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채널·WM… 빅테크와 '차별화' 선언
탄소중립 강조하며 ESG 내재화 주문도
[폴리뉴스 고현솔 기자] 금융업계 CEO들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음에도 신년사에서 유독 ‘위기’를 강조했다. 빅테크 기업이 눈부신 속도로 성장하며 기존 금융회사들을 위협하는 등 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금융그룹들은 빅테크 기업의 금융 잠식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내며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고,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역시 “시장은 우리를 덩치만 큰 공룡으로 보고 있고, 공룡은 멸종했다”고 지적했다.
올해 예정된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카카오뱅크), 보험업(카카오페이) 진출 등 ‘노란 상어’로 인식되는 카카오의 영역 확장은 위기감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 업계는 카카오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들이 가져온 금융환경 변화를 염두에 두고 미래 금융사업의 발판을 준비 중이다.
◇ ‘플랫폼’ 강조하며 빅테크 대응 의지 드러내
빅테크 기업으로 인해 느끼는 위기감이 점점 커지자 기존 금융그룹들은 올해 금융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앞으로는 ‘리딩뱅크’를 넘어 ‘리딩플랫폼’ 자리를 둔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금융플랫폼 기업으로서 KB가 얼마나 준비된 조직인지 증명해 나가자”며 작년에 이어 올해도 ‘No.1 금융플랫폼 기업’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인호변(大人虎變)의 자세로 끊임없이 혁신하자”고 말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회장은 “‘신한웨이 2.0’을 바탕으로 신한만의 고객 경험을 만들어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에서 앞서나가자”고 독려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디지털은 금융에서도 수단을 넘어 그 자체로 본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MZ세대 특화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해 전 세대에 걸친 고객들이 일상에서 우리의 플랫폼을 가장 먼저 떠올리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새해 첫 일정으로 메타버스 플랫폼 ‘게더타운’을 방문해 우리금융의 올해 경영 목표인 ‘디지털 기반 종합금융그룹 체계’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몸소 보여줬다.
카드업계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종합플랫폼’ 기업으로 시장을 선도할 것을 피력했다.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은 “돌파 성장을 통한 일류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겠다”며 신기술을 도입해 미래 금융시장을 개척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좌진 롯데카드 사장은 “새로운 미래지향적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디지로카(Digi LOCA)로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 차별화 천명
주요 은행들은 플랫폼 기업으로의 도약과 함께 빅테크와의 차별화를 천명하며 ‘옴니채널’을 강조했다. 자산관리(WM)나 기업금융 같은 금융의 ‘기본’을 강화해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도 내놨다. 디지털 전환의 고삐를 놓지 않으면서도 빅테크 기업보다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재근 국민은행장은 “KB의 플랫폼이 고객의 일상을 아우를 수 있도록 ‘디지털 유니버셜 뱅크’의 완성도를 높여나가겠다”며 ”전국의 모든 영업점이 모바일 플랫폼 및 콜센터 등과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옴니채널'의 완성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성장의 핵심 근간인 영업점의 세일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영업 체계를 더욱 고도화하고 자산관리, 자본시장 등 핵심 성장 분야에서 성과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도 “오프라인 영업점은 테크기업과 명확히 차별화되는 우리 고유의 플랫폼"이라며 "고객 중심으로 온-오프라인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옴니채널 플랫폼이 신한이 지향하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종합금융그룹으로서 우리만이 가진 강점을 한단계 업그레이드해 경쟁자들과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빅테크가 가지지 못한 강력한 오프라인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를 손님 중심의 옴니채널로 탈바꿈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람이 꼭 필요한 영역에서 차별화된 상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광석 우리은행장 역시 ”우리의 강력한 무기인 대면 채널이 더욱 고도화되고, 나아가 비대면과 옴니채널 등 고객님과 접점이 이루어지는 모든 채널에서 고객님들이 편리하게 우리은행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만 온라인 위주의 빅테크 플랫폼과는 차별화된 온라인과 오프라인, 그리고 시장을 아우르는 강력한 금융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업권별 경계 흐릿해지며 비금융 진출 활성화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빅 블러(Big Blur)’ 현상이 심해지는 가운데 업계가 주목하는 또다른 분야는 비금융업권 진출이다. 빅테크·플랫폼 기업이 금융의 영역을 먼저 침범했으니, 반대로 은행권이 빅테크 기업들의 주요사업에 진출해 ‘생활금융 생태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금융업권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다양한 사업모델 허용과 업무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며 “고객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잘해왔던 사업모델과 사업운영방식도 과감히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한은행의 음식배달 서비스 앱 ‘땡겨요’, 우리은행의 편의점상품 주문·배달 서비스 ‘My편의점’, NH농협은행의 ‘올원뱅크’ 내 꽃 배달 서비스 등 사업다각화를 통해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금융지주사들도 비은행 사업부문을 강화할 예정이다.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은 “글로벌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비금융사업의 성과도 가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도 “증권 부문 등 기업가치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만한 무게감 있는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대를 한층 속도감 있게 추진할 것”이라며 “동시에 기존 비은행 자회사의 괄목할 성장을 이끌겠다”고 했다.
보험사들도 업계 내 변동성이 확대되는 만큼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차세대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뜻을 보였다. 올해부터 보험사의 헬스케어 사업 진출이 가능해지는 만큼, 신사업 역량을 강화해 성장을 꾀한다는 것이다.
조용일·이성재 현대해상 대표는 “코로나19로 촉발된 언택트 환경과 4차 산업혁명을 대변하는 디지털 핵심 기술의 진화, 새로운 소비세대인 MZ세대의 등장으로 2022년은 주목해야 할 특별한 시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변화의 큰 진폭을 기회로 삼아 현대해상의 역사에 새 전기를 마련하는 새로운 도약의 시대를 만들어 나가자”고 전했다.
◇ 한 목소리로 ESG 중요성 강조 "사회적 책임 다하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통해 금융사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도 많았다. 기후변화가 주요 과제로 떠오르며 전세계적으로 ESG 경영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만큼, 금융업계도 이에 동참한다는 것이다.
윤종규 회장은 “세상을 바꾸는 금융이라는 미션을 실행하기 위해 대인호변(大人虎變)의 자세로 끊임없이 혁신하자”며 중소·중견 기업의 ESG 경영 컨설팅 확대, 탄소배출 감축 우수기업 지원 등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노력을 당부했다.
조용병 회장은 "산업의 성장과 함께 다음 세대에 더 건강한 삶을 남길 수 있도록 금융의 본업으로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ESG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손태승 회장은 “기후변화 대응은 국가 차원의 중대 과제이자 전세계가 함께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의무로서 금융사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며 “올해 탄소감축 등 환경관리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ESG경영의 전(全)부문을 더욱 고도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손병환 회장도 “‘농협이 곧 ESG’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국민과 지역사회, 환경에 기여하는 농협의 존재가치를 확산시키자”며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금융상품 개발 등 ESG 경영 내재화를 위해 노력해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