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삼성 책임져야 될 일은 책임져야, 정경유착 비리 척결돼야”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이 지난 9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폴리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폴리뉴스 이은재 기자)
▲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이 지난 9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폴리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사진=폴리뉴스 이은재 기자)
[폴리뉴스 김희원 기자]지난해 1월 4‧13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7호로 정치권에 발을 내딛은 양향자 최고위원(전국여성위원장, 광주 서구을지역위원장).

‘폴리뉴스’는 지난 9일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그를 만나 민주당 영입 과정의 숨은 이야기와 ‘정치인 양향자’의 꿈에 대해 들어봤다.

양 최고위원은 영입 당시 고졸 출신 삼성전자 상무 출신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후 양 최고위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천정배 의원과 결투를 벌였으나 끝내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이후 양 최고위원은 8.27전당대회에 전국여성위원장으로 출마해 당선, 당당하게 당 지도부인 최고위원에 입성했다.

양 최고위원은 이날 ‘폴리뉴스’ 김능구 대표와 가진 ‘정국진단’ 인터뷰에서 “누구든 가정 형편상 다른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라도 꿈을 버리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밝혔다.

양 최고위원은 “제가 삼성에 있으면서 기술 개발이 제 중요한 업무이기는 했지만 저한테 온 역할은 저와 같이 아프게 성장한 사람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양 최고위원은 “늘 저는 모든 면에서 첫 번째였다. 아이를 갖고 다닌 첫 번째 사람, 고졸로 들어와서 기술대학이라는 곳을 여성으로서 간 첫 번째 사람, 제 이전에는 고졸이, 여성이 대리도 없었고, 책임연구원도 수석연구원도 없었다. 제가 항상 가장 먼저였다”며 “수석연구원이 되고 임원이 되는 것도 삼성 역사상 없는 일이었다. 기술 분야에서 상고 나와서 기술연구임원이 됐다는 것은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신화가 돼버렸다. 저는 이런 일들이 신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인 양 최고위원은 이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등 혐의를 적용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심경도 밝혔다.

양 최고위원은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이 저와 같은 순수한 영혼의 연구원, 노동자, 임직원들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한편에서 그런 정경유착과 비리 속에 회사가 있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양 최고위원은 “책임져야 될 일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비리가 완전히 척결돼야만 대한민국만의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전 세계적 초일류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 뒤 “그러나 순수한 영혼들까지 다 같이 매장해서 삼성은 다 부패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양향자 최고위원과의 인터뷰 내용 중 마지막 부분이다.

-작년 총선을 앞두고 이 당시 민주당이 앞도 안보이는 시절이었고 문재인 전 대표가 리더십에 상처를 많이 입었음에도 김종인 의원 등 영입인사를 모셔왔다. 양 최고위원은 민주당에 영입될 때 어떤 과정을 거쳤나. 
그때는 제가 삼성전자 연구임원으로 3년차에 들어가는 해였다. 저는 임원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 제조업이 제대로 뿌리내려야 한다. 기술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GDP(국내 총생산)가 3만불은 돼야 한다. GDP 향상에 도움을 주지 않는 부류들은 다 쓰레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정치인, 두 번째가 언론인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제가 만드는 이 기술이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이롭게 하고 그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반도체 개발자로서 30년을 살았는데 또 다른 30년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영입 제의가 왔다. 거의 애걸하듯이 했다. 처음에 당이 어렵다는 것, 호남이 어렵다는 것을 이야기하드라. 정치가 기업을 못 따라간다는 얘기도 했다. 여성표가 적기 때문에 제가 너무나 간절하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결정하기가 너무 어렵고 외로웠다. 제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고 정말 운명이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그때 삼성에 온지 30주년이 됐고 그 즈음 나이가 딱 50이 됐었다. 삼성에서는 삼성임원들을 워낙 힘드니까 힐링 프로그램에 보낸다. 고도원 선생님의 깊은 산속 옹달샘 충청도에 있는 곳을 8명씩 조를 짜서 보내줬다. 고도원 선생님이 저에게 하는 말이 ‘양 상무님, 삼성 임원이라는 별을 따셨는데 꿈은 이뤘다. 그럼 꿈 넘어 꿈이 뭐냐’ 이렇게 물으셔서 저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제가 그런 생각을 안 해봤다. 제가 소위 말하는 유리 천장도 다 깨고 꿈을 이뤘는데, 그 다음 가야할 길이 뭐지. 왔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인가. 기술개발 계속하고 4차산업 준비를 하는 것인가. 운명적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려놓기는 너무너무 어려웠다. 비밀리에 영입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어려웠고 혼자서만 결정을 했었어야 했다. 그러나 결정할 수있었던 것은 문재인 전 대표와 직접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부분이라고 꼭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이분은 부패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 바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양 최고위원을 영입 제안할 때 호남과 여성을 이야기했다면 대통령 선거를 염두에 두고 말씀한 거라고 보여지는데.
대선을 염두에 둔 것이다. 총선보다도 대선을 위한 영입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제가 중간에 비례대표는 안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저 하나 그냥 원내 진입하고 마는 것은 대선에 아무런 역할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대선에 맞춰서 이뤄졌다. 문재인 전 대표의 영입도 그랬고 저의 지난해 총선 때 광주 출마도 그렇고 최고위원 선거 출마도 그렇고, 문재인 전 대표와 그런 것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꿈 넘어 꿈은 이기와 이타의 갈림길이다. 고도원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꿈 넘어 꿈은 그럼 뭐냐. 그랬더니 그것은 이타적인 삶이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 그래서 ‘아 삼성 안에서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국가, 국민으로 나오라는 말이구나’ 생각했다. 영입 전에 이런 일이 있었는데, 영입 제안이 오길래 그런 것들이 다 오버랩이 됐다. 제가 해야 되는 일이구나. 숙명으로 받아들어졌다. 문재인 전 대표를 보면서 이분은 정치적으로 함께 해도 될 분이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언론을 통해 엄청 공격을 받을 때인데 본인은 영입 작업을 했다는 것인데 놀라운 일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저도 회사에서 퇴근해서 오면 TV에서 호남의원 탈당 이야기만 계속 나오고 정치에 염증이 날 정도였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표의 말씀을 보면 그래도 누구를 탓하지는 않고 아쉬워하고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계획을 하고 계셨다는 것을 영입제의를 받으면서 느껴졌다. 저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영입들을 하고 계시구나 싶었다. 제가 영입인사 7호다. 이른바 ‘더벤져스’(더민주+어벤져스), 총선 영입인사가 한 사람씩 당에 들어왔지만 이분들이 난파되고 있는 민주당호에 올라선 것이 공통점이다. 가라앉고 있는 당에서 뛰쳐나간 분들과 가라앉고 있는 당을 구하겠다고 들어온 사람들과 비교를 해주셔야 한다. 그분들이 단 한분도 자신이 꼭 국회의원이 돼야겠으니 좋은 자리를 달라거나 뭘 나중에 요구한다거나 했던 분이 한 명도 없었다.

