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정세 포커스] 벌써부터 꿈틀대는 ‘박근혜 대세론’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정권 2인자

우리 정치사상 유례없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MB가 집권한 지 9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차기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권력’의 서슬이 시퍼런데도 ‘미래권력’의 품에 안기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속출한다.

정권 2인자가 대통령 권력이 막강한 집권 초기에는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권력사였다.

그런데도 박 전 대표는 대통령과 ‘적’도 ‘동지’도 아닌 불안한 동거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작년 대선 경선과정에서 쌓였던 상호 불신은 앞으로도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17일에는 인사문제, 경제대책, 수도권 규제완화, 대북정책 등 대통령의 주요 정책들을 전방위적으로 비판하였다. 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 여당 속의 야당 행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특히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면 여당의 유력한 차기주자는 대통령의 실정으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럼에도 그는 오히려 MB 지지도 하락의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박근혜 대세론’ 당분간 계속될 듯

지난 10월 시사주간지 <시사IN>의 여론조사에서 ‘적합한 차기지도자’를 묻는 질문에 박 전 대표를 꼽는 응답이 다른 인물들을 압도했다. 35.1%로서 정동영(9.2%), 이회창(6.0%), 손학규(4.4%), 정몽준(3.5%) 등을 멀찌감치 앞선 것이다.

그에게 지지가 쏠리는 것은 주․객관적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경제위기로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유력한 대권주자가 없는 민주당은 대안세력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존재감마저 잃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높은 인지도와 ‘콘크리트’ 지지층을 갖고 있는 박 전 대표가 대안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여권의 책사(策士)로 불리는 윤여준(69) 전 환경부장관은 차기 대권 구도와 관련해 “지역, 성별, 계층, 연령에 관계없이 15~18%의 고정 지지층이 있는 박 전 대표가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의 고정 지지층은 무서운 자산”이라며 이 같이 전망했다.

박 전 대표는 현재 정치인 가운데 가장 크고 강력한 지지집단을 거느리고 있다.
자생 팬클럽만 수십개에 달한다. 박근혜 팬클럽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호박가족>은 회원수가 7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 충성도는 <노사모>에 못지 않다. <호박가족>은 내년 초 대규모 출범식을 가질 계획이다.

한나라당 안에서 회자되는 ‘원박(원조 친박)’, ‘월박(친박으로 넘어온 친이 의원)’, ‘복박(친박으로 복귀한 의원)’, ‘주이야박(낮에는 친이, 밤에는 친박)’ 등은 박근혜 대세론의 단면을 보여준다.
동요하는 친MB계 의원을 붙잡기 위해 이상득 의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소문도 나돈다.

그의 안정감 있고 절제된 리더십은 전․현직 대통령의 가볍고 돌출적인 언행에 짜증난 국민들에게 호감을 준다.

서민을 껴안는 ‘따뜻한 보수주의’는 MB식 ‘정글 시장주의’와 대비되어 서민층의 마음을 끌고 있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경제성장’을 이뤄낸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도 작용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예상되는 북미관계 진전도 그의 입지를 키울 것으로 보인다.
그는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면담하고 특별대우를 받은 몇 안되는 현역 정치인이다.
MB는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남북관계의 활로를 열기 위해 그를 대북특사론으로 파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는 "5년마다 바뀌니까 정책 하나 뿌리내리는 것도 없고, 한번 정권이 바뀌니까 사람, 정책 다 바뀌어 대북정책이 바뀌니 이래서 되겠는가"라며 MB 대북정책의 유연성 부족을 비판한 바 있다.

‘박근혜 대세론’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집중적인 견제와 공격 예상돼

하지만 ‘박근혜 대세론’이 2012년 대선 때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아직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지 않았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듯이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어떤 인물이 새롭게 등장할지 알 수 없다.

미국에서 정치 신인에다 흑인 출신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정치의 역동성이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여권 안에서는 친MB계가 그의 독주를 계속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가 지나면 독자후보를 가시화하고 그를 집중적으로 견제 공격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양측간의 분열이 격화되어 분당 사태까지 일어날 수 있다.
여권 지지층인 보수세력은 이미 ‘강남보수’와 ‘영남보수’로 분화하고 있다(폴리브리핑 11월 7일자 참조).

