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에 디플레이션 우려, 올 연말 미국의 금리인상 예고까지 ‘산 넘어 산’

올해 글로벌 세계 경제는 지난해와 같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속절없이 떨어지는 국제 유가에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의 디플레이션 우려에다 연말 미국의 금리 인상 예고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 유가 하락으로 인한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산유국들의 재정이 악화 일로여서 간헐적으로 세계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안길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유럽중앙은행(ECB)이 최근 대규모 양적 완화를 발표해 경기 부양의지를 밝힌 점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경제에 한가락 안도의 빛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마저 장기화될 경우 국제적인 환율 전쟁을 촉발시킬 것이란 우려가 뒤를 잇는다.

ECB는 지난 1월 22일(현지시간) 시장 기대치를 뛰어넘는 1조1400억 유로(약1403조원) 규모의 대규모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즉, 오는 3월부터 최소한 내년 9월까지 국채 매입 등을 통해 시장에 매달 600억 유로(약 75조5300억원)씩 유동성을 공급하는 전면적 양적완화를 실시키로 한 것이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2012년 9월부터 실시한 매달 400억달러 규모의 3차 양적완화를 훨씬 띄어 넘는 수준이다. 이번 발표에서 ECB는 물가상승률을 연 2%로 유지하는 중기 목표를 기준으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물가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기한을 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동성 공급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ECB, 내년 9월까지 1조1400억 유로 대규모 양적완화 실시

ECB의 이번 양적완화 정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번 조치로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 증시와 경제 전반에도 따뜻한 봄바람을 몰고 올 것이란 전망이 많다.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로 인한 부담감을 ECB의 양적완화를 통해 일부 덜 수 있고 유로존의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면 수출을 주력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도 긍정적 측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기존 예상을 뛰어넘는 ECB의 이번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보스포럼(2015.1월 21일~24일)에 참석 중인 라가르드 총재는 이날 "ECB의 강력한 경기부양 조치를 환영한다"며 "이번 조치로 유로존이 차입비용을 절감해 투자를 활성화하고 디플레이션 우려를 줄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발표가 마냥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훈풍만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요국들이 자국 내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경쟁적으로 부양정책을 펴면서 사실상 환율전쟁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럴 경우 주요국들간 ‘환율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ECB의 대규모 양적완화로 중장기적으로 유로화의 가치는 추락하게 되고 유럽계 자금의 국내 유입이 많아져 이것이 원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함으로써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유로화 약세로 원화가 강세를 보이게 된다면 특히 가뜩이나 ‘아베노믹스’를 펼치고 있는 일본과 경쟁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성장률 저하가 불가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세계 경제가 미국과 인도 빼고 모든 나라가 성장률 저하를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인도 빼고 모든 나라 경제성장률 낮아질 것”

세계은행은 최근 ‘2015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해 6월에 전망한 3.4%보다 0.4% 포인트 낮은 것이다.

미국 경제가 소비 증대, 유가 하락 등에 힘입어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유로존과 일본 그리고 신흥국의 경제성장이 예상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번 보고서에서 세계은행은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지난해 6월 3.0%에서 이번에 3.2%로 올렸다. 미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소비지출 증대가 유가 하락에 힘입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은행은 유로존과 일본의 올 성장률은 기존 전망치보다 각각 0.7% 포인트와 0.1% 포인트 낮은 1.1%와 1.2%로 하향 조정했다.

이머징 마켓도 우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세계은행은 신흥국 성장률을 종전 5.4%에서 4.8%로 하향 조정했다. 중국의 성장 둔화, 원자재 가격 하락,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본비용 상승 등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올해 성장률 역시 당초 7.5%에서 7.1%로, 브라질은 2.7%에서 1.0%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서방의 경제제재와 유가 하락 악재가 겹친 러시아는 올해 성장률이 마이너스 2.9%로 곤두박질할 것으로 예상됐다. 신흥국 가운데 인도만 유일하게 6.3%에서 6.4%로 상향 조정됐다. 주요국 가운데 미국과 인도를 제외한 모든 나라의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 혼자만으로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 가기에는 힘에 부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코식 바수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경제가 싱글 엔진, 즉 미 경제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러나 미국 혼자만의 힘으로 글로벌 경제를 이끌어 가기 벅차다”고 밝혔다. 따라서 그는 글로벌 경제가 예상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환율전쟁’에 따른 글로벌 무역량 감소, 올 연말 예상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 조치, 유가 하락에 따른 산유국의 재정 악화, 유로존 및 일본의 디플레이션 우려 등을 4가지 잠재적인 리스크로 꼽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 경제가 해외 변수의 역풍을 맞고 힘을 읽어 버리는 것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지난 1월 14일 경기 동향 보고서 ‘베이지 북’에서 미 경제 활동이 ‘완만한(moderate)’ 속도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Fed는 그러나 텍사스 주 등 에너지산업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원유 업체의 채산성 악화 등으로 해고가 발생하는 등 유가 하락의 부정적인 여파가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각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1년 전보다 글로벌 경제에 대해 어둡게 전망하고 있다. 기업컨설팅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인터내셔널이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개막을 앞두고 지난 20일 발표한 전망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 응답한 1300명의 CEO 중 “12개월 내 경제가 지금보다 좋아질 것으로 보는가”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37.7%에 불과했다. 지난해 경우 같은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44%였다.

앞서 19일 세계 전망보고서를 발표한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5%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10월 발표 때의 3.8%보다 0.3%포인트 낮춘 것이다. IMF는 내년도 평균 성장률도 3.7%로 석 달 전보다 0.3%포인트 낮춰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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