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움] 'MB정권, 의사 파시즘, 패륜적 불량정권' '권력집중과 독점 재현'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노무현적 가치와 국정이념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지향하는 국가상은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에 기반한 위민국가였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7일 조계사에서 열린 <노무현 시대정신과 그 과제> 심포지엄 기조강연('노무현적 가치와 국정이념')에서 이같이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학술 심포지엄'노무현 시대정신과 그 과제'는 그의 안장식 겸 49재를 사흘 앞둔 7일 서울 조계사의 국제회의장에서 광장,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생활정치연구소, 한국미래발전연구원 등 8개 정책·학술연구집단 공동주최로 열렸다.

"노무현적 가치, 위민국가 실현"

이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평소에 존경했던 링컨 대통령을 언급하며 '노무현 정신' '노무현적 가치'를 역설했다.

"링컨 대통령이 말한 ‘of the people'은 인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by the people'은 인민에 의한 결정이라는 민주주의의 방법을, 그리고 ’for the people'은 인민의 이익이라는 민주주의의 목표를 축약한 것이었다"며 "이 세 가지 표현에 함축된 링컨 대통령의 정치적 지향은 민주적 위민국가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향한 국가상이 바로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에 기반한 민주적 위민국가였다"며 "링컨을 만난 고인께서 말씀하신 ‘민주적 원칙이 승리하고 모든 인간의 자존심이 자유롭게 활짝 피는 나라’, 바로 그런 나라가 바로 정치인 노무현이 꿈꾸고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한국이었다고 저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주의 극복과 '사람 사는 세상'이 이를(위민국가)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대통령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에 대항해 싸우면서 헛된 권위주의를 벗어 던졌고 온갖 왜곡과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지금까지의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경제의 안정과 복지의 확대에 애썼다"고 덧붙였다.

또한 당정 분리와 책임총리제를 통한 권력 분산, 중소기업 강화, 언론의 자유와 다양성 보장, 종부세 환수 등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시햇던 정책들을 나열하며 "고인께서는 분권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가 서로 균형있게 발전하고 그 균형잡힌 힘을 통해 권력과 가치가 한국 구석구석까지 분산되기를 기대하고 노력했다" 전했다.

"이명박 정권, 의사파시즘 정권, 패륜에 가까운 불량정권"
"반민주, 반인간, 반평화의 어두운 그늘 다시 드리워"
"대통령 권력 집중, 권력 독점 재현"

이어서 그는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와 권력독점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 전 총리는 "지금 한국의 하늘에는 반(反)민주, 반 인간, 반 평화의 어두운 그늘이 다시 드리워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지금 이 정권이 막 추구하는 부자 감세, 언론 공작, 권력의 불통과 같은 부분은 의사(擬似) 파시즘적 성격을 띠어 간다"며 "우리는 이탈리아처럼 전쟁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않겠지만 구조가 의사 파시즘으로 가는 것은 상당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또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위기로 가는 심각한 상황"이라며 "경찰이 유모차부대를 소환했다는데 패륜에 가까운 불량정권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고도 성토했다.

이 전 총리는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거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기에 설사 어떤 정부가 서더라도 제 자리 걸음은 할지언정 최소한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믿었었는데 후한무치한 생각이었다"며 이명박 정부를 비판했다.

이어 "다시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 통하고 모든 권한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의 집중과 독점이 재현되고 있다"며 "국가 공권력은 사유화되어 국민에 대한 협박과 탄압에 사용되고있으며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경유착이 꿈틀거리고 있다"고 MB정권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의 1년 반은 한국의 반민주적 권위주의 세력, 반인권적 특권, 반칙 세력이 얼마나 강하고 끈질기며 비상식적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고 주장하며 인터넷에 재갈을 물리고 미디어법을 통해 여론을 독점하려는 현 정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끝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는 아직도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가 불가역적으로 확립된 것이 아니며 아직 우리에게 가야할 길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노무현적 가치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세웅 신부도 기조강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사건”이라며 “많은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서 울며 다짐하고 연대와 희망,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새삼 확인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에는 함세웅 신부와 손혁재 경기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이 기조강연과 발표를 맡았고,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 등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움 기조강연 전문]

노무현적 가치와 국정 이념

안녕하십니까. 이해찬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삶과 가치, 그리고 업적과 의미를 되새기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의 마음이 같겠지만, 이 자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앞자리에 모시는 기념 심포지움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시 한번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노무현적 가치 : 민주주의와 휴머니즘

저는 이 자리의 기조강연을 맡고 나서 과연 노무현적 가치, 즉 자연인 노무현이 평생을 지켜온 가치이자 정치인 노무현이 상징하는 가치를 옳게 말하고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다른 여러 길이 있겠지만, 저는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직접 전기를 쓰실 정도로 잘 알고 존경했던 미국 링컨 대통령의 삶과 말을 이해하는 것도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링컨 대통령은 미국의 남부와 북부가 서로 경제적 이해와 감정적 적대로 분열된 시기에 미국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연방의 해체라는 위기에 직면해서 링컨 대통령은 이상과 현실을 조화시켜 결국 민주적 통합국가를 만들어 냈습니다. 동시에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잔혹한 폭력이며 반인간적 제도의 하나인 노예제도를 철폐하여 휴머니즘의 가치를 실현한 사람입니다.

