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선언을 하고 있는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 6.29 선언을 하고 있는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 <사진=연합뉴스>

 

*제 6공화국 헌법은 올해로 33년차를 맞았다. 앞서 20대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개헌안을 내놨지만 모두 무산됐다. ‘슈퍼여당’이 자리한 21대 국회에서 개헌안은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제 6공화국을 연 6.29 선언 33주년을 맞아 그 의미와  앞으로의 개헌 논의에 대해 살펴본다.

1987년, 전국으로 퍼져나간 6월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담은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이 선언으로 제 5공화국은 끝이 나고 제 6공화국의 문이 열렸다. 

박종철 군 고문치사 은폐·조작 및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7년 4월 13일 특별담화를 통해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내년 2월 25일 본인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4.13 호헌조치다. 전 전 대통령과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은 6월 10일 전당대회를 개최하고 노태우 당시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고자 했다. 

이날 국민들은 군부독재 타도와 개헌을 요구하는 범국민대회를 갖기로 했다. 그런데 전날인 6월 9일,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국민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개최되던 중 시위를 하던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 군이 정문 앞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분노한 국민들은 10일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국민대회를 진행했으며, 이어 6월 26일에는 국민운동본부가 전국 130여만 명의 국민을 동원한 ‘국민평화대행진’을 진행했다. 

결국 29일 노태우 대표는 시국 수습을 위해 8개 항으로 구성된 6.29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에는 ▲여야 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1988년 2월 새 헌법에 의한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할 것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 보장하는 대통령 선거법 개정 ▲김대중의 사면·복권 ▲개헌안에 기본권 강화 조항 포함 ▲언론 자유 창달 ▲지방자치, 대학 자율화 등 사회 각 부문 자율 보장 ▲정당 활동 보장 ▲사회정화 조치의 강구 등 내용이 포함됐다.

노태우 당시 대표는 “위의 제안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와 당 대표를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7월 1일 6.29 선언을 특별담화 형태로 전격 수용했다. 6.29 선언은 전두환의 군사정권이 국민의 민주화 열망 앞에 내놓은 ‘항복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선언으로 4.13 호헌조치는 철회됐고, 10월 27일 국민투표(찬성 93.1%)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이후 한국 정치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향해 한 걸음 내딛게 됐다.  

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지명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 1987년 6월 10일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노태우를 지명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6.29 선언, 군부의 각본?

다만, 일각에서는 6.29 선언이 군사정부의 정권 연장을 위해 만들어진 ‘짜여진 각본’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당초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약속했으나, 김대중 후보가 10월에 독자 출마를 선언했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노태우 4명이 출마하면 유리하다는 ‘4자필승론’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야권의 분열로 ‘보통사람’을 내세웠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 때문에 군사정권이 이러한 결과를 위해 전략적으로 김대중 후보를 사면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신군부의 2인자였던 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군사정권을 끝장내고 정권교체를 이루고자 했던 민주화 세력은 크게 실망했다. 

한편 6.29 선언의 주체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자신이라고 엇갈린 주장을 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회고록 2권에서 6.29 선언을 자기가 진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이 6월 17일 노태우 당시 대표를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직선제 수용을 전제로 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지만, 노 대표가 개헌을 일언지하에 반대했다.

그는 민정당 동지들을 설득시키기 어려우며, 직선제 아래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직선제 개헌을 선택할 경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자신이 ‘임기 중 군대를 동원하는 일을 끝까지 피하고 싶다’며 ‘직선제로 해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노 대표를 설득했다는 것이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은 자신의 회고록 상(上)편 <국가, 민주화 나의 운명>에서 자신이 6월 17일 박철언 당시 특보에게 ‘직선제’와 ‘김대중 사면복권’ 지침을 전달하면서 6.29 선언 초안을 만들라고 했다고 썼다. 그는 이어 24일 전 전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만났고, “직선제를 한다고 해도 우리가 이기지 않겠느냐”고 자신의 의중을 떠보는 전 전 대통령에게 “어렵지 않겠느냐”고 반어법을 썼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글에서 “전 대통령의 태도가 자주 바뀌어왔으므로 이번에도 직선제를 한다고 했다가 번복하게 되면 그야말로 나라에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나는 전 대통령의 생각을 ‘앞으로 절대 변하지 않을 결심’으로 굳혀야겠다는 생각에서 ‘그게 되겠느냐’는 식으로 반어법을 쓴 것인데, 후에 이 대목으로 해서 내가 직선제를 반대한 것으로 오해를 사게 된 듯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6.29에 대해 “일종의 기획상품이며 각본과 감독에 전두환, 주연은 노태우였다. 노 대표는 발표만 했을 뿐이지만 모든 공은 노 대표에게 돌아가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전 정권의 치밀한 각본임에는 틀림없지만 이는 6월 민주항쟁으로 얻어낸 귀한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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