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 위기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사진출처: 해양수산부)
▲ 수몰 위기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사진출처: 해양수산부)

인간의 거주지는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기온이나 강수 등의 적절한 기후, 하천과 넓은 평야 등 지형적 조건을 갖춘 곳이 유리하다. 특히 기후조건은 그 지역 거주자들의 의복과 음식, 가옥 등의 의식주 문화를 만들어내고 환경은 생업을 특징짓는다는 점에서 필요충분조건이기도 하다. 육지와 더불어 섬에도 선사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어 오래전부터 인간이 거주했고 문화전파의 통로가 되어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지상 최대의 휴양지 몰디브와 팔라우, 해가 가장 먼저 뜨는 나라 키리바시 등 대표적인 섬나라들이 개발과 지구온난화 등으로 수몰 위기에 내몰려 이주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학술지 ‘Advanced Science’에 따르면, 해수면 상승으로 파도에 의한 홍수가 더 잦아지고 마실 수 있는 담수가 줄어들면서 2050년이 되면 저지대 섬들은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고 한다. 몰디브가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정착지로 대대적인 인공섬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투발루(Tuvalu) 역시 해수면 상승으로 9개의 산호섬 가운데 이미 2개가 바다에 잠겼다. 남태평양에 있는 인구 1만2천 명의 섬나라인 투발루는 사라진 농지를 대신해 깡통에 흙을 담아 나무에 매달아 농사를 짓거나 통조림을 먹고 산다. 이에 우리 정부도 어촌뉴딜 공적원조(ODA)는 물론 인도적 차원에서 투발루의 해안 방재사업 등 녹색기후기금(GCF)을 통해 기술적·경제적인 지원과 협력을 보태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수위에 육박한 투발루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사이먼 코페 외무장관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수중연설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최근 메타버스 기술을 이용해 투발루를 본떠 만든 ‘디지털 국가’를 건설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투발루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는 의미에서 메타버스 공간에 디지털 국가를 세워 물에 잠겨도 후손들이 자신의 문화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영구히 보존하려는 의도이다.

‘외쿠메네’로 전환되는 해저, 해상, 그리고 디지털 국토

5세기에 그려진 외쿠메네(지도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9%B8%EC %BF%A0% EB%A9%94%EB%84%A4#/media/%ED%8C%8C%EC%9D% BC :Herodotus _world_map-en.svg)
▲ 5세기에 그려진 외쿠메네(지도출처: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C%99%B8%EC %BF%A0% EB%A9%94%EB%84%A4#/media/%ED%8C%8C%EC%9D% BC :Herodotus _world_map-en.svg)

‘외쿠메네’(Okumene)는 지구상에서 인류가 살고 있는 지역, 즉 ‘사람이 사는 땅’을 의미한다. ‘거주하다’의 의미의 그리스어에서 파생되었으며, 독일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이 『인류지리학(1891년)』에서 외쿠메네의 개념을 사용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언외쿠메네(An Okumene)’ 또는 ‘아노쿠메네’라 불리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거주지역, 즉 극지·빙하·고산지대·적도·사막·정글 등을 가리킨다. 물론 일시적으로는 생활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이다. 오랫동안 외쿠메네와 아노쿠메네를 가르는 기준은 기후와 식량생산의 여부 등이었다. 이는 인간이 장기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이 되는 조건들이다.

한때 얼음과 눈으로 덮여 동토(凍土) 즉 아노쿠메네로 여겨졌던 알래스카는 숨겨진 자원적 가치를 발견한 미국에 의해 외쿠메네가 된 사례이다. 알래스카는 알류트(Aleut)어에서 유래한 ‘거대한 땅’을 의미하는 인디언 말이다. 이 위대한 땅을 1867년 러시아로부터 720만 달러라는 헐값에 구입한 미국의 선견지명은 탁월했다. 당시만 해도 혹독한 기후와 척박한 환경으로 불모지에 가까운 땅이라 개척할 엄두를 못 내던 러시아가 재정적 한계로 팔아버리기로 한 결단이 가져올 파장을 그때는 몰랐을 것이다(어차피 영국에 빼앗길 바에야 차라리 파는 게 낫다는 판단도 있었지만). 172만㎢의 알래스카는 미국 면적의 약 1/5, 우리나라의 17배 정도에 달하며 석탄, 석유, 금 등 풍부한 천연자원의 보고로서 경제적 이익은 물론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오늘날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구입 당시의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불과 1에이커에 단돈 2센트를 주고 알래스카를 사들이면서 미국은 태평양의 주도권까지 거머쥔 꽤 남는 장사를 한 셈이다.

우리 모두의 위기, 기후변화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이렇듯 인간은 첨단의 과학기술과 노동력·자본을 동원하여 간척과 매립, 관개 사업 등을 통해 차츰 아노쿠메네를 외쿠메네로 바꿔놓았고 심지어 우주와 해저 무대, 그리고 디지털 공간으로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러한 인간의 활동이 기후변화를 일으켜 오히려 외쿠메네가 파괴되고 있으니 이 또한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바다를 막는 거대 성벽(그레이트 씨 월)을 건설 중이며, 지난해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부산 해운대도 물에 잠길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은 터. 이제 몰디브와 투발루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는 우리 모두의 위기로 성큼 다가왔다. 인간 중심적이며 성장 중심적인 사고를 벗어던지고 자연과 더불어 공존과 상생을 꾀하는 사고의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라질 국토를 대비한 디지털국가의 건설도 중요하지만, “내일 지구에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깊은 철학적 사유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 이경아교수는 문화인류학자이며, 현재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에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섬 인문학 연구단’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 과제는 “섬 인문학, 인문지형의 변동과 지속가능성”이다.
섬과 어촌에 대한 민족지적 현지조사를 통해 어민의 생활양식을 기록하고 문화생태학적 관점에서 해양환경에 적응하는 전통지식, 기술, 관습, 사회관계의 측면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소외된 섬의 여성, 이주여성, 이주노동자의 생애사 작업을 통해 젠더와 인권 문제에도 주목하고 있다.
전통적인 인류학적 연구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어촌사회를 위해 학제간 연구를 진행한다. 주요 연구로는 「연어를 따라간 인류학자」와 「Common Pool Resources Management Measures and Implementation Strategy of Skate Fishermen」 등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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