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인터넷 언론이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를 질주하고 있다. 신문 제호 작명소가 있을까 싶을 만큼 온갖 이름의 매체들이 비 온 뒤 죽순처럼 생겨나 이미 1만개를 넘어 2만개에 이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신문제작에서 종이를 없앤 인터넷 신문의 특성은 일단 지구환경의 시대정신에는 맞다. 더욱이 과거 ‘조중동’이 상징하는 거대중앙언론의 여론 독점 시기를 돌이켜보면 미디어의 양적 팽창은 언론자유의 한 실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 매체 시대에 침투한 언론의 과잉은 한국사회에서 저널리즘을 ‘거질리즘’으로 착각하게 만들만큼 많은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인사들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보다는 기업과 오너의 약점을 노리거나, 심지어 왜곡해 광고협찬을 노리는 약탈경제가 언론에 판치고 있다. 이미 언론사의 등록을 허가가 아닌 신고제로 허용해 빗장을 풀어 놓은 현실에서 국가의 개입은 언론 탄압이라는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언론사와 기자 단체의 자정기능은 무한경쟁에 빠진 언론계 현실에서 머리를 맞댈 겨를도, 마땅히 구사할 수단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NAVER)가 국가나 언론계가 나서기 힘든 난제를 해결하는 듯한 지금 한국의 언론 현실은 그 순기능과 역기
지난 2016년 늦은 봄 충남 당진시에서 열린 시민토론회에 토론자로발표를 한 적이 있다. 주제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와 지역사회의 환경 분쟁 및 지역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필자는 당시 포스코 제철소가 위치한 포항에 본사를 둔 언론인이자 시민단체 일원의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그날 행사의 목적은 당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철강업 선배도시인 포항지역사회가 포스코와 공해 문제는 물론 지역협력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벤치마킹하려는 것이었다. 당시현대제철은 한보철강에서 인수한 당진제철소의 중국산 저가 설비와 이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로큰 갈등을 빚고 있었다. 토론회에 배포된 자료집에 실린 제철소 주변 배추밭의 철강 분진 사진은 포항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적잖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날 더 놀라웠던 것은 당진의 지역사회가 성장동력 기업과 관련된 최대 현안에 대해 분열되지 않고 대체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통상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지방자치단체장은 눈도장과 축사 수준의 참여도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충남도가 작성한 현황자료는 시민단체의 것을 방풀케할만큼 구체적이었으며 당진시장의 축사는 격문을 연상케할 만큼 결연했다. 벤치마킹을 위해 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어제 1주일만에 출근했다. 공무원의 퇴근을 1시간 앞두고 출근하는 그의 모습을 개선장군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청와대와 여권에게 윤 총장은 지난 1년 동안 도저히 상상도, 예상도 하지 않았던 '블랙스완'(black swan)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는 트로이 목마로 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적이 보낸 위장된 선물이 아닌 자초한 재앙쯤이라고 할까. 지난해 검찰총장 인사 당시 내가 기대한 총장 후보는 따로 있었다. 이제 변호사인 그와 윤 총장은 대구지검 포항지청을 거쳐 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지청을 통괄한 신분이었던 반면 윤 총장은 대구지검으로 좌천된 신세였다는 점이다. 세월이 흘러검찰총장 인사를 앞두고 치열한 정보분석이 난무하던 상황에서 ‘윤석열 불가론’ 가운데 무릎을 치게 하는 관측이 있었다. 그 내용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강성인 윤석열이 임명될 경우 (검찰의)‘업권 수호’를 위해 내부 갈등이 초래되므로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임명됐다. 그리고 트로이 목마가 됐다. 나는 그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다. 내가 보고 싶은 면모는 그로 인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국
