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윤청신 기자]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이 갈수록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가운데 배경이 되는 동학혁명 및 인물관계도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극본 정현민, 연출 신경수 김승호)은 동학농민혁명을 그리는 드라마다. 그러나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 분)의 일대기가 아니다. 전봉준을 비롯해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125년 전 민초들이 왜 떨치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는지, 민초들이 목숨까지 내던지며 그토록 바랐던 새 세상과 희망이 무엇인지를 그린다.

이런 의미에서 '녹두꽃' 속 백이강(조정석 분)과 전봉준의 관계는 매우 흥미롭다고 할 수 있다. 허구 인물 백이강과 실존 인물 전봉준의 접점을 통해 강력한 스토리 몰입도를 유발하고, 당시 민초들의 상황과 울분을 더 임팩트 있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또 극 중 전봉준을 만나 백이강의 인생이 바뀐 것처럼, 동학농민혁명으로 수많은 민초들의 삶과 정신이 바뀌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백이강과 전봉준이 함께 하는 장면은 매번 큰 울림을 선사했다. 처음 고부에 민란이 일어났을 때 '거시기'로 불리며 악인으로 살던 백이강은 민초들에게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 순간 전봉준은 백이강의 오른손에 칼을 꽂으며 "거시기는 죽었다"고 외쳤다.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았던 백이강은 스스로 '거시기'를 버리고 동학농민군 의병대가 됐다.

백이강과 전봉준이 함께 해 시청자를 울컥하게 한 장면은 또 있다. 전봉준이 백이강에게 폐정개혁안을 설명하던 순간이다. 민초가 숨 쉴 수 있는,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지만 셀 수 없는 생명이 희생당했다. 별동대 대장이 되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백이강에게 전봉준은 새 희망을 전했다. 동학농민혁명의 의의와 이들의 책임감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한편 동학(東學)이란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민족 종교로 기일원론(氣一元論)과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특징으로 한다. 2대 교주인 최시형이 교단과 교리를 체계화하였다. 1894년 농민전쟁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1905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했다.

동학의 창시는 지배층의 착취로 농촌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던 19세기 후반의 사회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조선은 심각한 사회적 혼란과 위기에 놓여 있었다.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농민층의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오랜 기간 외척(外戚)의 세도정치가 지속되면서 정치 기강이 문란해져 지방관과 토호의 횡포와 착취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농민들의 삶은 매우 피폐해졌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키면서 사회 불안은 더욱 확산되었고, 서양 열강의 중국 침략 등으로 외세에 대한 위기감과 서학(西學)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었다. 또한 <정감록(鄭鑑錄)>과 같은 예언서가 널리 유포되며 미륵신앙, 도참사상 등 다양한 형태의 반봉건적 민중사상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제우는 유(儒)·불(佛)·선(仙)과 같은 기존의 사상들로는 현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계책”(포덕문)을 내기 위해서도 천명(天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고 여겨 당시의 여러 사상들을 정리·융합하여 동학을 창시하였다. 그는 유(儒)·불(佛)·선(仙)이 비록 뜻을 달리하고 있으나 그 근원은 모두 하늘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학은 이 세 가지 도(道)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점을 버린 것이라고 밝혔다.

동학은 인본주의(人本主義)를 기반으로 인간 평등과 사회 개혁을 주장하여 사회의 변화를 갈망했던 민중의 호응을 얻었다. 동학은 사람은 본래 하늘의 성품을 가졌으므로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하늘처럼 존귀하므로 사람 대하기를 하늘을 섬기는 것처럼 경건하고 겸손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동학은 민중들에게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제시해 주며, 성리학의 지배이념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항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동학은 지배체제를 옹호하고 있던 성리학과는 달리 당시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부정하는 혁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동학은 1894년 전봉준(全琫準) 등이 주도한 대규모 농민봉기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동학과 이 사건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동학이 주체가 되어 농민봉기가 일어났다는 견해에서는 이 사건을 '동학혁명', '동학운동' 등으로 나타낸다.

반대로 동학은 종교적 외피에 지나지 않았으며 봉건사회와 외세의 수탈에 맞선 농민의 항쟁이 주된 측면이었다는 견해에서는 '동학'이라는 표현을 넣지 않고 '1894년 농민전쟁', '갑오농민전쟁' 등으로 나타낸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재가녀(再嫁女)의 자식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회적 차별을 받아야 했다. 그는 오랜 수도(修道) 끝에 1860년 5월 7일(철종 11년 4월 5일) 깨달음을 얻어 동학을 창시했고, 포교(布敎)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경주·영덕·대구·청도·울산 등 14곳에 접소(接所)와 접주(接主)를 두고, 전체 교인의 수가 3,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동학의 교세는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최제우는 1864년 1월 18일 '삿된 도로 세상을 어지럽힌 죄(左道亂正之律)'로 경주에서 체포되어, 4월 15일에 대구에서 처형됐다.

한편 총 48부작으로 제작된 '녹두꽃'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민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싸워야 했던 이복형제의 파란만장한 휴먼스토리다.

특히 '녹두꽃'에서는 전봉준이 민초들을 이끌고 민란을 일으키며 벌어지는 일들, 이 역사적 소용돌이에 휩싸이며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는 주인공 백이강(조정석 분)의 이야기가 휘몰아치듯 역동적으로 펼쳐질 전망이다.

