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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작년부터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으로 지정해 유통을 금지하고 있는 수면마취제 혹은 마취제의 주성분인 프로포폴(Propofol)은 과거에 성형외과 등 일부 병원에서 간단한 시술용으로 주로 쓰였다.

정맥에 직접 투약하는 흰색의 액 때문에 흔히 ‘우유주사’로도 통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부작용을 일으킬 시 해독제도 없다고 하여 ‘죽음의 마취제’로 더 익숙하게 불린 이 약물은, 과거에 주로 일부 연예인과 강남 일대 성형외과 등 병원들을 중심으로 의료진과 일반환자들, 심지어 수면클리닉에서도 오남용 실태가 속속 드러나면서 크나큰 충격을 안겼다. 그러면서도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됐고 사망자들까지 속출하는 등 날이 갈수록 사태가 심각하게 흐르자 2011년 보건당국은 급기야 프로포폴을 일반인들로부터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법 개정 2년도 채 되지 않아 최근 한 여성연예인이 프로포폴을 상습투약해오다 적발돼 결국 구속에 이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연예계와 강남 일대에 마약 대용으로 프로포폴이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또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방송인 A(31)씨는 14일 오전 춘천지방법원에 구속적부심사를 받고 난 직후 병세를 호소해오는 통에 춘천 소재 병원에 입원수속을 밟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전날 프로포폴을 투약한 혐의(마약류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A씨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한 강원지방경찰청 외사계는 공급책 등 연루된 관련자 등에 대한 추가조사를 제대로 이어갈 수는 없는 상태. 

미국 국적자로 밝혀진 A씨는 지난 4월 초 서울 강남에 위치한 한 네일샵에서 프로포폴을 투약하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A씨는 구급차로 후송되기 전 팔에 링거주사가 꽂혀 있었고 가방 안에서 프로포폴 5병이 발견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그간 프로포폴을 구입하기 위해 지인들에게 여러 차례 연락한 정황이 드러났다.

경찰은 아직까지 연예인들 사이에 추가 남용된 정황은 포착되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수사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지난 15일 경찰 관계자는 “A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프로포폴 구입 경로와 공급책 등에 대한 수사에 협조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결국 연예가는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됐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프로포폴에 대해 논란이 일었음에도 불구하고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대상에서 제외돼 수면마취제로 사용되던 2009년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연예인들이 이를 마약 대용으로 남용해온 사례가 적잖게 드러났고, 강남 유흥가 일대에서도 일반인들 사이에 밀거래가 성행하는 등 프로포폴의 오남용 실태가 만방에 공개된 바 있다.

그러나 프로포폴 오남용 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른 건 A씨 사건이 있기 약 한 달 전 서울 강남의 H산부인과 의사의 시신 유기사건이었다. 여기에 A씨의 구속까지 더해지면서 과거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한 연예인이 프로포폴에 의존해오다 결국 자살에 이른 안타까운  그때를 되뇌이게 했다. 2009년 4월 이 약물을 과다복용한 20대 연예인지망생이 심장마비로 숨지는 일도 있었다.

이와 별개로 당시 한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쌓은 방송인 B씨는 특별한 시술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 굳이 ‘수면마취를 해야 겠다, 프로포폴을 놓아달라’며 한참동안 생떼를 부린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때는 또 드라마에 출연 중이던 배우 C씨와 D씨가 불면증을 핑계 삼아 일주일에 서너 번 씩은 내원해 프로포폴을 맞았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C씨의 약물중독이 도를 넘었다는 주변인의 주장에 따르면 C씨는 촬영 도중 자주 몸을 떨거나 불안감을 호소해오기도 했다고…. 중견배우 D씨는 수차례 성형이 약물중독으로 이어진 사례다. 이후에는 수면마취를 하기 위해 간단한 지방흡입술이나 레이저시술 등을 받으며 일주일에 3번 이상 수면마취에 의존했다. 병원에서 만류하면 그는 다른 성형외과를 찾고 또 찾아다녔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프로포폴은 자주 투약할 경우 환각증세를 일으키며 이것이 피로를 풀어준다고 착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남용되는 사례가 연예인들 사이에 퍼질 대로 퍼진 통에 한 성형외과 전문의 입에서 “어느 연예인은 하도 (프로포폴을) 맞아 수술 당시 수차례 마취약을 주입해도 말을 듣지 않아 애먹기도 했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수면마취 중독자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프로포폴 오남용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전설이 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사인과도 떼려야 뗄 수 없다. 2009년 6월 25일 사망 당시 베버리힐즈 자택에서도 프로포폴 성분의 진정제 디프리반(Diprivan)이 발견됐다. 개인주치의 콘래드 머레이가 잭슨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 6개월 동안 프로포폴 50㎎을 정기적으로 투약한 결과로 사망원인이 좁혀지며 살해혐의가 씌워졌다. 그러나 향후 부검 결과에서 잭슨은 심각한 프로포폴과 같은 수면마취제 중독에 더해 다수의 약물이 검출됐는 등 심각한 약물중독에 시달려 왔으며, 특히 숨지기 직전 그는 스스로 프로포폴을 정맥에 주사한 사실이 새로이 드러났다. 프로포폴을 남용해 죽음에 이르게 된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마이클 잭슨의 사망 충격까지 더해져 2009년 국내에서는 프로포폴 중독에 따른 오남용이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고, 그러면서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게 일었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은 그러나 대체의약품이 없다는 의료계의 입장을 반영해 마약류 지정을 유보했다. 이에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지 못하면서 경찰의 편법 사용에 대한 마땅한 처벌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010년 6월, 서울중앙지검은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편법 투약한 정황을 잡고 서울 강남지역 유명 성형외과 11곳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검찰은 이들 병원이 프로포폴을 치료 목적이 아닌 일종의 환각제용으로 편법 판매해 온 것으로 보고 처방 기록과 약품 거래내역이 담긴 장부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관련자들을 소환조사해 혐의 사실 확인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히면서도 처벌과 관련해서는 “프로포폴이 법적으로 마약류가 아닌 만큼 처벌 여부와 적용 법률은 조사가 끝나봐야 알 수 있다”며 답답한 심경을 밝혔다.

