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가장 먼저 타격받은 비정규직, 사회안전망 필요성 대두
당정청, 단계적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양대노총·진보정당도 지지
고용보험 적자-자영업자·특수노동자 보험료 분담 과제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실업부조 도입, 고용보험 확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실업부조 도입, 고용보험 확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이지혜 기자]코로나19 사태 이후 세계적인 경제 공황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청와대와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과제로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는 사실 코로나19 사태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의제는 아니다. 10여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언급돼 온 주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선정한 100대 국정과제에서 ‘특수 고용노동자와 예술인부터 단계적으로 고용보험을 확대하자’는 안이 들어있었다.

4차 산업으로 ‘긱 경제(Gig Economy)’가 도래하면서, 특수고용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확충돼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긱 경제란 기업들의 필요에 따라 초단기 계약직이나 임시 계약직 등의 고용방식을 사용한 경제 체제다. 

그런데 코로나19 정국에서 가장 먼저 고통 받은 것이 특수고용직 종사자,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자영업자들이다. 고용시장 내 사각지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3월 사업체노동력 조사결과에 따르면, 상용직 종사자(1555만 명)는 작년 동월보다 8000명(0.1%) 감소했지만, 임시·일용직(164만 명)과 기타종사자(107만 명)는 각각 12만 4000명(7.0%), 9만 3천명(7.9%)으로 크게 줄었다.

노동계는 해법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호소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 17일 ‘코로나19 민주노총 브리핑’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 방안을 협의하자”며 “민주노총은 전 국민 고용보험제 완성에 필요하다면 보험료 인상 등 실현 방안을 함께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보험이란 4대 보험 중 하나로, 실업에 대비해 사업주와 근로자가 공동 부담해 기금을 마련한다. 근로자가 실직하면 고용보험에서 실업급여를 받고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구직활동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는 사회보험이다.

문제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나 영세 자영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된 비율이 극히 적다는 점이다. 한국고용정보원 고용행정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고용보험 가입자는 1378만 명이다. 전체 경제활동인구 2778만명(3월 기준, 통계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2012년 법 개정으로 자영업자의 고용보험 가입이 가능해졌지만, 3월 기준 고용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자는 24731명(고용행정통계)에 그친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문 연 靑...정부·여당도 화답
21대 국회 ‘슈퍼 여당’...법안 추진 뒷받침할 듯

‘전 국민 고용보험’ 논의의 포문을 연 것은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다. 강 수석은 노동절인 지난 1일 “전 국민 고용보험을 갖추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의 과제”라고 말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가진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정치의 변화와 과제 정책 세미나’에서의 발언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대공황과 수차례의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각국이 오랜 기간 쌓아온 제도의 성벽이 이번 코로나 해일을 막아내는데 역부족이”이라며 “우리도 곧 들이닥칠 고용충격에 대비하여 하루빨리 제도의 성벽을 보수할 타임”이라고 말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4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중앙수습본부 회의에서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고용보험 확대와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국민취업지원제도와 특수고용형태 종사자 등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 등의 고용보험법 개정에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더불어 “코로나19 사태 이후의 경제·사회 변화에 대비해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 등 일하는 모든 사람이 고용 안전망을 통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책도 강구·추진해나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당도 화답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6일 최고위원회에서 “지금까지 코로나19 상황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제도 등 여러 가지 사회안전망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면서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서는 더욱 중요한 사회제도가 뒷받침돼 주어야만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주민 최고위원도 이날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등 고용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던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사회안전망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도 많은 분들이 공감해 왔던 부분”이라며 “미리 고용안전망 확충에 대한 폭넓은 고민과 과감한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낙연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도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코로나19 국난극복위 비상경제대책본부 간담회’에서 “전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다”며 “특수고용직과 예술인의 고용보험 확대 및 국민취업지원제도 법제화는 시급한 입법과제”라고 밝혔다.

한국노총 출신인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이미 2018년 11월 ‘플랫폼 노동자’ 등 특수고용 노동자를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고, 20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얼마 남지 않은 20대 국회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법안의 통과는 난망하지만, 21대 국회에서는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80석을 가지고 있는 ‘슈퍼 여당’의 힘도 법안 추진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요소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동계·진보정당도 법안 지지

노동계 및 정의당 등 진보 정당도 법안 통과를 지지하고 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을 제안한 민주노총 뿐만 아니라, 한국노총도 해당 방안을 지지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날 발표한 ‘한국노총 27대 집행부 취임 100일 성명’에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고용보험제도와 국민연금제도를 보장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4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은 당면한 코로나 실업 위기에 대한 대응일 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불안정 노동이 확대될 것을 고려할 때 실업에 대한 최소한의 소득 보장 체계로서 불가피하고 시급한 개혁과제”라고 강조했다.

심 대표는 “여당은 야당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개혁을 추진할 힘을 얻게 됐다. 정부여당은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에 책임 있게 앞장서야 한다”며 “정의당이 적극적으로 뒷받침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중당도 환영했다.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는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치권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것은 이런 의미에서 환영할 일”이라며 “일시적 유행이나 정치적 구호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 국민 고용보험’의 과제...결국 ‘재원’

다만 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가 선행돼야 한다. 결국 ‘재원’의 문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고용보험 가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적은 것은 결국 비용 문제다.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보험료율은 월평균급여의 1.6%다. 근로자가 0.8% 사업자가 0.8%를 각각 부담한다. 그런데 자영업자는 보험료 전액을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따라서 사용자가 자신인 자영업자나 사용자가 특정되지 않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의무적으로 고용보험 제도 안으로 편입시킬 때, 보험료를 어떻게 해야 할 지가 관건이다. 사업자 대신 정부가 세금으로 부담하는 방안이 있지만, 고용보험의 기금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지난해 고용보험 기금 수입은 11조 8508억 원이었고, 지출은 13조 9452억 원이었다. 적자가 2조 944억 원 규모에 달한 것이다. 고용보험 기금은 2017년 10조 2554억 원이었지만 지난해 7조3532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결국 보험료를 높여야 하는데, 이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실업급여 보험료율을 기존 1.3%에서 1.6%로 높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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