이런 링컨 대통령이 만들고자 한 국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저는 그의 게티스버그 연설에 그가 지향한 정치적 가치가 집약되어 있다고 봅니다. 링컨 대통령이 말한 ‘of the people'은 인민주권이라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by the people'은 인민에 의한 결정이라는 민주주의의 방법을, 그리고 ’for the people'은 인민의 이익이라는 민주주의의 목표를 축약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표현에 함축된 링컨 대통령의 정치적 지향은 민주적 위민국가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지향한 국가상이 바로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에 기반한 민주적 위민국가였다고 생각합니다. 링컨을 만난 고인께서 말씀하신 ‘민주적 원칙이 승리하고 모든 인간의 자존심이 자유롭게 활짝 피는 나라’, 바로 그런 나라가 바로 정치인 노무현이 꿈꾸고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한국이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지역주의 극복과 사람 사는 세상 - 노무현적 가치의 표현

이 민주적 위민국가에 대한 고인의 지향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바로 ‘지역주의 극복’과 ‘사람 사는 세상’입니다. 지역주의 극복은 민주주의에 대한 고인의 갈망을, 사람 사는 세상은 휴머니즘에 대한 고인의 열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는 지역주의야 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개혁을 훼손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인식하고 계셨습니다. 눈먼 지역주의 앞에서는 민주적 원칙도, 민주적 평가도, 민주적 책임도 논의될 여지가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근본인 신뢰와 투명성, 그리고 소통의 원칙은 귀 막은 지역주의 앞에서 소리 없는 메아리가 될 뿐입니다.

그렇기에 고인께서는 끊임없이 지역주의에 대항해 부산에 출마함으로써 지역주의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김해 사람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님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몸을 던졌습니다. 대통령이 되신 후에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으시면서까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제도적 개혁을 요구하셨습니다. 고인께 지역주의 극복은 필생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고인의 뜻은 지역주의의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들과 지역주의의 덫에 갇힌 일부 국민들에 의해 왜곡되고 거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 3당 야합의 장소에서 고인이 외친 ‘이의 있습니다.’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모든 사람의 가슴에 언제까지나 지역주의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만한 고집불통 싸움꾼을 알지 못합니다. 고인께서는 인권 변호사로서, 국회의원으로서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서슬 퍼런 공안정권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고통 받는 노동자의 편에 서서 자본의 부당한 폭력에 맨 몸으로 맞섰습니다. 정론과 진실의 편에 서서 족벌 언론의 횡포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래서 싸움꾼입니다. 고인께서는 조금만 타협하면 좀 더 쉽게,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데도 결코 물러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고집불통입니다.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싸우셨을까요. 저는 그 해답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란 고인의 염원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의 사람 사는 세상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자신의 원칙과 자존심을 지키며 사는 세상입니다. 반칙과 특권, 거짓과 기만의 폭력과 횡포에서 벗어나 사람들 모두가 당당하게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대통령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에 대항해 싸우면서 헛된 권위주의를 벗어 던졌습니다. 온갖 왜곡과 압력에 시달리면서도 지금까지의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경제의 안정과 복지의 확대에 애썼습니다. 친북좌파라는 악의에 찬 거짓 선동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금제를 실시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한 것에는 사회적 연대를 재건하고 보다 인간적인 복지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던 고인의 뜻이 녹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그 누구보다도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있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던 휴머니스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노무현적 가치의 핵심으로서 민주주의와 함께 바로 휴머니즘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노무현적 가치의 국정 이념 : 분권과 균형, 평화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휴머니즘에 대한 열망은 실제 국정에서 분권과 균형, 그리고 평화의 이념으로 나타납니다.

권력과 가치의 집중, 그리고 독점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사람다운 삶을 억압합니다. 권력의 집중과 독점은 민주적 소통을 저해하고 절차를 무시하며 반대 의견을 압살하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박정희의 유신에서, 전두환의 무단통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불통과 거짓에서 권력의 집중과 독점이 가지는 비민주성과 비인간성을 목도한 바 있습니다. 가치의 집중과 독점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대다수의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악화시킵니다. 그렇기에 재벌이 경제력을 독점하고 족벌언론이 여론을 독점하며 수도권이 인재와 인프라를 독점하는 것은 반민주적이고 반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권력과 가치의 집중과 독점이 특정 세력에서 일치하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파시즘인 것입니다.