지난해 8.27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양향자 최고위원(사진 출처 양향자 최고위원 페이스북)
▲ 지난해 8.27전당대회에 출마했던 양향자 최고위원(사진 출처 양향자 최고위원 페이스북)

-지난 총선에서 서울 동작구을 나경원 의원과 경쟁을 했으면 진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게임이 될 것인데 아쉬움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 소리 많이 들었나.
저는 많이 들었다. 실제적으로도 그런 여론조사도 좀 돌리고 다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도 여러 번 말씀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남, 광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입당 기자회견 때 기자분이 묻길래 출마를 한다면 광주로 한다고 그때부터 일관되게 이야기를 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광주가 8석이지만 절대로 따로 움직이지 않고 한꺼번에 움직이기 때문에, 공천이 정말 치밀하게 돼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싶다. 그때 제가 전 당원 전략공천 1호로 나갔다. 워낙 광주가 어렵기 때문에 누구도 광주에 내보낼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나경원 의원 지역구 동작을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저의 광주 서구을 출마는 제가 광주로 가야하는 것이 제 운명이었고, 제가 이 당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때 당시에는 양향자를 광주에 공천하지 않으면 우리가 호남을 다 포기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는 것이 당의 팽배한 의견들이었다. 호남을 다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제가 어렵더라도 당을 위해서는 가야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경원 의원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여성 정치인들이 많지도 않은데 제가 동작을에 출마하면 국민들이 보기에는 흥행은 될 수 있으나 누구 하나는 죽어야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명분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총선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후 김종인 대표께 인사를 드렸더니 ‘나경원 지역에 보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아쉽고 나 의원이 나만 보면 고맙다고 인사를 해’라고 말씀했다. 나경원 의원과는 잘 이야기도 되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다.

-천정배 의원의 지역구인 광주 서구을은 어려운 지역인데 왜 그 지역에 출마했나.
다 말씀드리기는 상당히 어렵다. 저는 생각이 있었다. 광주 지역구 8개를 모두 이기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구상이 제 머리 속에 있었다. 먼저 가 계신 분은 지역에서 지지율이 두 배로 나오는 상황인데 어떻게 자리를 내놓겠는가. 대부분 지역이 준비 중인 분들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분이 준비하고 계신다는 지역은 아예 당에서 그분들까지 함께 해서 뭔가 협의를 이끌어내서 이야기가 되지 않는 한 제가 출마하기는 어려웠다. 당에서 제가 지역을 선택하면 전략공천을 해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누구를 가슴 아프게 하면서까지 제가 전략공천을 받아서 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천정배 의원의 지역구에는 아무도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후 다음 선거에서 안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천정배 의원도 명분이 없었다. 안산에서 여러 번 국회의원을 지내고 서울 송파로 출마해서 낙선하고, 요직에 계셨던 분이 광주에 와서 출마를 한다는 것이 명분이 없는 일 아닌가 생각을 했다. 저와 너무 지지율 차이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제가 잘하면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종 선거 결과는 어떠했나.
10% 이상 차이가 났다. 그래도 처음에는 거의 ‘60 대 15’ 정도로 제가 천정배 의원에게 밀렸다. 저라는 사람을 광주에서 몰랐다. 민주당에 대한 비토가 워낙 심했다. 그런 아픔들이 있었지만 격차를 좁혀나갔다. 우리가 전멸을 하고 이 사람이 포기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시 벌떡 일어나서 최고위원 선거에 나오고 이겨내는 것을 보면서 호남 전체가 감동이었다고 저는 생각을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등 혐의를 적용하려고 하고 있다. 삼성 출신으로 곤혹스럽지 않나.
전혀 곤혹스럽지 않다. 저는 30년 동안 반도체 개발을 해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우리 대한민국 삼성이 글로벌 첨단기업으로서 발돋움하게 했던 자랑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이 저와 같은 순수한 영혼의 연구원, 노동자, 임직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편에서 그런 정경유착과 비리 속에 회사가 있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책임져야 될 일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에야말로 비리가 완전히  척결돼야만 명실상부한 대한민국만의 글로벌 기업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초일류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나 순수한 영혼들까지 다 같이 매장해서 삼성은 다 부패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슴 아픈 일이다.

