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SKB에 "대가 지급 의무 없다" 소송
SKB "과도한 트래픽에 전용회선 증설 부담" 반론
정부‧국회 "기울어진 운동장…해외CP에 의무 지워야"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3차 변론이 진행됐다. <사진=banderasnews>
▲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3차 변론이 진행됐다. <사진=banderasnews>

 

[폴리뉴스 김유경 기자] 글로벌 콘텐츠 제공업체(CP‧Contents Provider)가 국내 망 사업자(ISP‧Internet Service Provider)에 망 이용대가를 내야 하는가를 두고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넷플리스의 국내 이용자 수가 늘면서 과도한 트래픽을 발생시키자 SK브로드밴드(이하 SKB)는 넷플릭스에 망 품질 유지를 위한 망이용료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넷플릭스는 대가를 지급할 의무가 없음을 확인받고자 소송을 냈다. 다음달 나올 판결을 주시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는 해외 CP에 책임을 부과할 규제 입법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6일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3차 변론이 있었다. 양사는 ‘접속(access)’과 ‘전송(delivery)’ 개념에 대한 의견 불일치로 팽팽히 맞섰다. 넷플릭스 측은 자사 콘텐츠를 ISP에 전송 가능한 상태로 올려두는 것을 ‘접속’이라 하며 여기까지 비용을 내고, 그 콘텐츠를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것은 ‘전송’으로 ISP 소관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에 SKB 측은 접속과 전송은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라며 “망 이용대가는 인터넷 접속 고정비용인 접속료와 시간·사용 대역폭에 따른 변동비용인 전송료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포함한다”고 반박했다.

넷플릭스, 자체 '오픈커넥트'로 과부하 방지 노력

넷플릭스는 2012년부터 자체 전송 네트워크(CDN)인 오픈커넥트(OCA)를 구축해 세계 주요 거점망까지 연결해놓고, 이용자들이 자주 찾는 콘텐츠 데이터를 저장해두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연결된 지점은 일본과 홍콩이다. 이를 통해 트래픽 양을 줄이고 적은 대역폭으로도 장시간 스트리밍을 제공할 수 있다. 즉 ISP에 망 이용료 지급의 형태가 아니어도 이미 자체 기술적 투자를 통해 트래픽 과부하 방지 노력을 해오고 있다는 얘기다. 

SKB 측은 그렇다 하더라도 SKB 소유의 인터넷망을 겨쳐 최종 이용자에게 전달하는 만큼 망 자원 이용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SKB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넷플릭스 데이터 전송으로 트래픽이 30배가량 늘어나 이를 처리하기 위해 도쿄에서 500Gbps, 홍콩에서 400Gbps 전용회선을 갖췄는데, 지금과 같은 증가 속도라면 더 증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B 측은 또 넷플릭스가 다른 나라에서 이용대가를 지불한 사례가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2014년 넷플릭스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제출한 확인서에 넷플릭스가 이미 컴캐스트, AT&T, 버라이즌, TWC 등에 착신망 이용대가를 지불한 사실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SKB는 지난 2018년 10월부터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 지급을 요청했으나 넷플릭스가 거절하자,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 신청을 했다. 사업자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방통위가 의견 청취와 심의를 거쳐 판단을 내놓는데, 이는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민사소송 등에서 참고가 될 수 있다. 그러던 중 지난해 4월, 넷플릭스가 서울중앙지법에 SKB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재정 절차는 중단됐다. 재판부는 세 차례 변론 끝에 오는 6월 25일 판결을 내릴 계획이다.

정부‧국회 “해외 CP에 대한 규제 필요”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CP들에 대해 망 이용에 따른 책임을 묻는 문제는 줄곧 제기돼왔다. 2016년 페이스북이 이용자들에게 사전 고지 없이 SKB와 LGU+의 접속 경로를 미국‧홍콩 등으로 임의 변경해 서비스 속도가 느려졌다. 방통위가 페이스북에 시정명령을 내리자 페이스북은 “통신사들의 과도한 망사용료 요구 때문"이라며 취소 처분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용자들에게 현저한 피해를 주진 않았다”라며 1‧2심에서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또 “인터넷 접속 서비스 품질은 기본적으로 ISP가 관리·통제할 영역이지 CP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며 “페이스북과 같은 CP에 법적 규제를 넓히면 CP의 정보제공 기능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해외 CP들이 국내 진출을 확대하며 국내 인프라를 기반으로 거둬들이는 수익이 대폭 증가하는 반면 그에 따른 의무는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넷플릭스의 경우 감사보고서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매출이 4154억 5000만원, 영업이익은 88억 2000만원에 달했다. 국내 유료 구독자는 380만명으로 매출의 96%가 동영상 콘텐츠 구독료에서 나왔다. 이 같은 실적도 2016년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공개한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해외 CP들에 대해 의무를 지우도록 규제 드라이브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CP에 통신 품질 유지 의무를 부과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일명 ‘넷플릭스법’이 시행되기도 했다. 이 법은 국내 ISP가 해외 CP와 협상할 때 망 이용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장치가 될 것으로도 예상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측은 "우리나라 CP와 달리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를 안 내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볼 수 있지만, 사적 계약이다 보니 전세계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소송 중인 망 이용대가 외 역차별 요소가 있는 조세, 개인정보, 불법정보 유통 등에 대해 전반적인 규제가 조금씩 도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 과방위 소속 한 의원실에서는 “넷플릭스와 SKB 분쟁은 예전부터 주목되는 사안이고 여파가 클 것인 만큼 재판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망 중립성 관련 법안이 여럿 발의돼있는 상태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이번 판결로 결국 해외 CP의 주장에 법적 정당성만 더할 수 있다”면서 “우리 업체들을 보호하는 입법이 추진되긴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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