고인께서는 대통령 시절 당정을 분리하고 책임총리제를 실시하여 권력을 분산했습니다. 4대 권력기관을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손에 돌려주고 인권위를 강화했습니다. 경제력의 독과점을 막고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했습니다. 인터넷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하고 언론의 자유와 다양성을 보장했습니다. 수도의 기능을 분산하고 공공기관을 이전하며 수도권의 비상식적 집중으로 발생된 초과이득을 종부세로 환수해서 지방에 배분하였습니다. 고인께서는 분권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가 서로 균형있게 발전하고 그 균형잡힌 힘을 통해 권력과 가치가 한국 구석구석까지 분산되기를 기대하고 노력했습니다. 이 분권과 균형의 이념에는 한국 민주주의 수준을 제고하고 국민이 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는 고인의 꿈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께서 서거하셨을 당시 이코노미스트를 위시한 외신들은 고인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 하나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들은 바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아시다시피 한반도의 분단은 세계사적으로 냉전의 마지막 잔재이며 민족사적으로 한국의 모든 모순이 집약되어 있는 지점입니다. 분단과 남북의 적대적 대치는 한민족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국 내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건강한 경쟁을 친북과 극우로 대결로 왜곡시킴으로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합니다. 여전히 살아있는 국가보안법과 친북좌파의 딱지는 헌법이 보장한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고 국민의 자유로운 삶을 움츠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반도 평화, 동북아 평화는 바로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람다운 삶을 위해 필수적인 인프라인 것입니다.

고인께서는 미국 부시행정부의 강경한 자세와 북한의 핵실험 같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 동북아 평화를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6자회담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재임기간 큰 진전을 이룩했습니다. 10·4 정상회담은 6·15 시대를 넘어 남북관계에 평화경제의 지평을 여는 역사적인 회담이었습니다. 이러한 고인의 한반도 정책에 담긴 이념은 진보도 보수도 아닌 오직 평화였을 뿐입니다. 인내와 유연성, 그리고 실용까지 망라한 그 평화의 이념에는 한국인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며 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자 하는 고인의 염원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노무현적 가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서두에서 오늘 이 자리가 추모가 아닌 기념의 자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그 말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보낸 슬픔과 그리움만이 아니라 노무현적 가치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서글픔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거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이 국가의 공안적 폭압과 자본의 부당한 폭력, 언론의 횡포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리고 설사 어떤 정부가 서더라도 제 자리 걸음은 할지언정 최소한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순진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이명박 정부가 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상식적이고 후안무치한 것일까요. 이명박 정부의 1년 반은 한국의 반민주적 권위주의 세력, 반인권적 특권․반칙 세력이 얼마나 강하고 끈질기며 비상식적인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다시 모든 권력은 대통령으로 통하고 모든 권한은 대통령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의 집중과 독점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국가 공권력은 사유화되어 국민에 대한 협박과 탄압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경유착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재갈이 물리고 족벌 언론과 자본은 미디어법을 통해 여론의 독점을 꿈꾸고 있습니다.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사태에 서 있지만 남북한은 서로 1950년의 어느 날처럼 무력 충돌만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하늘에는 반민주, 반인간, 반평화의 어두운 그늘이 다시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그 그늘 속에서 우리는 노무현을 잃었습니다. 슬프고 막막하기만 합니다. 제가 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민주화 운동의 동지로 만난 지 이십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청문회 스타 노무현, 지역주의의 철벽에 도전하는 바보 노무현, 대한민국의 영광스러운 대통령 노무현, 그리고 봉하마을의 순박한 촌로 노무현까지 저와 고인은 항상 동지였습니다. 아니 그 동안 노무현은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변함없는 동지였습니다.

우리는 유신과 5공화국의 암흑 속에서도 동지를 광막한 광야에 홀로 세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의 민주정부로 생긴 우리의 방심과 안이함이 동지 노무현을 부엉이 바위에 홀로 세웠습니다.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던 환한 웃음이 제 마음에 이렇게 생생한데, 동지는 이미 간 데 없고 노란 깃발만 남았습니다. 너무나 죄스럽고 통탄스럽습니다.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은 그냥 가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 짙어가는 그늘 아래 스스로를 부엉이 바위에 세워 민주개혁세력이 지향했던 가치, 당신이 꿈꾼 세상이 부정당하는 것에 온 몸으로 저항하시며 우리를 질타하고 깨우신 것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서거는 아직도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휴머니즘의 가치가 불가역적으로 확립된 것이 아니며 아직 우리에게 가야할 길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무현적 가치에 다시 주목하고 이 가치를 우리 안에 확립하기 위한 또 다른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비록 동지는 갔을 지라도 깃발은 다시 나부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오늘의 자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떠나보내는 추모의 자리가 아니라 고인을 다시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시작이며 저 스스로와 여러분 모두의 마음에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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