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씨의 딴지일보 방송 다이뵈이다
▲ 김어준씨의 딴지일보 방송 다이뵈이다

방송인 김어준씨가 여론조사기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일 딴지일보 홈페이지와 SNS에 '여론조사기관 설립합니다. 회원 모집 중'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일체의 외부 의존 없이, 완전한 독립 조사"를 하겠다는 것으로, 멤버십 조사기관으로 정기회원을 모집한다는 것이다. 회비는 1년에 10만원, 3년에 27만원이며, 50만원 이상 자발적으로 내는 장미회원도 있다고 했다.

김씨가 여론조사기관을 만들겠다고 한 이유는 지난 대선에서 경험한 상황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여론조사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고아처럼 떠돌았다. 여론 조사는 너무나 많은데, 같은 날 조사가 10%포인트씩 차이가 나고 도대체 뭐가 맞는지 몰라서 떠돌았던 것"이라고 그 배경을 밝혔다. "(대선 기간에) 여론조사로 가스라이팅을 했다. 그것이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 이란 심리적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의 여론조사들을 그렇게 표현하는 김씨의 말대로라면, 기존의 여론조사기관들은 국민들을 상대로 심리적 조작 행위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대선 기간 동안 많은 여론조사들의 결과가 달라 혼돈의 피로감을 호소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론조사기관들이 심리적 조작 행위를 했던 것처럼 몰아가는 김어준의 주장은 특유의 음모론이라 할 만하다.

김씨가 여론조사기관을 만들든 말든, 그 개인의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진영의 팬덤들을 거느린 인물로, 적어도 그 진영 내부에서는 적지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여론조사들을 가스라이팅으로 여기는 그의 구상이 현실화될 때 어떤 부작용과 폐해를 낳을지를 우려하는 일은 공공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김어준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민주당 지지자이다. 그것도 단순한 지지자가 아니라, 지난해 보궐선거 때는 ‘생태탕 선거’, 올해 대선 때는 ‘쥴리 선거’ 만들기에 앞장섰던 네거티브의 선봉장이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음모론을 유포하면서라도 자기 정파의 승리를 도모해온 인물이다. 2012년 대선 부정 개표에서 세월호 고의 침몰설에 이르기까지 각종 음모론을 주장하고 이를 확산시키는 영화를 제작하여 공개한다. 그 과정에는 막대한 규모의 모금이 있곤 해왔다. 그가 제기한 음모의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그는 사과 한마디 없이 좌고우면 하지 않고 음모론의 행진을 이어간다. 그의 음모론이 사실인가 여부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에게 환호하는 팬덤들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그런 김어준이 여론조사기관을 만든다는 소식에 아연실색하게 되는 이유를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김어준이 만들고 실시하는 여론조사의 공정성을 과연 신뢰할 수 있을까, 회비를 내는 지지자들의 입맛에 맞는 조사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리한 방법이 동원되지는 않을까,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여론조사 시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그렇지 않아도 극단을 추구해온 팬덤 정치를 더욱 강화시키지는 않을까를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우려이다.

김어준 개인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출구일지도 모르겠다. 민주당 정권 5년 동안 그는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인 TBS의 진행자까지 맡으면서 황금 같은 시절을 누렸다. 아무리 편파방송이라는 시민들의 비판이 계속되어도 그가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정권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정권이 바뀌게 되었다. 아무리 김어준이라 한들, 빗발치는 편파방송 비판을 무릅쓰고 더 이상 공영방송의 진행자 자리에서 버티는 상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론조사기관을 만들겠다는 그의 구상은 정권교체가 된 환경에서의 활로를 찾기 위한 새로운 아이템으로 비쳐진다. 정권은 바뀌지만, 야당의 일원이 된 김어준은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여 다시 모금을 하고 회비를 걷는 행진을 계속할 것이다.

그런 김어준에게는 여당을 하든 야당을 하든, 언제나 돈을 벌기에는 좋은 시절일지 모른다. 여당할 때는 정권의 편이라서, 야당할 때는 정권비판층을 결집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사업은 언제나 풍요로울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김어준을 바라보면서 정치를 해온 민주당에게는 더 이상 그의 존재가 약이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김어준이 음모론을 유포할수록 민심의 역풍이 불어 오히려 민주당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았음은 지난 선거들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김어준이 부르기만 하면 출연하기 위해 달려가고, 김어준의 음모론에 편승하여 선거판세를 뒤집어 보려 했던 민주당의 정치인들에게 김어준은 더 이상 구세주가 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팬덤 정치는 문재인 정부 5년동안 결국 독이 되었음을 이제는 성찰하며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어준이 새로 만들겠다는 여론조사기관의 이름은 '여론조사 꽃'이라 한다. 하지만 그 꽃은 이제 필 때가 아니라 질 때가 되었다.

이 글은 사실 김어준 얘기를 하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 할 정도로 김어준이 더 이상 중요한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새로 시작할 윤석열 정부를 향해 이 얘기를 한다. 극성맞은 팬덤의 정치는 좋은 정권을 만드는데 독이 됨을 김어준의 사례를 통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윤석열 당선인에게도 묻지마 지지를 하며 환호하는 지지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윤 당선인으로서는 고마운 일이겠지만, 팬덤의 환호에 갇히는 국정운영은 약이 아니라 독이 됨을 문재인 정부 5년의 시간동안 우리를 지켜보았다. 환성 보다 쓴 소리에 먼저 귀 기울여야 정권이 길을 잃지 않는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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