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김기율 기자] 국내 자동차 산업에 ‘빨간불’이 들어왔지만 노사의 강대강 대치구도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노조의 극단적 요구에 자동차 산업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르노삼성은 이달 29~30일, 다음달 2~3일 등 총 4일간 부산공장 가동을 중단한다. 법정 연차 외에 복지 차원에서 제공되는 ‘프리미엄 휴가’를 소진하는 방식으로 셧다운에 들어가는 것이다. 르노삼성은 노조의 파업 재개로 인해 통보했던 프리미엄 휴가를 실시한다는 입장이다.

르노삼성 노사는 지난해 6월부터 진행한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아직까지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1일 노사를 각각 만나 원만한 타협을 당부했지만 노사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노조는 회사에 노동강도가 심하다며 일방적 전환배치 방지와 신규 직원 채용, 시간당 표준 생산량 감소를 요구하고 있다. 의견 관철을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총 53차례 218시간의 부분파업을 벌였다.

물론 노조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적자에 시달리던 르노삼성은 지난 2012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와 함께 혼류생산을 한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생산직 근무자의 1인당 노동강도가 세졌다. 그럼에도 노조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했으며, 2017년에는 임금 협상을 유예하는 등 사측에 많은 부분을 양보했다.

하지만 부분파업을 강행한 그 시기와 방법이 옳았는지는 의문이다. 르노삼성에 따르면 올해 1~3월 파업으로 북미 수출용 SUV 닛산 로그 4800대의 생산 차질이 생겼다. 닛산 로그는 지난해 부산공장 총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력 모델이다. 닛산은 생산 불안을 이유로 올해 부산공장 닛산 로그 위탁 생산량을 기존 10만 대에서 6만 대로 줄이고 감소분 4만2000대 가운데 2만4000대를 일본 규슈 공장으로 돌렸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르노 본사에서 부산공장의 줄어든 생산성을 고려해 닛산 로그의 뒤를 이을 XM3 생산을 스페인 바아돌리드 공장에 넘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악의 상황에는 생산공장 폐쇄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때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효자 공장으로까지 불리던 부산공장의 쇠락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노사 갈등으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건 르노삼성뿐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차 노사는 통상임금과 광주형 일자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신설법인을 둘러싼 한국지엠 노사의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히 기아차 노조는 북미 판매용 SUV 텔루라이드와 신차 SP2의 해외생산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전 노조 집행부가 협의한 사항들을 다시 꺼내 압박에 나선 것이다.

기아차는 전 노조 집행부에 텔루라이드를 북미 전용으로 생산한다는 계획을 설명했기 때문에 단체협약 위반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북미 전략 차종으로 휘발유 모델만 개발한 텔루라이드를 화성공장의 모하비 생산 라인에서 혼류생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SP2 역시 수입차 관세가 높은 인도에 국내 생산분을 수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 노조 집행부는 기아차와 SP2를 국내에서는 7월부터, 인도서는 9월부터 병행 생산하기로 협의한 바 있다. 기아차 노조 관계자는 “국내 물량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국내생산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북미 시장 실적 회복과 인도 등 신흥시장 개척으로 실적반등을 노리는 기아차에게 무리한 요구라는 판단이다. 실제로 기아차는 텔루라이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지난달 북미 시장에서 전년 동기 대비 10.2% 증가한 5만5814대를 판매했으며, 철저히 미국 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텔루라이드는 3월 한 달에만 5080대가 팔렸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015년 455만6000대에서 2016년 422만9000대, 2017년 411만5000대, 2018년 402만9000대 등으로 3년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순위 역시 멕시코에 밀려 세계 7위로 내려앉았다. 노조 리스크로 인한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로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다.

해외 완성차 업체들은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GM은 북미 5곳, 해외 2곳 등 총 7곳의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1만4000명을 감축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폭스바겐, 포드, 닛산 등도 잇달아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 자동차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노조의 적극적 협조를 통한 고비용·저효율 생산구조 탈피가 최우선이다. 노조는 무리한 요구로 생산성이 약화된다면 이로 인해 인적 구조조정이 발생할 것임을, 나아가 제2의 군산공장 사태가 일어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폴리뉴스 Poli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