이 가을에 삼성 이건희 회장이 떠났다. 글을 쓰기 전에 그의 장례식을 전후해 언론에 나온 칼럼들을 검색해봤다. 이회장과삼성이 우리나라, 아니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을 고려할 때 칼럼 수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이는 그를 조문하고 나온 정·재계 인사들의 짧은 인터뷰가 곧바로 엄청난 논란을 초래한 한국사회 여론 구조의 현실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망자의 영정 근처에서 추모의 변에 이어 공과와 영욕, 이 두마디에 기업인 이건희 회장의 삶은 편리하게 압축됐다.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는 조국 사태 때처럼 찬반이 당장 달려들듯 대치하는 여론의 기세 앞에서 언설을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이건희 회장의 삶과 죽음은 유명 인사들의 조사와 언론 매체들의 특집 보도로 한때의 유행처럼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 그와 삼성은 기업은 물론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한 훌륭한 텍스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난 2007년 삼성의 비자금과 로비 폭로 이후 과는 공을 삼켜버렸다. 삼성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던 정경유착, 무노조경영에 이어 불법승계라는 딱지가 가압류되듯이 들러붙었다. 흔히 얘기됐듯이 이건희 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에서 정반대 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와 삼성의 연이은 위기로 인해
이 세상은 결국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저 80년 전에도 고뇌하며 쓴 시처럼'서정시가 어울리지 않은 시대'로 그쳐버릴 것일까. 히틀러와 나치즘이 자행하는 광포에 대한 분노로대지와 생명의 아름다움 조차 예찬할 수 없었던 시인의 고통은 인권이 때로 과잉되기도 하는이 시대에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비접촉'이 미덕이 된 사회는 인류 공동의 난제인 양극화를 부추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지난 3월 31일의사와 간호사 등 방역 최일선 뿐만 아니라 청소부와 슈퍼직원 등을 호명하며 인류를 위해 특별기도를 했다. 연로한 청소부들은 외지고 퀴퀴한 공간에서 남의 콧물과 가래침이 묻은 휴지조각을 모으고, 묶고, 날라야 한다. 오늘 오전 다녀온 서민 분위기이발소의 주인과 면도사는 요금 12,000원에 20cm 남짓한 거리에서 무려 한시간 동안 손님으로서숙연해질 만큼의 정성으로 당신들의 의무에 열심이었다. 재택 근무는 화이트 컬러에게 색다른 경험일 수 있지만 블루 컬러에게는 엄혹하기만 하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고 재난의 가장 큰 희생자는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19시대의 심각성은장기간의 재난이 자영업자마저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몰고 있는 데 있
의사라는 직업은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직으로서고도의 지식과 수련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만큼 그 종사자들의 직업적 자부심이 높고 사회적 명성에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법률가도 마찬가지다. 의사와 판검사가 소위 잘 나가는 정도로 따지자면 전 세계 어느 사회도 한국을 따라 올 곳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농공상 위계의 조선에서 의원은 양반 아래 중인(中人) 신분에 머물렀다. 인술(仁術)을 행하고 있지만 돈을 댓가로 받는다는 이유였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의사들의 파업에 온 국민이 공분하는 현실을 보면서 봉건사회의 의사관(觀)을 다시 떠올릴 정도이다. 