“밑에서부터 주류층까지 올라가, 국민 삶속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 경험”
“저야말로 정치인으로 가장 적합”

-전국여성위원장이 되셨는데 이번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100년 안에 여성 대통령이 되기 어렵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당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하에서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보여진다.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떨어진 것조차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저는 이 비판이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도 추미에 대표가 원내 1당의 대표이고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도 있다. 또 저와 같은 사람들이 민주당에 들어와서 새로운 정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꼭 여성이 문제라고 보지는 않을 것 같다. 한 개인의 공권력의 사유화가 문제인 것이지 그분(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어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결혼도 하지 않고 가족도 돌보지 않고 국민과 결혼을 했다고 하는 초심을 지켜나갔다면 훨씬 더 국정을 잘 운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저 개인적으로는 국민들의 삶이 저한테 다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저 밑에서부터 사회 주류층이라고 하는 층까지 올라가보고 그 안에서 국민의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제가 경험했다고 생각하므로 저야말로 정치인으로서는 가장 적합하지 않나 싶다.

“기업인들 문제 예방하는 일에 익숙, 정치권으로 나와야”

-기업에 있을 때와 지금 정치권에 들어온 이후 정치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이 있나.
많이 달라졌다. 기업인으로서 보는 정치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이었다. 제가 몸담았던 곳에 임원분들도 아직까지도 제가 생각했던 부분과 똑같이 정치를 냉소적으로 생각한다. 정치는 악이고 비리의 온상이고 기업을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들로 가득찬 곳이라고 생각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제가 정치권에 나와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분들 스스로 극보수층이라고 말씀했는데 지금은 따뜻한 보수, 진보로 생각하드라. 일단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정치권 원내 구성원 면면을 보면 지금까지도 법조인 위주로 돼있다. 그런데 늘 이런 이야기를 한다. 법조인들은 문제가 생겨야지 일이 생기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저 같은 기술개발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노력한다. 예방 비용보다 수습 비용은 천배 정도 차이난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앞을 보는 시각이 있다. 그래서 시스템도 문제가 안 일어나게 만드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정치권에 와서 함께해야 앞쪽도 뒤쪽도 함께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제가 사장님들한테도 기업에서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경험을 해봤던 사람들이 정치권에 와야 한다, 이제 국가경영을 위해서 나와야 한다는 말을 참 많이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CEO 리더십을 내세웠지만 부정적 이미지가 많은데.
그분도 잘하는 영역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대에 뒤떨어지기도 하고 너무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것에 치중하다보니 국민이 바라는 정책과 동떨어진 정책을 하게 됐다. 그래서 4대강사업 등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모르지만 저처럼 밑바닥 노동자 생활부터 해본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저 아래 있는 사람의 고통까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민주적으로 공정하게 필요한 룰과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양 최고위원의 개인적인 꿈 넘어 꿈은 무엇인가.
제가 삼성에 있으면서 기술 개발이 제 중요한 업무이기는 했지만 저한테 온 역할은 저와 같이 아프게 성장한 사람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 늘 저는 모든 면에서 첫 번째였다. 아이를 갖고 다닌 첫 번째 사람, 고졸로 들어와서 기술대학이라는 곳을 여성으로서 간 첫 번째 사람, 제 이전에는 고졸이, 여성이 대리도 없었고, 책임연구원도 수석연구원도 없었다. 제가 항상 가장 먼저였다. 수석연구원이 되고 임원이 되는 것도 삼성 역사상 없는 일이었다. 기술 분야에서 상고 나와서 기술연구임원이 됐다는 것은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신화가 돼버렸다. 저는 이런 일들이 신화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누구든 가정 형편상 다른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일지라도 꿈을 버리지 않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

-그런 어려운 사람들을 나라에서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것인가.
그렇다. 삼성에서도 그런 일을 했지만 운명적으로 ‘앞으로 나라에서 그런 일을 하라는 것이구나’하고 운명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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