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겨운 전통문화예술 공연으로 지역민들의 화합과 우정을 이끌다

이 기사는 <폴리 피플> 3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2월 초, 민족고유의 명절인 정월대보름을 맞아 한강변 안양천 둔치에서는 2012년 유지경성(有志竟成)을 테마로 민속대축제가 열렸다. 유지경성이란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 라는 말로 축제는 양천구에서 주관한 행사였다. 올해로 13회째를 맞는 양천구 정월대보름 축제는 우리민족 고유의 세시풍속의 재현과 흥겨운 전통문화예술무대로 이루어진 화합의 한마당 잔치였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판소리 명창 소정 박안순 선생이 이끌고 있는 민속예술단의 공연이었다. 지역에서 화합의 한마당 잔치에는 어김없이 게스트로 출연하여 판소리 열창으로 흥을 돋구어주는 선생의 국악사랑은 선생의 인품만큼이나 지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판소리의 명창으로 우뚝 선 소정 박안순 선생을 만나 그녀의 판소리 예찬을 들어본다.

우리의 조상은 예로부터 음악과 예술을 즐기고 그 속에 삶과 일상을 담아 생활했다. 화려한 궁중 음악에서부터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민요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는 어김없이 음악이 등장한다.

특히 소리를 인간이 자연과 우주와 소통하는 수단으로 인식하여 수제천이나 영산회상과 같은 더 없이 평온하면서도 유순한 정감을 담아내는 독특한 음악들을 탄생시켰으며 이러한 음악 속에는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음악은 자연적이고, 매우 순응적이었다. 이는 전통악기만을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서양의 악기에는 재료에 쇠붙이가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반해 우리의 전통악기에는 목재와 같은 자연적인 재료를 우선시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오늘날 널리 쓰이는 대금이나 단소, 피리와 같은 관악기를 비롯해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현악기 또한 오동나무 공명통에 명주실을 꼬아 줄을 얹은 자연의 재료를 사용했다. 이처럼 한국의 전통음악은 그 자체에 자연과 우주를 담아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년 소리인생 선생의 국악에 대한 열정은 그 자체가 환희
판소리의 명창으로 화합한마당 잔치에는 어김없이 찬조로 출연 열창

판소리는 한 사람의 소리꾼(唱者)이 고수(鼓手)의 북 반주에 맞춰 극적(劇的)으로 구성된 긴 이야기를 ''소리''(歌)와 ''아니리''(말)와 ''발림''(몸짓)을 통해 전달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공연예술이다. 판소리는 ‘판’이란 말과 ‘소리’라는 말이 혼합되어 이루어진 말로, 판이란 말은 ‘사람들이 모인자리’를 통칭하며, 소리라는 말은 노래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판소리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소리하는 것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순조 때 윤달선(尹達善)의『광한루악부』(廣寒樓樂府)에는 판소리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창우희(倡優戱)는 한 사람은 서고 한 사람은 앉아서(一人立一人坐), 선 사람은 소리를 하고 앉은 사람은 북을 쳐서 박을 짚는데(而立者唱 坐者以鼓節之), 잡가 12곡으로 이루어진다(凡雜歌十二腔)"

학자들에 따라 판소리에 대한 장르 구분을 사설과 서사시, 그리고 희곡과 음악 등 다양한 관점으로 이야기하는데, 이는 문학과 연극, 음악적 요소를 고루 갖춘 판소리의 종합예술적인 면모 때문이다. 이렇듯 판소리는 한 사람이 모든 배역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표현하는 음역의 폭이 넓고 성음의 변화에도 능해야 한다.

또한 고수는 무율 타악기인 북으로 장단과 추임새에만 의존해 반주하기 때문에 같은 장단이라고 하더라도 창자의 소리에 따라 다양하고도 적합한 가락(변채가락)을 순간순간 선택해 연주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양천구 구민회관에선 구성진 남도민요가락이 울려 퍼진다. 일상의 피로에 지치기 쉬운 주부들이 민요교실을 통해 우리의 전통가락을 익히고 있다. 6개 월 째 지역의 주부들에게 남도민요를 가르치고 있는 소정 박안순(朴安順·58)선생. 남도민요는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방민요를 말한다. 다분히 토속적이고 삶의 애환이 듬뿍 담겨 있다.

선생이 우리 가락에 빠지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어릴 적부터 창을 읊조리며 장고가락을 두드렸으나,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로 명창에 대한 꿈은 접어야 했다. 하지만 결혼 후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자 선생은 못다 이룬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남편을 조르고 졸라 국악인으로 정식 입문하게 되고 열정과 끼로 판소리를 익히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남편도 선생의 열정을 이해하고 진작부터 그녀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극 적으로 후원해 줬다. 다소 뒤늦은 나이 선생은 마침내 국악진흥회에서 개인교습을 받고 꿈에 그리던 소리꾼의 길로 들어섰다.

선생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타고 난 소리꾼의 자질이 있기도 했지만, 선생의 국악에 대한 열정은 소질을 넘어 끼와 열정으로 단번에 명창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판소리는 음과 말 하나하나에 공력(功力)을 들여 불러야 해요. 그래야 깊은 소리를 낼 수 있지요.”

