱정을 많이 했다. 밤늦게 귀가하여 다리가 너무 아파 밟아 달라고 했으니까. 저의 어릴 적 불행했던 가정사가 저도 모르게 저를 강한 인내력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나보다.

▶ 주민들에게 본인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고, 주민들 반응은 어떠한가?

이름을 잘 기억하게 해드리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나이가 드신 분들에게는 “MBC 김동완 통보관입니다”라고 했고, 젊은 분들에게는 “신화의 가수 김동완입니다”라고 했다. 어떤 분은 진짜냐고 하시는 분도 계시고, 주민들은 매우 재미있어 하시더라. 부지사까지 한 사람이 그러고 다니니, 처음에는 안쓰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주민들이 오히려 “날씨 어때요?” 하고 농담을 걸어온다. 그만하면 성공한 것 아닐까?

“당진군민 여러분! 기쁘시죠?”하며 떠날 수 있는 정치인 되겠다

▶ 국회의원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 이익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데, 구체적인 지역발전 비전을 갖고 있나?

많은 국민들이 ‘떠오르는 당진’이라고 말한다. 와 보니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죽겠다고 하고 기업인은 기업인대로 죽겠다고 하더라. 왜 그럴까? 시너지 효과를 못 만들어낸 것 같다. 프랑스의 남부도시 ‘소피아 앙티폴리스’는 50년만에 유럽에서 유망한 혁신첨단도시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상원의원의 힘이 컸다. 저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저는 기업인과 대화가 되고 고향사람들과도 대화가 되니 제가 제격인 것 같다. 지역혁신네트워크를 만들어 ‘모두에게 좋은 당진’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당진사람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기쁘시죠?”라고 환하게 웃으며 떠나면 그것이 삶의 보람 아니겠나?

▶ 당진의 현안은 무엇이고,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있나?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진사회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산업적으로 세계첨단기업으로부터 전통적인 산업인 농·어업에 이르기까지 공존하고 있다. 사람들도 기존주민과 이주민들간에 소통이 잘 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취업구조도 마찬가지다. 직업훈련교육이 충실하지 못하다 보니 당진의 젊은이는 제대로 된 직업을 못 찾고 있다. 이것은 모두 불행한 일이다. 이런 이중구조를 하나로 묶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제 몫인 것 같다. 그리고 당진의 전통사회는 혈연·지연·학연으로 얽혀 있어 소통이 잘 안 된다. 이제는 시로 승격되니 민주시민으로써 합리적 생각과 행태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창출했으면 하는 바람과 정치도 기술적인 정치 보다 젊은이를 키워내는 진정한 정당정치문화를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지난 주말에 KBS의 TV자서전을 보다 보니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출현하셨다. 저는 그 분이 가장 존경스럽더라. 제가 도청에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85년 우리나라 최초로 여소야대 정국이 되었지 않나? 그때 여권에서는 무척 걱정이 많았었다. 그 당시의 부지사께서 저에게 묻기에 “2차원 방정식 밖에 풀어보지 못한 여권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걱정하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어제 폭락했던 주가가 하루 만에 재 급등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문제는 여권만 불안해하고 있는데 다차원방정식의 해법을 배워야 합니다”라고 했다. 다차원방정식의 해법은 변수 중 하나를 고정하고 값을 변화시켜 보는 것이 아니겠나?

마찬가지로 여권이 먼저 국민을 위한 일을 발 벋고 나선다면 야권은 상수화 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종찬 원내총무께서 똑 같은 말씀을 하시더라. 그때 ‘아, 저분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오래하지 못하시더라. 세상은 옳은 말 하는 사람보다 달콤한 말 하는 사람이 성공하나 보다. 그래도 세상이 덜 썩기 위해서는 소금이 있어야 하지 않나?

“세종시 문제를 원칙으로 접근한 박근혜 모습에 반해”

▶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아는데?

아마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이었던 유정복 전 농림식품부 장관과 제가 고교동창이자 행정고시, 육군학사장교 동기생이다 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아직 박근혜 전 대표를 뵙지는 못했다, 그 분의 성품에 대하여는 언론을 통하여 알고 있기 때문에 존경한다. 특히 세종시 문제가 불거졌을 때 박근혜 前대표의 올곧은 모습에 반했다.

▶ 얼마 전 서울에서 자서전 <어머니, 기쁘시죠?>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어떤 분들이 참석하셨고, 반응은 어떠했나?

제가 청와대 사회통합위원회에 근무할 때 모셨던 고건 총리께서 오셨다, 충남부지사를 할 때 저를 이끌어 주셨던 안응모 前내무부장관님, 행정부지사로써 모셨던 이완구 前지사님, 청와대 행정비서관으로 모셨던 이만의 前환경부 장관님, 고교동창생인 유정복 전 농림식품부 장관, 한나라당의 수석전문위원시절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모셨던 고흥길 의원님, 학사장교 동기생이고 정몽준 당대표의 비서실장이었던 정양석 의원은 물론 정부부처에서 근무할 때 같이 근무했던 많은 차관님들과 김석재 종친회장님 등 고향어른들, 충청청년회, 학사장교 동문, 성균관대·제물포고·합덕중·우강초등학교 동문들이 많이 참석해 주시어 감사했다.

당진에 계신 분들은 11월 9일 출판기념회가 당진에서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초청장을 발송하지 않았다. 그래도 500여명이 참석하시어 성황리에 끝내게 되어 다시 한 번 깊은 감사드린다.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셨다고 들었다. 제 얼굴을 보아서는 그렇게 유년시절을 어렵게 보냈는지 몰랐다. 누구든 살다 보면 눈물을 감추고 살지만, 그것을 내놓으려니 쑥스러웠다. 저를 너무 예쁘게 봐주신 것 같다.

“유권자에게 꿈을 주는 아름다운 선거가 되었으면 한다”

▶ 당진은 자유선진당 강세지역이다. 한나라당 공천을 받더라도 본선은 결코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 같은데?

어느 정당이 주민의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질을 높여 줄 것인지 하는 실사구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일관되게 가다보면 민심은 천심으로 다가올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기술적 정치는 당장 표를 얻을 수 있지만 민심을 얻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는 그동안 31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저 자신을 결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일을 하면서 “자신이 한 일이 결점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늘 강조를 했었다. 그 결점이 있고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미래에 할 일이 있으니까.

다만 그런 생각으로 살면 오만해지지 않더라. 겸손해지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래서 지역민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전화하시고 언제든지 사무실로 와라. 억울한 일 있으시면 와도 좋다. 아버지와 큰 형을 일찍이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커 온 저는 지역민의 아픔을 저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살아갈 것이다.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저의 당협사무실에 ‘당진신문고’를 만들어 운영할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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