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X-파일 <사진=연합뉴스>
▲ 윤석열 X-파일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에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흔히 ‘생태탕 선거’라고 불리워진다. 실제로 당시 선거전의 이슈가 무엇이었던가를 떠올려보니 ‘생태탕’ 얘기 말고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10여년 전 서울 내곡동 땅을 ‘셀프보상’ 받았다는 의혹을 띄우기 위해 총공세를 벌였다. 여기에는 TBS에서 방송 진행을 하고 있는 김어준이 민주당과 손잡고 외각 지원세력의 역할을 다하며 ‘생태탕 방송’을 연일 내보내기도 했다.

희안한 광경이었다. 민주당은 여당이다. 대거 여당은 선거에서 비전과 큰 정책을 말하면서 자신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는다. 네거티브전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은 대개는 야당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 정반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구 1000만명, 한 해 40조원이 넘는 예산을 쓰는 수도 서울의 수장을 뽑는 선거를 민주당은 ‘생태탕’으로 완전히 덮어버렸다.

하지만 그랬던 민주당은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서울시민들은 네거티브에 올인한 민주당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오세훈에게 압승을 안겨주었다. 오세훈이 생태탕 집에 갔는지 아닌지는 우리가 지금도 100퍼센트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시민들은 그 선거에서 무엇이 본질인가 정도는 이미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장 재직 때도 아닌 10여 년 전에 생태탕 집에 갔느냐 아니냐가 서울시장을 선출하는데 있어서 별 고려 사항이 아님을 시민들은 현명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네거티브로는 선거판을 바꿔놓을 수 없음을, 아니 민심을 바꿔놓을 수 없음을 4.7 선거는 알려주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 않던가. 불과 몇 달도 되지 않아 네거티브 선거의 악취가 스멀스멀 나기 시작한다. 대선정국의 본격적인 개막을 앞두고 등장한 ‘윤석열 X 파일’을 둘러싼 논란은 ‘생태탕 선거’에 이은 ‘X파일 선거’를 유권자들이 지켜보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장성철발 ‘윤석열 X파일’의 실체가 무엇인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장성철 소장은 ‘정부기관’ 얘기도 했다가 ‘여권’ 얘기도 했다가 ‘파쇄’ 얘기도 했다가 종잡기 어려운 지경이다. 윤석열과 야당 쪽에서는 불법사찰과 정치공작의 의혹을 제기하고, 여당 쪽에서는 야당에서 만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워낙 다양한 ‘윤석열 X파일’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니, 출처를 확인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다만 민주당이 윤석열을 상대로 네거티브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미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건에 대한 파일들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고 나섰다. 논란이 따르자 송 대표는 "검증 자료를 쌓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이라며 해명했지만, 윤석열의 가족들에 관한 ‘검증’의 의지는 굽히지 않았다. 이미 민주당 의원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들으면 ‘윤석열 파일’을 꺼내 대대적인 공세를 벌이려는 의지를 알 수 있다. 대선 주자들에 대한 다각도의 검증이 필요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고, 윤석열의 경우도 당연히 마찬가지이다. 다만 두 개의 정권이 그토록 ‘윤석열 죽이기’에 나섰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 어떻게 대선에 출마한다고 하니 윤석열에 대한 공수처 수사, 윤석열 장모에 대한 검찰 수사 재개,  X 파일의 등장 같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가에 대한 상식적인 의문은 피할 수가 없다. 선거민주주의 교과서에서 말하는 검증이 아닌, 어둠 속 기술자들에 의한 네거티브 기획으로 가지는 않을까에 대한 우려가 생겨나는 것이 사실이다.

‘윤석열 X파일’을 둘러싼 논란이 한동안 계속되었음에도 여론조사들에서 나타난 윤석열의 지지율은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박근혜-문재인 두 정권 아래에서 미움을 받아 탈탈 털렸던 사람인데, 문제될 것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그러니 새롭고 결정적인 한방이 없는 한, 민주당이 네거티브로 판세를 바꾸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무모해 보인다. 오히려 ‘생태탕’으로 모자라 대통령 선거까지 ‘X파일’로 선거를 치르려 한다는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자초할 위험이 있다. 민주당이 윤석열을 이기려는 생각이 있다면, 승부를 걸어야 할 지점은 대선주자로서 윤석열의 준비 부족 여부나 자질에 관한 것이 되는게 현실적이다. 결국 국가를 책임질 비전과 정책에 대한 경쟁을 통해 윤석열을 이길 생각을 하는 게 민주당으로서는 최선일 것이다.

그것이 X파일이든, 괴문서이든,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으로서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거기에 담긴 내용에 불법적으로 취득되고 작성된 것은 없는가를 가려내는 일이다. 사실이 아닌 흑색선전을 하는 행위, 국가기관이나 정당 혹은 지지자들이 그러한 문서를 작성하는데 개입하는 일, 모두가 법에 의해 처벌되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들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막상 새로울 것도 없이 식상한 내용의 네거티브로 선거를 이기려는 일각의 모습들은, 우리의 정치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고 있는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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