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역사연구가 박경석 “MB정부 명예원수 추대 때 ‘간도특설대 관련 행적’으로 좌절” 

2013년 8월 경기도 파주 뉴멕시코 사격장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미8군 명예사령관 임명식에서 미군 야전상의를 입은 뒤 경례하는 백선엽 장군. [사진=연합뉴스]
▲ 2013년 8월 경기도 파주 뉴멕시코 사격장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미8군 명예사령관 임명식에서 미군 야전상의를 입은 뒤 경례하는 백선엽 장군.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정찬 기자] 군 역사문제 연구가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고(故)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대표적 영웅이라는 주장에 대해 1983년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발간한 6.25전쟁 4대 영웅에 빠진 부분을 지적하면서 “대표적 영웅 반열에 오르지 못한다”고 밝혔다.

박 준장은 이날 오전 TBS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6.25 전쟁에서) 그분이 훌륭한 업적이 있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4대 영웅이다 뭐다 하는 대표적 영웅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한다는 분명한 사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백 장군을 전쟁 4대 영웅으로 불리는데 대해 “그게 잘못됐다. 1983년도 국방부와 육군본부에서 4대 영웅을 발표했다. 한강 방어를 통해 3일간의 시간 여유를 얻어 인민군 남침 저지에 성공한 김홍일 장군이 1번이다. 다음 일본군 출신이지만 춘천 6사단장 김종오 대령이 철저히 방어해서 인민군을 사흘간 저지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강과 춘천에서 선방을 하니까 남진이 저지됐다. 북한 군은 양쪽에서 몰리니까 사흘을 허비했다. 그 사흘 동안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전 개입을 선언하고, 유엔군 참전도 결정됐다”며 “그래서 4대 영웅은 우리 쪽에서는 김홍일 장군과 김종오 대령, 미국 쪽에서는 맥아더 장군과 워커 장군이다”고 설명했다.

백 장군이 낙동강 방어선 승리를 이끈 영웅으로 평가받는데 대해 “워커 장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승리로 이끌어 낸 장본인”이라며 “백선엽 본인이 명예욕이 벅차올라서 다부동 전투만이 대한민국을 구출한 것처럼 알려 ‘대한민국을 구한 것은 다부동 전투의 백선엽 장군이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낙동강 전선 240km에 한국군 5개 사단, 미군 3개 사단 총 8개 사단이 선방했다. 백선엽 장군은 8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며 “워커 장군이 훌륭하게 싸웠지만 교통사고로 죽었다. 워커 장군이 절체절명의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방어의 성공으로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기리기 위해서 워커힐이라고 했고 워커힐 호텔이 생겼다”고 얘기했다.

또 박 준장은 백선엽 장군이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는데 대해 “현행법으로 대전현충원에 묻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의 후환을 피할 수 (없다)”며 “6.25전쟁 4대 영웅인 6사단장 김종오 대령 역시 일본군 출신이었다. 그러나 백선엽 장군은 불행하게도 간도특설대에 근무했다”고 간도특설대 이력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 (백 장군이) 일본을 아주 부리나케 드나들면서 일본에서 강연하고, 기자회견하고, 회고록을 내는 동안에 간도특설대 문제를 부각시켰다”며 “그리고 일본 사람들에게 그때는 임무 완수를 위해서 할 수 없이 명예롭게 임무를 수행했다고 말한 녹음까지 한 것을 제가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 사람의 큰 호응을 받았다. 일본 사람들은 백 장군을 영웅으로 추켜세웠다”며 “백 장군이 직접 쓴 회고록에도 조선 사람으로서 조선인을 죽였다는 것에 대해 기록했고, 어쩔 수 없었다고 이야기했고, 또 조선 사람을 죽였다고 독립이 늦어진 것도 아니고, 내가 조선 사람을 안 죽이고 일본 사람과 싸웠다고 독립이 빨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때는 임무 완수를 위해 수행했다고 기록돼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백선엽 자신은 조선 독립군을 소탕한 것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이야기를 일본에서 했다. 그게 문제가 된다. 모든 기록이 하나 둘이 아니고 회고록을 비롯해서 많은 저서, 기자회견, 연설, 여기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백 장군의 이러한 행적자료는 정부에도 제출됐다면서 “이명박 정부는 백선엽 장군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려고 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 국방부서에 (자료들을) 제출했다”며 “그래서 그 명예원수 추천이 좌절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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