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저항시인 김지하 별세...반독재민주화, 생명사상

2022.05.08 23:37:18

반독재·민주화 저항시 ‘오적’, ‘타는목마름으로’...70년대 민청학련 사형선고
80년대 이후 생명사상…'죽음의 굿판' 칼럼 논란, 변절자·배신자 비판

[폴리뉴스 한유성 기자]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저항시인’ 김지하(본명 김영일) 시인이 향년 81세로 8일 별세했다.

시인은 전립선암 등으로 최근 1년여의 투병생활 끝에 이날 오후 4시께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토지문화재단 관계자가 전했다. "시인과 함께 살고 있던 둘째 아들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내외가 함께 임종을 지켰다"며 "상태가 안 좋아지셔서 119를 불렀지만, 결국 별세하셨다"고 재단 관계자는 전했다.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6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1969년 '시인'지에 '황톳길', '비' 등 5편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 등단했다. 이후 ‘타는 목마름’ ‘오적’으로 대표되는 유신의 저항 시인,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시인 김지하는 등단하기 전 1959년 서울대 미학과에 다니면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1964년 한일 회담 반대 투쟁에 나섰다가 4개월간 복역하였다.

그의 대표작 ‘오적’은 1970년 국가 권력을 풍자한 시를 ‘사상계’ 5월호에 발표해 시인 김지하가 구속되는 필화를 겪었다.

시 ‘오적(五賊)’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군부장성(將星),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어 1970년 박정희 군사독재의 공포와 부정부패한 5대 권력의 비리를 날카롭게 풍자하며 사회적 벙폐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질타한 저항시다. 이 시로인해 시인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 기소되었고 ‘오적’을 발표한 ‘사상계’는 판매가 중지되고 관련자는 대거 구속되는 ‘오적 필화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민청학련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김지하의 구명을 위해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만들어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미국의 노엄 촘스키 등 해외 문인과 지식인들과 연대해 '사법 살인'을 막아내 무기징형으로 감형돼 사형을 면했다.

1980년 석방된 이후 고인은 1970년대 반유신민주화 저항시인에서 유불선 사상, 동학사상을 토대로 후천개벽의 생명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고, 1986년 '애린'을 기점으로 생명사상과 한국의 전통 사상 및 철학을 토대로 많은 시를 쏟아냈다.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황토',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녹두꽃’ '애린' 등의 시집과 산문집으로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했다.

1982년 집필한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는 싯귀로 군사독재의 잔혹한 폭압 속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렬히 염원한 고인의 뜻이 담겨있다.

특히 시인은 '타는 목마름으로' 작품으로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이 시는 민중 가수 안치환씨가 노래로 만들면서 대중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반유신(반체제)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 시인은 90년대 들어서 ‘변절자’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그는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경찰에 맞아 숨지고 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 잇따르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는 칼럼을 기고해 민주화운동이 ‘생명을 경시하는 자살을 부추긴다’고 비판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진보 진영에서 '변절자'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은 시발점이 되었다. 이로인해 시인은 그의 구명운동을 계기로 만들어진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제명당하기도 했다.

10년 뒤 '실천문학' 여름호 대담에서 당시 칼럼과 관련해 해명하고 사과의 뜻을 표명했으나, 이후 2012년에는 범시민사회단체엽합 주최로 열린 시국강연회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진보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노골적으로 매도해 상당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독재민주화의 저항시인으로 명성을 얻은 고인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던 1975년 옥중에서 ‘제3세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의 ‘로터스’ 특별상을 받았다. 이 상을 수상한 계기로 그의 석방 여부가 국제사회의 인권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또한 시인은 세계 각국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1981),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1981), 이산문학상(1993),만해문학상(2002), 정지용문학상(2002), 대산문학상(2002), 공초문학상(2003), 영랑시문학상(2010) 등을 수상했으며 노벨문학상·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1973년 소설가 ‘토지’ 작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 씨와 결혼했으며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던 김씨는 2019년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아들인 김원보 작가·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김지하 시인의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이다. 장지는 부인이 묻힌 원주 흥업면 선영이다.



한유성 yshan@poli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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