야권도 전열을 재정비하고 유력 주자를 부상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박근혜가 풀어야 할 숙제

박 전 대표 스스로 풀어가야 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1) 한나라당 지지기반을 확고하게 다져야 한다.

그가 수도권 규제완화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는 데는 영남, 충청, 강원 등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역기반을 다지겠다는 의도가 있다. 무주공산인 PK는 측근인 김무성 의원을 통해 공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이상득 의원이 김 의원을 만난 것도 이러한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친박진영에서 당권 장악을 통한 공천권 행사를 위해 2010년 지방선거 전 조기전당대회 주장이 나오는 것도 ‘집토끼 다지기’를 위한 고민의 일단으로 보인다.

(2) 고정 지지층을 넘어서서 외연 확장이 가능한가도 문제다.

그는 영남‧충청‧강원, 주부층, 50대 이상, 중상층과 영세서민, 저학력 등 전통적인 보수층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중도층을 끌어들여야 한다.
작년 대선에서 수도권, 30〜40대, 고학력 중산층, 중도성향 유권자가 MB 승리를 결정지었다.

그는 아직 이들의 마음까지 얻지는 못하고 있다.
박정희식 20세기 개발독재의 잔영에서 벗어나야 중도층을 견인할 수 있다.

(3)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쇠퇴하는 것도 박 전 대표로서는 부담일 수 있다.

그가 작년 경선 과정에서 내놓은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질서 바로 세우기)’ 공약은 그대로 MB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17일 “무조건 푼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고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을 비판하며 MB의 경제정책과 선을 긋기는 하였다.

하지만 “MB의 경제정책이 불신 받는다면 그 책임을 마땅히 나눠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MB와 같은 정당 소속이고 현 정권 창출에 기여한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MB의 대안이 박근혜라는 주장은 조지 부시의 대안이 버락 오바마가 아니라 존 매케인이라는 우스개와 다를 바 없다”는 비유도 있다.

(4) 오바마 당선으로 시작된 변화와 개혁의 신진보 시대가 우리나라에 불어닥칠 가능성은 또 다른 위협요인이다.

그는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탄압 전력에서 도덕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인혁당 사건 등의 피해자에게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할 마음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성향의 박 전 대표가 시대 흐름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지 미지수다.

(5) ‘수첩공주’라는 별명에서 드러나듯 취약한 컨텐츠도 시급히 보강해야 할 문제다.

자문교수단과 함께 경제, 복지 등을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성과가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다.

정국 향방 좌우할 최대 변수

한나라당은 172석의 거대여당이지만 100석 정도만 움직인다는 지적이다.

나머지 친박의원들은 팔짱을 끼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 한미FTA 조기 비준, 예산안 등에 대해서는 대체로 비판적이다.
현재 한나라당 의원 172명 가운데 70~100석은 박 전 대표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친MB계는 MB노믹스의 인프라로 여기는 법안과 예산안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해서 내년 ‘대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기국회 회기가 20일 남짓 남아 있는데도 법안과 예산안 통과는 불투명하다.

여권 핵심으로서는 야당과의 ‘입법대전’과 ‘예산전쟁’을 앞두고 그의 협조가 다급한 실정이다.
MB의 친형 이상득 의원이 친박계와의 갈등 재연을 막기 위해 이재오 전 의원의 귀국을 연기시켰다는 말이 나도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도 집권여당 유력주자로서 대통령과 정부를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기회주의 행보라는 비판 때문에 비협조적 태도로 일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본인의 가치지향과 비슷한 정부 정책은 선별적으로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양측 간의 계파갈등이 치유되어야 여권 핵심의 정국 구상이 뜻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의 ‘인사탕평’ 주장은 친MB계의 친정체제 구축 시나리오와 부딪힐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가 당장 전면전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 전까지는 ‘침묵모드’를 유지하다 필요할 때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제한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친MB계의 ‘구심점’이자 계파갈등의 ‘진앙지’인 이재오 의원이 언제까지 미국에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늦더라도 내년 10월 은평 재보궐선거를 앞두고는 귀국할 것으로 관측된다.

시간이 갈수록 여당 내 계파갈등은 고조되고 정국의 불안정성은 높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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