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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칼럼] 이용수 할머니를 모욕하는 사람들

'위안부' 인권운동의 초심 무너뜨리는 또 다른 가해자들

 

가끔은 알아듣기 힘든 대목도 있었지만, 두번째 기자회견에 나선 이용수 할머니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분명했다. “정대협에서 ‘위안부’를 이용한 것은 도저히 용서 못한다.” 이 할머니는 속에 품고 있던 분노와 배신감을 그렇게 토로했다. 정대협 전 대표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를 향해서는 “사리사욕을 챙겨서 마음대로 국회의원 비례대표도 나갔다”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챙긴 것 아니냐”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할머니와 윤 당선자 사이의 파국적 갈등을 우려하던 사람들은 그래도 화해의 실마리를 찾게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했겠지만, 이 할머니는 그런 것은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은 셈이다.

무엇이 이 할머니를 저토록 분노하도록 만들었을까. 기자회견을 시청하면서 내내 든 생각이었다. 섭섭한 것은 알겠지만 저렇게까지 화낼 일일까, 연세가 많이 들어서 한번 화난 것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이 들어 괴팍스럽고 고집스러워진 노인의 화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런 생각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당장 최민희 전 의원이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말했다. “윤미향 당선인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에 대해 왜 저렇게까지 거부감을 보이실까, 그 부분이 조금 솔직히 납득이 안 된다”고. 그건 점잖은 표현이고, 포털 댓글들에서는 이 할머니를 가리켜 ‘할망구’, ‘노망난 늙은이’, ‘친일파’, ‘치매’ 등의 표현을 써가며 공격하는 광경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자기가 국회의원 되고 싶었는데, 윤미향이 돼서 배 아파 그런다”, “일본으로 가겠네”, “토착왜구당에 조종당하는 인형”, “특혜를 마치 권리인 양 떠든다”, , “나는 대구다”, “결국 돈이네” 등의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이 할머니가 과거에 새누리당에 공천 신청을 했다는 얘기가 돌더니, 이번 기자회견장에  미래통합당 곽상도 의원이 자리를 했다는 얘기가 돈다. 물론 둘 다 사실이 아닌 마타도어다.

이런 순간 김어준은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어김없이 음모론을 들고 나와 이 할머니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기자회견문을 읽어보면 이용수 할머니가 쓰신 게 아닌 게 명백해 보인다”면서 “누군가 왜곡에 관여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자신들 입장을 반영한 왜곡된 정보를 할머니께 드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할머니 뒤에는 배후가 있고, 이 할머니는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기자회견문은 할머니의 생각을 잘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이 할머니의 생각을 담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기에 정치적 음모를 연상케 하는 배후 운운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어쩌다보니 이용수 할머니냐, 윤미향 당선자냐를 선택하는 게임처럼 되어버렸다. 또 다시 편을 갈라 편싸움을 하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다. 이 할머니를 사리분별 못하는 노인으로 만들려는 움직임들은 윤 당선자를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무망해 보인다. 윤 당선자는 위안부 인권운동의 대표성을 갖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러나 국민, 누구보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신뢰를 잃은 윤 당선자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윤 당선자에게 법적인 책임이 따르는지 여부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더라도,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국회 안에서 위안부 인권운동의 대표자 역할을 하기는 무리인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해결에 힘을 모으고 도움이 되는 길인지, 책임지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나온 얘기들로 문제의 줄기는 대략 짐작된다. 정대협 혹은 정의연은 언제나 할머니들을 앞세워서 모금을 했지만, 그 돈으로 도움을 받지도 못했고, 그 돈들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이용만 한 것 아니냐는 항변이다. 그리고 이 할머니는 문제 해결 보다는 증오만 키우는 관성적 운동 방식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했다. 무엇보다도 윤 당선자가 국회의원이 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듯이, 피해자들과 소통하지 않는 활동가들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묶어서 말한다면, 피해자들은 소외되고 활동가 중심의 운동이 되버린데 대한 문제제기라 할 수 있다. 

 물론 각자의 위치에 따라 생각과 해석이 다를 수는 있다. 윤미향 대표를 비롯한 정의연의 활동가들은 운동의 발전과 성취가 우선이었을 것이고, 피해자 할머니들은 자신들을 소외시키지 않는 위안부 인권운동을 원했을 것이다. 활동가들은 기억을 보존하고 세계에 알리는데 주력했고, 피해자 할머니들은 그런 화려한 업적들 속에서 정작 자신들의 처지는 달라지지 못함이 한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용수 할머니가 이런 식의 폭탄 회견을 하기 전까지 그런 간헐적인 목소리들은 이미 운동의 권력이 되어버린 활동가들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일(反日) 원리주의 위에서 성역화된 운동에는 직진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었고, 생각을 달리하는 누구의 의견도 경청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이용수 할머니를 탓할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들은 사라지고 활동가들이 중심이된  ‘운동을 위한 운동’’에 갇혀버린  정의연의 책임이 크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의 계약을 통해 시도했던 여러 인생들이 비극으로 끝나곤 했음에도 생에 대한 불굴의 의지를 보였다. “나는 오로지 갈망하고 그것을 이룩하였고, 또 다시 소망을 품고서는 그다지도 기운차게 일생을 돌진해왔다.“  파우스트의 삶은 끊임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이어졌지만, 끝없이 목표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은 여러 얼룩을 남겼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삶의 모습이었던 셈이다. 앞만 보고 달린 파우스트의 모습이 어쩌면 위안부 인권운동을 이끌어온 활동가들의 모습일 수 있다. 진작에 옆을 살피고 뒤도 돌아보며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했어야 했다.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말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할 얘기를 한 것이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간절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피해자로서 더 이상 운동의 수단이 되지 않고 스스로 주체가 되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위치에 따라 관점은 다를지언정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할머니를 모욕하고 조롱하며 두 번 죽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 참담한 일이다. 30년 위안부 인권운동의 역사는 흔들리지 말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어느 개인의 부침에 상관없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모욕은 지금 멈춰야 한다. 지금 이 할머니를 모욕주고 조롱하는 사람들, 그들이야말로 위안부 인권운동의 초심을 무너뜨리는 또 다른 가해자들이 아니겠나.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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