국민들이 지금 의료계에 요구하는 직업관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군자연하며 의원을 훈계라도 하듯이 고상한 차원이 아니다. 죽음의 공포가 벌써 반년째 일상이 된 현실에서 휴대전화를 끄고 잠적한의사들에 대한 분노는 국민, 아니 생명체의 당연한 기본권이다. 의사 집단 파업은 이제 코로나19 사태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눠져 업권 수호에서 업권 실추로 전락하고 있다. 이 세상의 어느 장삼이사에게도 밥그릇 지키기란 중요하다. 하물며 이 사회의 정점에 있는 의사들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고 감히 함부로 업권을 침해할 수
‘(미문화원 점거사건)항소심 변론요지서는 박원순 변호사가 초를 잡고 우리가 논평을 해서 보완을 한 것이지요. 말씀대로 박원순 변호사는 그때 30대 초반의 연부역강(나이는 젊고 힘은 센)한 변호사였는데 이 시기부터 우리와 함께 인권변호사 대열에 합류했어요.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사건 변론요지서가 박원순의 데뷔작이에요. 나중에 부천서성고문, 한국민중사, 보도지침, 구로 동맹파업 등 많은 사건에서 우리와 함께 한 청년변호사의 등장을 이 사건에서 보여줍니다.’ 한국의 인권변호사 1세대 홍성우 변호사가 70~80년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활동을 대담형식으로 구술해 2011년 펴낸 ‘인권변론 한시대’에 새겨진 고 박원순의 삶의 한 지문이다. 서울시장 박원순의 실종과 사망 소식이 마치 세상에 도저히 생겨날 수 없는 ‘블랙스완’(검은 백조)의 충격으로 내게 다가온 건 활자 속 정보가 아니라 그와 만난 몇 번의 기억 때문이었다. 1999년 NGO세계대회에서 ‘참여연대’의 자격으로 참석한 그를 처음 만난 인상은 오래 입어 닳을대로 닳은 양복 윗주머니의 기억으로 생생히 남아 있다. 몇 년 뒤 한 지방도시에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회한 그는 백팩을 매고 간사 몇
광복절을 앞두고 벌써부터 반일 감정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오히려 일본이 부추기기라도 하듯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일본 정부가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삭제한다는 방침을 밝힌 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기업은 두말할 나위 없이 롯데이다. 롯데로서는 요즘 코앞에 닥쳐온 7·8월에 또 어떤 여파가 미칠지 벌써부터 악몽이 되살아날것이다. 롯데의 창업 뿌리는 원래는 옷의 띠만큼 좁은 강처럼 가까운 사이라는 뜻의 ‘일의대수’(一衣帶水)의 한일 관계에 모범적 상징이다. 식민지청년 고 신격호 창업회장은 식민의 본국 일본에 도전해 껌 하나로 자수성가했으며 한일국교정상화 뒤조국에 돌아와 기업군을 일궈냈다. 온 국가가 중화학공업에 몰두해 변변한 기호식품은 물론 외국의 귀한 손님조차 재울 곳이 마땅찮던 나라에 그가 뿌린 서비스업과 소비재산업의 씨앗은 이제 주요 수출품목의 하나로 성장했다. 하지만 모국에서 오랫동안 롯데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던 ‘일본기업’이라는 주홍글씨는 지난해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물론 연고가 일본에 있는 기업이니 그 제품 불매에 의한 불가피한 피해는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하지만 롯데가 감수한피해를 양과 질
“국내 파이프오르간 음악계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처음으로 국제콩쿠르를 추진했는데 코로나19사태라는 또 다른 위기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전세계 17개국에서 68명이 참가 신청을 하고 한국이 3분의1에 이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성과를 얻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기악과 오자경 교수는 요즘 롯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오는9월 본선이 예정된 제1회 국제파이프오르간콩쿠르의 준비위원장으로서 행사 추진에 여념이 없다.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사태로 인해 행사 연기를 고려해야 할 만큼 어려움도 많다. 하지만 한예종의 바흐 주간 프로그램인 연주회의 제10회 ‘오자경의 바흐이야기’도 예정대로 진행하며 오랜 시름에 빠진 대중들을 잠시나마 위로한다는 마음이다. 