제작진이 공개한 등장인물 관계도를 보면 백가네, 황진사네, 고부관아, 전라감영, 전주여각, 동학(지도부, 별동대) 등으로 구성된다. 사실상 극의 중심에 있는 백가네가 있다. 중심인물은 백이강(조정석 분)과 백이현(윤시윤 분)이다.

백이강은 동학군 별동대장으로 전봉준과는 협력관계이다. 백이현은 조선시대 불어닥친 개화를 몸으로 실천하는 개화주의자로 백이강과는 형제 관계이지만 서열이 다르다. 백이강은 백가(박혁권) 본처 여종 유월이(서영희)의 자식이라 얼자(천인 첩의 자식, 양인 첩의 자식은 '서자')인 반면, 백이현은 백가의 본처(정실) 채씨의 자식이다. 이 두 사람은 우애를 공유하면서도 대립하는 묘한 관계에 놓인다.

로맨스 구도를 보면 백이강은 송자인(한애리 분), 백이현은 자신의 스승이자 황진사로 불리는 황석주(최원 분영)의 동생 황명심(박규영 분)과 관계를 맺고 있다.

'녹두꽃'에는 주, 조연 구분 없이 믿고 보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조정석(백이강 역), 윤시윤(백이현 역) 이외에도 최무성(전봉준 역)은 어떤 시련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다. 박혁권(백가 역), 김상호(최덕기 역), 최원영(황석주 역), 황영희(채씨 역), 서영희(유월이 역), 민성욱(최경선 역), 안길강(해승 역), 박규영(황명심 역), 노행하(버들이 역), 병헌(번개 역), 조희봉(홍가 역), 장광(조병갑 역), 전무송(최시형 역), 박지환(김가 역) 등 세대 불문 명품 배우들의 연기열전이 ‘녹두꽃’을 꽉 채워줄 전망이다.

한편 동학(東學)이란 1860년 최제우가 창시한 민족 종교로 기일원론(氣一元論)과 후천개벽(後天開闢) 사상,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특징으로 한다. 2대 교주인 최시형이 교단과 교리를 체계화하였다. 1894년 농민전쟁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1905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했다.

동학의 창시는 지배층의 착취로 농촌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던 19세기 후반의 사회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조선은 심각한 사회적 혼란과 위기에 놓여 있었다.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농민층의 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오랜 기간 외척(外戚)의 세도정치가 지속되면서 정치 기강이 문란해져 지방관과 토호의 횡포와 착취는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자연재해와 전염병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 농민들의 삶은 매우 피폐해졌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각지에서 봉기를 일으키면서 사회 불안은 더욱 확산되었고, 서양 열강의 중국 침략 등으로 외세에 대한 위기감과 서학(西學)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었다. 또한 <정감록(鄭鑑錄)>과 같은 예언서가 널리 유포되며 미륵신앙, 도참사상 등 다양한 형태의 반봉건적 민중사상이 확산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제우는 유(儒)·불(佛)·선(仙)과 같은 기존의 사상들로는 현실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고 보았다. 때문에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계책”(포덕문)을 내기 위해서도 천명(天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이 필요하다고 여겨 당시의 여러 사상들을 정리·융합하여 동학을 창시하였다. 그는 유(儒)·불(佛)·선(仙)이 비록 뜻을 달리하고 있으나 그 근원은 모두 하늘에서 비롯된 것으로, 동학은 이 세 가지 도(道)에서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점을 버린 것이라고 밝혔다.

동학은 인본주의(人本主義)를 기반으로 인간 평등과 사회 개혁을 주장하여 사회의 변화를 갈망했던 민중의 호응을 얻었다. 동학은 사람은 본래 하늘의 성품을 가졌으므로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하늘처럼 존귀하므로 사람 대하기를 하늘을 섬기는 것처럼 경건하고 겸손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동학은 민중들에게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제시해 주며, 성리학의 지배이념에 대항하는 민중의 저항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동학은 지배체제를 옹호하고 있던 성리학과는 달리 당시 사회의 구조와 질서를 부정하는 혁명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동학은 1894년 전봉준(全琫準) 등이 주도한 대규모 농민봉기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동학과 이 사건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동학이 주체가 되어 농민봉기가 일어났다는 견해에서는 이 사건을 '동학혁명', '동학운동' 등으로 나타낸다.

반대로 동학은 종교적 외피에 지나지 않았으며 봉건사회와 외세의 수탈에 맞선 농민의 항쟁이 주된 측면이었다는 견해에서는 '동학'이라는 표현을 넣지 않고 '1894년 농민전쟁', '갑오농민전쟁' 등으로 나타낸다.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재가녀(再嫁女)의 자식이라는 신분 때문에 사회적 차별을 받아야 했다. 그는 오랜 수도(修道) 끝에 1860년 5월 7일(철종 11년 4월 5일) 깨달음을 얻어 동학을 창시했고, 포교(布敎)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경주·영덕·대구·청도·울산 등 14곳에 접소(接所)와 접주(接主)를 두고, 전체 교인의 수가 3,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동학의 교세는 매우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최제우는 1864년 1월 18일 '삿된 도로 세상을 어지럽힌 죄(左道亂正之律)'로 경주에서 체포되어, 4월 15일에 대구에서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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