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되지 않은 통합의 약속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제공> 
▲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사진=연합뉴스 제공>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미국 정치와 사회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절박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은 트럼프 4년의 기간을 거치면서 극도로 분열되었다. 지난 4년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층만 바라보고 분열을 조장하는 선동의 통치를 해왔다. 그 결과 미국은 트럼프 지지층와 바이든 지지층 간의 극심한 대립 속에서 대선을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당장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되었음에도 트럼프는 대선 결과가 강탈당했다며 불복 입장을 밝히고 나섰고, 그 지지자들은 "도둑질을 그만둬라"고 외치며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대선 불복을 둘러싼 갈등은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어, 당장 코로나부터 잡아야 할 미국의 심각한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바이든은 승패의 윤곽이 드러난 이후 분열의 치유와 통합의 노력을 반복해서 강조해왔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 첫 연설의 핵심도 분열된 미국을 통합된 미국으로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극심한 분열의 늪에 빠진 미국의 국가적 제1 과제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런 말들을 쏟아냈다.

“저는 분열이 아니라 통합을 추구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I pledge to be a President who seeks not to divide, but to unify.

“앞으로 나가기 위해 우리는 상대방을 적으로 대하는 것을 중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적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미국인들입니다.”

To make progress, we must stop treating our opponents as our enemy.

We are not enemies. We are Americans.

“저는 자랑스러운 민주당원으로 선거를 치렀습니다. 저는 이제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저는 저에게 투표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I ran as a proud Democrat. I will now be an American president. I will work as hard for those who didn't vote for me — as those who did.

바이든의 다짐을 접하며 3년 반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했던 같은 다짐이 떠올랐다. 바이든이 꺼낸 말들은 이미 문 대통령의 말로 우리 머릿 속에 기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사에서 이렇게 약속했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를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감히 약속드립니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바이든의 다짐과 다르지 않았다. 분열과 갈등의 악순환에 갇혀있던 우리 국민은 문 대통령의 말에 큰 기대를 걸고 지켜보아 왔다. 하지만 그 뒤로 문 대통령은 더 이상 그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지지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비판자들에게는 언제나 냉정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취임사의 다짐이 있은 지 3년 반이 지난 오늘, 우리 대통령은 더 이상 분열의 우려나 통합의 필요성 같은 문제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조국 사태 이래로 여러 사건들을 거치며 나라와 국민이 두 갈래로 찢겨져 1년 365일 반목하고 대결해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모습이다. 국민들 간의 분열과 갈등이 갈수록 심각해져도 대통령은 나타나지 않는다. 노력했는데 안된 것이 아니라, 애당초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노력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그러는 사이 미국의 대통령이 같은 얘기를 꺼냈다. 우리 대통령의 다짐이 구두선이 되어버린 오늘, 미국 대통령의 똑같은 다짐을 접하는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문 대통령은 지지자만이 아니라 모든 미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바이든의 연설을 접하며 무엇을 떠올렸을까.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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