프로포폴의 향정신성의약품 추진이 본격화된 계기는 그 다음 달인 7월 ‘프로포폴 관리방안 토론회’를 개최한 자리였다. 당시 나온 내용의 일부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식약청이 마취과 의료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78개 병원 중 6곳, 8명의 의료진이 프로포폴에 중독돼 있었다. 중독자로 밝혀진 8명은 마취과전공의 4명, 기타 전공의 2명, 간호사 1명, 무응답 1명 등으로 수련의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들 중 2명은 이미 약물 과다투여로 사망했다고…. 약리연구과장은 이 자리에서 프로포폴 남용 실태를 지적하면서 동시에 안전 관리의 중요성을 열변했다.

비슷한 사례는 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08년 1월 광주광역시 소재 한 외과에서 당직 근무 중이던 모 간호사가 프로포폴 등 마취제를 자신의 팔뚝 등에 60여 차례 투약해온 혐의로 불구속되기도 했다. 당시 마취과 의사들에 따르면 의사나 간호사들이 마취제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보니 ‘피로 회복’을 위해 오용하는 일이 알게 모르게 있어왔다고 한다. 다만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 해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 ‘수면클리닉’ ‘수면센터’ 등에서도 수면유도제로 ‘프로포폴’이 널리 사용됐다. 그러면서 마취제의 오남용으로 인한 부작용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한번 맛들리면 심리적인 의존성이 강해져 반복적으로 투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중독에 이르게 된다는 프로포폴은 환각증세를 동반하는데, 심각한 부작용과 위험이 뒤따른다. 이 약물은 특히 마취 효과와 치사량 사이의 폭이 아주 좁다는 게 정설로 되어 있는데, 환자의 호흡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심폐 기능이 나쁘거나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혈관 확장이나 쇼크가 올 수 있으며 코골이가 심한 사람, 심근경색 등 심장질환자, 심한 호흡기 질환자, 폐기능 장애가 있는 사람, 고혈압이 있는 사람 등 환자의 몸 상태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더욱 문제는 미다졸람 등과 달리 프로포폴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에는 해독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 때는 10분의 1은 죽음에 이른다는 ‘죽음의 마취제’라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미 수차에 걸쳐 프로포폴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해왔다. 국과수는 2008년 학계에 보고한 ‘의료 행위 중 프로포폴 투여와 관련되어 사망한 사건의 부검 예’ 보고서를 일종의 경각심을 일깨우고자 발표했었는데, 위내시경 검사 직후 사망(64·66·남자), 성형수술 중 사망(39·여), 임신중절 수술 직후 사망(27·여)한 경우 등 프로포폴 투여와 관련한 4명의 사망자 부검 결과였다. 국과수는 전신마취 후 발생한 사건에서 프로포폴을 사용했을 경우 치명적인 사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식약청은 ‘프로포폴 관리방안 토론회’ 한 달 만인 2010년 8월 프로포폴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선제적으로 지정, 관리하겠다고 공언고 이듬해부터 본격 시행했다. 중앙약사심의위에서는 프로포폴을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오남용 할 경우 사용 자제력을 상실하게 하고, 강력한 충동과 지속적 갈망 현상인 정신적 의존성(보상효과)을 유발하는 약물”이라 정의 내렸다. / 오진영 기자 pppeo001@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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