나이 예순을 앞둔 현재도 후진양성과 제자들을 위한 개인강습으로 선생은 소리로 하루를 열고 소리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그 와중에도 지역에서 펼치는 화합의 한마당 잔치에는 어김없이 찬조로 출연하여 소리로 흥을 북돋아주는 마치 우리네 이웃의 다정한 어머니이자, 맏언니와도 같은 성품으로 지역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그래서인 듯, 선생의 강습소이자 판소리 보존회의 양천지부장 소임을 겸하고 있는 그녀의 사무실 곳곳에는 지역의 기관장이나 각 단체장으로부터 받은 감사패와 각종 상패 등 심지어는 정부 산하기관에서 위촉한 임명장까지 지역에서 펼치는 그녀의 활동과 관련하여 지레 짐작할 수 있는 온갖 표창장들이 장식장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독실한 종교인이자 국악인으로 지역민들의 화합 이끌어
나는 자랑스러운 SGI 멤버…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는 참 종교인

"목청을 다시 찾기 전에는 절대로 세상에 나가지 않으리라는 독한 마음뿐이었다. 토굴 안에서 생쌀을 씹어 먹으며 하루 열여덟 시간씩 소리에 매달렸다. 그러기를 40여일, 쉰 목청으로 소리만 질러댔더니 이가 흔들리고 입술은 부르터서 당 나발 같았고 얼굴과 몸은 물에 빠진 시체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이러다가는 목소리를 되찾기는커녕 목숨조차 부지 못할 지경이었다."

판소리 명인으로 유명한 명창 박동진 선생의 독백처럼, 소정 박안순 선생 또한 소리꾼으로 입문한 이후, 명창 김학용 선생의 판소리 사사를 받으며 마침내 중요무형문화재 제 5호 판소리 고법의 이수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녀의 눈물겨운 수련은 그의 종교적 신념과도 무관하지 않다.

외래 종교라 하여 다소 우리민족에게는 거리감이 있어 보일지 모르지만, SGI(국제창가학회)는 지난 1930년 11월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초대회장과 도다 조세이 2대 회장이 '창가교육학체계'를 펴내면서 출범하게 된 일본의 신흥 불교단체로 전 세계 192개국의 지역에 회원을 두고 있으며, 한국의 회원만도 무려 150만에 이르는 초대형 교세를 갖추고 있다.

“자기의 가치를 창조한다는 뜻에서 창가학회입니다. 사람의 생명엔 부처의 생명이 있기에 그 부처의 생명을 용현하면 어떠한 고난도 이길 수 있지요.

묘법연화경(법화경)과 어록(어서)을 소의경전으로 하고 있는 창가학회는 불교의 깨달음이나 불법(佛法)에 기인한 인간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평화문화교육운동을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꾸준한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사회를 위한 민중을 위한 종교단체로 거듭나고 있는 종교단체답게 맑고 향기로운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국악인 이전에 나는 자랑스러운 SGI 회원이라고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표현하는 선생의 안면에는 늘 그렇듯 편안하고 다정한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한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판소리를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꿈 많던 학창시절 선생의 음악성적은 언제나 1등을 달렸고 주변에서는 목이 참 구성지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어른들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에 음악을 향한 마음을 일시 억눌러 둘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하는 선생의 안면에 쓸쓸한 미소가 맴돈다.

선생은 지금까지 인생의 절반을 불법(佛法)을 펼치며 판소리와 함께 살았다. 종교인으로서도 포교와 봉사활동에 전념하며 지역민들의 화합을 위해서 혼신의 힘을 쏟기도 했다. 또한 국내외 공연을 통해 자신의 끼와 열정을 마음껏 불사르며 소리꾼으로 인정을 받고 현역에서 물러난 지금도 그녀는 판소리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 그녀의 국악에 대한 끼와 열정은 결국 그녀를 명창의 반열에 오르게 했고 예술인으로 인정을 받으며 그 공적이 인정되어 지난 2007년 양천구민 대상을 수상한데 이어 각계각층 의 단체로부터 공로패와 감사패. 봉사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러시아, 일본, 몽골, 중국 등 국외에서 우리민족의 우수성이 깃든 판소리를 열창해 국위를 선양하기도 했다.

이제 선생의 음악사랑은 그의 아들 엄경선씨(한국무용 전공)로 바통이 이어지고 있다. 모친을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들도 현재 음악과 관련한 일에 종사하고 있는데, 모자가 함께 무대에 올라 특별한 공연을 할 때에는 관객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기도 하는 등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음악을 대를 이어 계승하고 있다.

판소리 고법 이수자 소정 박안순 선생은…

전남 장흥에서 태어난 소정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이수자로 국악계의 거장 조상현 선생의 판소리를 이수하고 명창 김학용 선생으로부터 사사를 받았으며, 한국국악교육원으로부터 국악지도사 1급 자격증(판소리)을 받고, 현재 사단법인 한국 판소리 보존회 양천지부장으로 강서구와 영등포구. 양천구 문화원의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선생께서 펼치신 주요 공연과 수상 경력은 다음과 같다.

1994년 5월 전국예술축제 국악부문 우수상.
1995년 12월 전국예술축제 장려상.
1999년 11월 장흥 전통 가.무.악 전국제전 고법부문 장려상.
1999년 12월 인간문화재 제5호 판소리 고법 이수자.
2001년 4월 양천구 문화원 제2기 이사로 선임.
2001년 12월 한국연예 문화예술인 봉사대상.
2002년 2월 한.중 문화교류협회 공로상.
2003년 7월 몽골 독립 축하공연 문화관광 감사장.
2004년 4월 일본 요꼬야마 한.일 우정공연 특별출연.
2005년 7월 한.몽 국교수립 15주년 서울특별시 의회 공로상.
2006년 6월 제1회 박안순 우리소리예술단 판소리 정기공연.
2007년 7월 2007 양천구민대상 수상.
2007년 9월 제2회 소정 박안순 소리예술단 정기공연.
2008년 4월 제3회 소정 박안순 소리예술단 정기공연.
2009년 9월 성숙한 세계국가를 위한 한 세계 한사랑 대회 공연.
2010년 11월 제5회 소정 박안순 소리예술단 정기공연.
2011년 5월 제6회 소정 박안순 소리예술단 정기공연.
2011년 8월 서울특별시장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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