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한유성 기자] 정부가 29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가운데 정부의 이런 조치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서 금지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업무개시명령이 의결되자 곧바로 시멘트업계 운송 거부자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파업으로) 시멘트, 철강 등 물류가 중단돼서 전국의 건설과 생산 현장이 멈췄고, 우리 산업 기반이 초토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오늘 우리 민생과 국가 경제에 초래될 더 심각한 위기를 막기 위해 부득이 시멘트 분야의 운송 거부자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봉주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지난 24일 "업무개시명령은 ILO 협약 105호 '강제근로 폐지'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업무개시명령은 특정한 업무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법률로 업무를 개시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1994년 1월 '의료법'과 '약사법'의 개정으로 이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화물 운송을 규율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이하 화물자동차법)에 이 조항이 신설된 것은 2004년 1월 개정 때로, 전년도인 2003년 화물연대 파업으로 '물류 대란'이 발생하자 정부가 의료법과 약사법을 참고해 화물자동차법에 이 조항을 넣기로 한 것이라고 연합뉴스는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는데, 화물운송업에 이런 정도의 공공성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당시 개정안에 대해 "화물운송사업은 직접적으로 국민의 생명이나 신체의 안전과 관련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화물차운수사업자에 대한 직접적 개입을 통한 규제를 해야 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공익상의 이유는 없다고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ILO 협약 105호는 ILO의 190개 협약 가운데 '핵심 협약'으로 분류된 8개 중 하나다. 이 중 105호는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협약'으로, 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과 함께 강제노동 금지 분야 핵심 협약을 구성하고 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핵심 협약 중 ▲노동 규율의 수단과 ▲파업 참가에 대한 제재 항목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현행법상 화물차 운전자는 사용자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로, 근로자성을 완전히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화물연대의 파업은 엄밀한 의미의 '파업'이라기보다는 '집단적 운송 거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05호 협약은 아직 국내에서 비준되지 않은 조항으로, 이 조항을 따를 국내법상 의무는 없는 셈이지만, ILO는 이런 핵심 협약에 대해서는 모든 회원국이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그 원칙을 존중하고 실현할 의무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우리나라는 정치적 견해 표명에 대한 제재로 강제노동 부과를 금지한 내용이 국가보안법 등과 상충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이를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105호 미(未)비준 국가로는 미얀마, 통가 등이 있으며, 주요 국가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은 ILO의 또 다른 핵심 협약인 제29호도 위반할 소지가 있다. 29호는 강제노동을 정의한 조항으로, ILO는 처벌의 위협 하에 강요된 노동 또는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것이 아닌 노동을 강제노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강제노동에 포함되지 않는 5가지 예외 조항을 들고 있다. 

업무개시명령과 관련해선 '비상 상황'(in cases of emergency)에 해당하는지가 관건인데, 29호 비상 상황의 사례로 ▲ 전쟁이 발발했을 때 ▲ 화재와 홍수, 기근, 지진, 극심한 전염병이나 가축 유행병 등과 같은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 기타 일반적으로 인구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로 들고 있다고 연합뉴스는 말했다.

국제운수노동조합연맹(ITF)은 "인구 전체 또는 일부의 생존이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준에서만 비상 지휘권(emergency powers)에 의한 노동자의 동원이 허용된다는 점을 ILO 전문가위원회가 여러 차례 확인한 바가 있다"며 한국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29호를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헌법을 전공한 허창환 변호사는 '헌법상 근로의 의무에 관한 연구-업무개시명령 제도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강제노동 금지의 원칙의 예외로 인정되는 전쟁이나 화재, 홍수 등의 재해라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업무개시명령 제도는 ILO 협약상 강제노동 금지의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ITF와 공공운수노조는 28일 우리 정부가 ILO 핵심 협약 29호, 105호와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를 위반했다며 질베르 웅보 ILO 사무총장에게 긴급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ITF는 세계 150개국의 700여개 노조를 회원사로 둔 국제산별 조직으로, 화물연대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가입돼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ILO는 노동자단체가 이런 진정을 내면 별도 노사정위원회를 꾸려 해당 정부에 관련 정보를 요청하고 이를 조사해 권고사항을 제시하며 해당 정부가 ILO의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ILO 이사회는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사안을 심층적으로 조사하고, 최악의 경우 총회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

ILO의 권고는 말 그대로 권고여서 이행의 강제성은 없다. 그러나 ILO는 최근 들어 노사정위원회의 권고사항이 담긴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해당국은 국제사회에서 '노동인권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살 가능성도 있다.

반면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이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화물차 운전자들은 근로자가 아니어서 화물운송업체의 지시에 응할 의무가 없다. 따라서 집단적으로 운송을 거부하더라도 업무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감안할 때, 이들의 집단적 운송 거부에 대해 업무개시명령 이외에 적절한 대응수단이 없다"며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또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는 등 법률상 요건과 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개별적으로 운행을 중단하는 행위를 제한하는 것도 아니므로 헌법상 기본권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정부는 해명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재계도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노조원이 아니기 때문에 화물자동차법을 적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화주업체 측 재계 관계자는 "집단적인 운송거부 행위를 파업이라고 하려면 화물연대가 법상 노조로 인정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화물연대는 화물자동차법에 규율을 받고 있는데, 정부가 이 법에 따라 발동하는 업무개시명령은 정당하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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