자신을 오르간의 세계로 이끈 ‘진지한 음악가’ 바흐가 퍼즐을 자주 음악의 주제로 활용했듯이 인간과 음악의 세계에 숨겨진 끊임 없는 질문에 도전하는 파이프오르가니스트 오자경 교수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대중에게 파이프오르간은 관심은 많지만 다소 접하기 어려운 음악 분야이다. 연주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전쟁사를 들여다보면 남성의 폭력성과 광기에 비례해 여성에게 자행되는 온갖 패악의 실상들이 생생히 드러나는데 그 중의 최악은 강간이다. 벨라루스의 기자 출신 작가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전시 여성 성착취보고서나 다름 없다. 200여명의 2차대전 소련군 참전 여성들을 인터뷰한 이 책에는 독일로 진공한 남성 아군들이 적국의 민간인 여성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유린했는지를 고백하고있다. 독일 통일의 주역인 고 헬무트 콜 총리의 부인 하넬로레 콜도 그 피해자 중의 한명이었다. 그녀는 12살에 어머니와 함께 성폭행을 당한 뒤 ‘감자 자루처럼’ 1층 창문 밖으로 내던저져 등에 심각한 부상까지입었다. 일생을괴롭힌 트라우마의 기억은결국 68세나이에 그녀를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했다. 콜이 자국의 전쟁 책임에 대해 ‘시효 없는 수치’라고 규정한 역사적 도덕관에는 부인이 체험한 전쟁 참상에 대한 정서적 공감도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종군 위안부로 끌려간 이용수 할머니가 받은 피해를 콜 총리부인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경중을 따지기란 어렵지 않다. 할머니는 나라 밖으로 끌려가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인터넷전문은행법)의 운명이 29일밤 결정을 앞두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날 9시로 예정된 본회의 통과 여부에 따라 그동안 파란을 거듭해온 케이뱅크의 운명은 결정된다.KT와 그 계열사인 BC카드, 그리고 케이뱅크로 이어지는 혁신금융의 트라이앵글이 국회의 결정으로 막판 기사회생의 드라마를 연출할지, 아니면 한 판 실험과 같은 백일몽으로 전락할 지 한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ICT 전문기업인 KT가 당초 미답의 금융 부문에 뛰어든 배경은 문재인 대통령이 규제혁신 공약 제1호로 인터넷전문은행법을 지정하면서 비롯됐다.지난 2018년 8월 문 대통령은 관련 간담회에서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지만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며 은산분리 규제가 인터넷전문은행은 물론 나아가 금융혁신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입장을분명히 했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 지난해 1월 여야 협의 결과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발효됐다. 케이뱅크 설립에 순풍을 탄 것 같았던 KT는 지난해 3월 5900억여원의 증자를 통한케이뱅크의 최대주주안건을 이사회에서 의결하기에 이르렀다. '플랜A'라고 알
최근 포스코에 대한 매우 낯선 수사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포스코가 마치 검찰의 불가침 영역인 것처럼 유독 나서지 않던 경찰이 포항제철소의 3억원대 납품 계약에 대해 내사기간까지 합치면 11개월째 수사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부장급 기술직 간부가 참고인 조사를 받은 다음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외근기자 시절 늘 검찰을 출입한 경험에서 경찰의 포스코 수사나 피조사자 임직원이 유명을 달리한 일은 아직까지 별로 기억에 없다. 포스코가 최정우 회장 취임 이후 새로운 기업이념으로 알려온 ‘기업시민’의 관점에서 이번 일을 생각해봤다. 본건 수사든, 별건 수사든, 임직원의 비리가 드러난다면 포스코는 기업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위상이 흔들리게 된다. 물론 어느 조직이든 부패와 비리의 독버섯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조직이 기업시민을 정체성으로 지향하고 내부의 기강을 벼릴 모멘텀으로 삼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시민의 기본 요건은 바로 자율과 책임이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조직 바깥의 고객인 시장과 사회에서 기업시민을 지향하려면 내부고객인 임직원이 먼저 기업시민이 돼야 한다. 이 대전제가 유지돼야 포스코의 기업시민론은 ‘전통적 기업목적을 넘어 고
