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로 예고된 두 번째 방송까지 보고 글을 쓰려고 했다. 첫 방송 후에 할 말이 많았지만, 혹시 숨겨둔 비장의 무기가 있다면 성급한 평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송에 이어 방송 취소 보도는 다시 한번 실망을 안겨 주었다. 전자는 방송 내용에, 후자는 결정 자체에 대한 실망이다. 짐작하는 대로 MBC 문화방송의 ‘스트레이트’ 프로그램 얘기다.

MBC를 희화화하는 온라인상의 온갖 글들을 언급하고 싶은 유혹도 있지만, 꾹 참겠다. 대신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 질문 한 가지만 인용하고 싶다. 두 번째 방송을 취소한 건 ‘MBC 자체 결정이겠지’라고 묻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가처분 신청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중의 우스갯소리를 알고 있을 것이다. 농담 속에 뼈가 있다고 했던가. 방송국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고 여권의 압력 때문에 방송을 취소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첫 방송은 대 히트작이었다. 평소 1~3%대 시청률을 올리는 프로그램이 17.2%를 기록했지 않은가. 민주당이 거당적으로 ‘본방사수’를 독려한 공이 크겠지만 정파를 막론하고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데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부도 그 못지않은 시청률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나부터 본방사수를 결심하고 있었던 터이다. 요즘 같은 가뭄에 15퍼센트 이상 시청률이 보장된 프로그램 취소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방송국 자체 결정이 맞는지 의구심을 갖는 건 합리적이다. 윤석열 후보에게 타격을 주려던 방송이 오히려 이재명 후보의 과거 욕설 발언을 소환하는 등 역풍을 불러왔으니 말이다.

MBC 측은 “김건희씨 녹취록 관련 내용을 방송한 뒤 사회적 파장이 컸던 만큼 후속 취재를 진행해 왔다”며 “그러나 취재 소요 시간, 방송 분량 등 여러 조건을 검토한 결과 23일 160회에서는 관련 내용을 방송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MBC에 대한 다음 질문이 그래서 나온다. 1차 방송은 충분한 후속 취재와 검토가 있었던 것인지. 다 아는 대로 김건희 씨 관련 녹취록은 MBC 취재 결과물이 아니다. 서울의 소리 기자(?) 이명수 씨가 김씨와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내용을 전달한 것이다.

방송국 등 언론사가 제보를 받는 일은 일상다반사이다. 취재와 보도의 중요한 단서가 제보에서 나온다. 모든 언론사가 제보를 권장하고 의미 있는 제보에는 일정한 사례를 한다.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문제없다. 하지만 제보를 받은 언론사가 자체적인 후속 취재와 검토 작업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자료 입수 과정이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지도 당연히 살펴야 한다. 우리나라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공개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대화 일방이 상대의 동의 없이 행하는 녹음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불법이 아닌 모든 것이 윤리적으로도 허용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언론사가 ‘취재윤리’를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스스로 도덕적 우위에 있지 않고서 권력과 금력에 대한 ‘감시견’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서울의 소리 측은 일부러 김 씨 측에 유리한 보도로 ‘떡밥’을 깔고 접근한 후 유도된 사적 대화를 녹음한 사실을 자인하고 있지 않은가. 그걸 취재라고 할 수도 없거니와 MBC의 편집과정이 후속 취재 및 검토와 동의어가 될 수도 없다. 녹음과정의 비윤리성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심지어 이런 행위가 형사불법은 아니지만 ‘민사불법’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는 조국 교수 같은 이도 있다.

유튜브에서나 방송할만한 내용을 공중파, 그것도 공영방송을 자임하는 MBC에서 당당하게 방송되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이 정도 사안이면 방송국 실무진에서만 검토했을 리는 없다. 예상되는 파장을 감안할 때 최고경영진까지 결정 과정에 참여했을 것이다. 게이트 키핑이 안되었어도 문제고, 정파적 혹은 시청률에 대한 고려가 게이트 키핑을 무력화시켰다면 문제가 더 크다. 서울의 소리 백은종 대표는 법원에서 “추구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선 편향적 보도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MBC에 녹음 파일을 전달한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발언이다. 극단적이고 편향적 보도를 하는 유튜브 방송인이 공영방송인 MBC를 우롱한 셈이다.

방송법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법적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등의 조항이 그것이다. 방송의 ‘공적 책임’ 역시 법적 의무에 해당한다.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여야 한다”, “방송은 국민의 화합과 조화로운 국가의 발전 및 민주적 여론형성에 이바지하여야 하며 지역간ㆍ세대간ㆍ계층간ㆍ성별간의 갈등을 조장하여서는 아니된다”, “방송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등의 의무가 방송법에 규정되어 있다.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되며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규정은 방송의 공정성ㆍ공익성ㆍ객관성과 방송의 공적 책무를 지키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방송은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는 반대급부로 요구되는 의무만은 아니다. 전파는 공적 재산(public domain)이기 때문에 요구되는 방송의 본질적 의무에 해당한다. 방송은 언론인들이나 방송국 혹은 집권 세력 등 특정 정파의 것이 아닌 국민 모두의 소유라는 인식은 방송 종사자에게 요구되는 핵심 덕목이다. ‘편향적 보도’라는 말은 방송, 그것도 공영방송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임을 알 수 있다.

MBC 보도가 어느 쪽에 유리한지 솔직히 개인적 관심은 없다. 방송 등에서의 논평을 위해 필요하지 않았다면 굳이 본방사수로 시청률 올리는데 일조할 이유도 없었다. 김건희 씨 파일을 틀었으니 이재명 후보 녹취록도 방송해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싶지 않다. 양자는 차원이 다르다는 논리도 있을 수 있고, 검증이라면 후보 부인보다 본인 검증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도 일리가 있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없이 MBC가 스스로 결정했다면 믿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 방송의 공익성, 공정성, 객관성을 지키는 한에서 말이다. 이번 논란이 방송 본질적인 측면에서 공중파 방송이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성찰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MBC가 주장하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잘 이행하고 있는지도 당연히 성찰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이런 주문이 비단 MBC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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