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경찰 최루탄 머리에 맞고 쓰러져
민갑룡 경찰청장, 이날 유족 만나 "참회 한다"
[폴리뉴스 이지혜 기자]33년 전인 1987년 6월 9일, 군부 독재 타도를 외치던 이한열 열사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 그의 죽음은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검찰은 이 사실을 숨기려했지만, 부검의의 증언과 언론보도 등으로 인해 물고문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들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철폐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4.13 호헌조치’를 통해 직선제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학생들과 종교계를 중심으로 호헌 반대 운동이 퍼져나갔다. 5월 2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경찰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조작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들은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범국민대회’를 구성하고 6월 10일 규탄 대회를 갖기로 했다.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국민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개최되던 중 시위를 하던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 군이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그는 병원으로 실려가 27일간 사경을 헤매다 7월 5일 향년 2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6.10 민주항쟁에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22개 지역에서 약 24만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당초 하루로 예정된 국민대회는 시위대가 명동성당에서 농성투쟁을 벌이면서 15일까지 이어졌다. 6월 18일에는 시위대가 ‘최루탄 추방의 날’을 선포해 전국 16개 도시에서 150만명이 시위에 참여했으며, 6월 26일에는 전국 34개 도시와 4개 군읍에서 180만명이 거리로 나왔다.
결국 당시 집권여당인 민정당의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과 대통령 선거법 개정, 김대중 사면·복권과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 등을 보장하는 8개 안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게 됐다.
경찰청장, 유족 만나 처음 사과
민갑룡 경찰청장은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열린 고(故)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 참석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인 배은심씨에게 사과했다.
민 청장은 배 씨에게 “너무 늦었습니다. 저희도 참회합니다”라고 말했다. 또 “저희가 죄스러움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며 “어머니께서 이렇게 마음을 풀어주시니 저희가 마음 깊이 새기고 더 성찰하면서 더 좋은 경찰이 되겠다”고 말했다.
경찰청장이 이한열 열사의 유족을 직접 만나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이철성 전 경찰청장은 2017년 6월 경찰청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이 열사를 거론하면서 사과의 뜻을 밝힌 바 있다. 또 이듬해인 2018년 이 전 청장은 이 열사의 묘에 추모의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검찰에서는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지난해인 2019년 이 열사의 모친을 만나 사과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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