“유네스코 지정 10주년이 됐지만 혈연의 가치가 사회와 국가로 이어지는 양동마을의 전통적 모델을 잃어버릴 위기에 선 지금,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있습니다.”(이지락 여강 이씨 17대 종손) “유네스코가 양동마을을 지정한 이유는 ‘600년 전통 씨족마을 주거형태의 유지’라는 인문학적 가치 때문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세계유산으로서의 근거는 소멸됩니다.”(이수원 세계문화유산양동마을운영위원회 위원장)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10주년을 앞둔 경주 양동마을이 정부와 지자체 문화재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경관 훼손과 주민의 정주여건 악화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최근에는 세계유산으로 함께 지정된 안동 하회마을의 대표적 문제로 지적돼 왔던 상업시설마저 난립할 조짐이어서 여강 이씨와 경주손씨, 양대 가문을 중심으로 이어온 유교적 씨족마을의 정체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휴일인 지난 12일 오후 방문한 경주시 강동면 소재 양동민속마을은 예년 같으면 봄꽃을 보러나온 상춘객들이 한창 붐벼야 할 시기임에도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인적이 뚝 끊긴 모습이었다. 마을 입구의 인상은 슬레이트 지붕에다 포장을 친 구멍가게와 플라스틱 개량 기와를 올린 궁도장과 승마장까지 설치돼
신경림 시인의 '갈대'의 싯구처럼 온 세상이 몸을 숙인 채 속으로 조용히 흐느끼고 있는 것 같은 요즘이다. 불황이 일상이 돼버린 세상에서 중국발 역병은 서민들을기어코 나락까지 내몰아 버리려고 작정이라도 한듯이 꺾일 기미가 없다. 남녘땅 영일만 한켠에 자리 잡은 고향에서 들려오는 소식들도 봄바람의 따뜻한 기운과는 거리가 먼 팍팍한 일들 뿐이다. 2년 4개월 전 이 도시의 사람들은 인간의 탐욕이과학기술을 끌어들여 잉태해낸 돌연변이형재난에 끔찍한 피해를 당했다. 영일만 일대 내륙의 연약한 지질 특성을 무시하고 강행된 지열발전소 건설과 시험운전이 초래한 규모 5.4, 진도 6~7의 유발지진은 한 도시를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넣은 재앙의 시작이었다. 지진이 자연지진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가공된 사회적 재난이라는실체가 과학자들에 의해 드러났지만 한번 돌아선 투자기업과 관광객의 발걸음은 불안의 눈길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재난의 도시라는 억울한 오명은 경제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피해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불과 1시간 거리의 대구에서 코로나19까지 옮겨오기에 이르렀으니 이 도시는 이중의 재난에 시달리고 있다. 포항지진과 코로나19사태는 모두 재
‘감사’(監査)의 이미지는 딱딱하다. 조직 내에서도 구성원들은 감사 부서의 근처를 꺼린다. 하지만 유튜브에 들어가 한국환경공단의 청렴운동 동영상을 보면 ‘이런 감사도 좋겠구나’라는 공감을 경험할 것이다. ‘사람’과 ‘소통’의 가치를 소신처럼 강조함으로써 공공기관 감사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되고 있는 유성찬 상임감사를 만나 감사 철학과 한국환경공단의 청렴 비전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유튜브에서 ‘청렴’을 반복해 외치며 율동하는 상임감사의 모습이 참 파격적이다. 권위의식과 형식을 멀리하는 메시지로 보이는데 감사업무에 대해 어떤 소신을 갖고 있는지. 원래 천성적으로 권위와 격식을 불편해하는 편이다. 공공기관 상임감사의 청렴 홍보 동영상 출연은 처음이라고 들었다. 보시다시피 외모로 보나 율동은 안 어울리지만 제작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감사에 대해 새롭게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감사든 뭐든 모든 일은 참여자의 공감이 우선이다. 상임감사가 스타일이 좀 구겨져도 부패와 갑질을 배격하기 위해 애 쓰고 있다는 진정성은 공단의 임직원에 대한 백번의 청렴 교육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인터뷰에 앞서 주변 취재를 해보니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한 이력을 실감케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