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신공항 건설 무산 위기 신공항 원점
지역 갈등으로 독자 공항 건설 추진 결말

17일 김수삼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검증위) 위원장이 김해신공항 추진 계획을 검증한 결과를 내놓으며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17일 김수삼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검증위) 위원장이 김해신공항 추진 계획을 검증한 결과를 내놓으며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 이민호 수습기자]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두고 15년 넘게 진행된 오랜 갈등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17일 김수삼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 위원장이 국토교통부의 김해신공항 추진 계획 검증 결과를 내놓으며 한 말이다. 검증위는 2016년 프랑스의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ADPi)의 사전타당성 조사를 거쳐 2018년 12월 국토부가 마련한 '김해신공항 건설 기본계획(안)'을 검증했다. 이후 총리실이 정부의 김해신공항 기본계획 검증에 나선 것은 지난해 6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원하는 부산시와 울산시, 경상남도 3개 지방자치단체가 김해신공항이 동남권 관문 공항 기능을 수행하기 부적합하다는 의견을 정부에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국무총리실에서 기본계획을 검증하고, 3개 지자체는 그 결과를 따르기로 합의했다. 11개월간 총리실은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검증위를 꾸려 안전, 시설운영·수요, 소음, 환경 4개 분야 11개 쟁점, 22개 세부 항목을 검증했다. 김해신공항 확장안 '무산' 결정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두고 15년이 넘게 이어온 갈등에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본지는 3회에 걸쳐 ①편에서는 김해신공항이 무산되기까지 15년 과정을 대략적으로 살피면서,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갈등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②편에서는 부·울·경과 여·야 정치권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비롯한 공항 건설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③편에서 실제 공항 건설의 전망과 난제를 짚는다. 

 

"부산에 새공항이 필요하다"
부산시가 처음 공항 건설을 공식화한 것은 1992년으로 부산도시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신공항 필요성을 언급했다. 당시 김해공항은 민간과 군이 함께 사용하는 공항이었다. 여객과 물자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민간 항공기 전용 공항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공항 주변 도시의 팽창에 따른 주민의 소음피해도 고려했다.

2000년에는 김해공항 포화를 전제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정부에 제의했으나 본격적인 논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월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산·울산 경남지역 상공인 간담회에서 신공항 건설 제의에 “적당한 위치를 찾겠다”는 답변을 하면서 시작했다. 이때부터 ‘남부권 신공항’이라는 이름이 쓰이기 시작했다.

부산 가덕도(사진 오른쪽)와 부산항 신항 일대 모습. 부산시는 김해 신공항 대신 가덕도 신공항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왼편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가덕도 신공항 예상안이다.  <사진=연합뉴스> 
▲ 부산 가덕도(사진 오른쪽)와 부산항 신항 일대 모습. 부산시는 김해 신공항 대신 가덕도 신공항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왼편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가덕도 신공항 예상안이다.  <사진=연합뉴스> 


2005년 10월에 영남권 5개 시·도가 새로운 공항 건설의 필요성에 대한 ‘대정부 공동건의문’과 협의안을 중앙정부에 제시한다. 하지만 당시는 양양공항을 비롯한 지방공항들이 대부분 적자를 내고 있었고, 특히 동남권은 KTX 개통으로 항공 수요가 급감하고 있어, 정부로서는 공항을 추가로 건설할 여지가 적었다. 

이때 KTX 개통으로 대구 공항 국내선 수요가 격감하고, 공항 부지 용도 개발에 관심이 있던 대구시가 이 논의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06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국토연구원은 2007년 3월부터 2009년까지 항공수요조사와 타당성 검토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대선 공약으로 ‘동남권 신국제공항 건설’을 내세웠고, 2008년 9월 이명박 정부는 동남권 신공항을 30대 국책 선도프로젝트에 넣었다. 

2009년 4월 국토연구원은 입지 선정과정에서 김해 등 후보지 중 부산 가덕도와 밀양 하남 두 곳으로 압축했다. 국토연구원은 비공식적으로 발표된 입지타당성 평가에서 두 곳 모두 부적합하며, 기존 김해공항 확장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9년 9월 예정됐던 입지 발표는 항공 수요 재점검, 보상비 규모 정밀 검토 등을 이유로 12월 말로 미뤄졌고, 다시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됐다. 당시 후보 지역간 갈등이 극심해져 정부가 어느 한 곳을 선택하기 힘든 정치적 부담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의 공항 건설 의지는 굳건해 보였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201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신공항은 반드시 건설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2011년 3월 30일 동남권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 평가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사업이 백지화됐다. 두 후보지는 경제성·공항운영·사회환경성 등 3개 평가분야별 총점 100점에 선정 기준인 50점에 미치지 못한 밀양 39.9점, 가덕도 38.3점을 받았다. 당시 입지평가위원회는 “두 후보지 모두 환경 훼손과 사업비가 과다해 경제성이 미흡해 공항 건설에 적합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영남 간 대립 격화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은 단순히 경제성이나 항공수요를 충족하는 최적의 공항 입지 선정을 넘어 영남 지역 내 극심한 지역 갈등을 불러일으킨 도화선이다. 당시 대구와 경북·울산·경남은 밀양에 신공항을, 부산은 가덕도 신공항 유치를 두고 치열하게 유치전을 벌였다.

2009년 3월 예정됐던 정부의 입지 선정 발표가 거듭 미뤄진 것도 지역 간 갈등을 심화시켰다. 대구·울산·경남·경북은 2010년 6월 ‘동남권 신국제공항 밀양유치추진단’을 만들고 공항 유치 논리를 홍보하는 한편 1000만 서명운동을 벌이고, 대구·경북 공무원 합숙 토론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유치 활동을 벌였다.

부산도 같은 해 7월 ‘동북아 제2허브공항 범시민유치위원회’를 발족했는데, 허남식 부산시장과 관·재계, 언론, 시민단체 등 100여명이 참여한 단체였다. 위원회는 중앙정부와 정치권을 대상으로 홍보에 나섰다. 양측은 서로 대토론회 개최를 제안하며, 홍보전을 전개했다. 

당시 경향신문은 2011년 1월 27일 부산역 광장에서 ‘바른공항건설 시민연대’가 연 ‘가덕신공항 쟁취를 위한 범시민 궐기대회’에는 1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고 기록했다. 또 26일 대구 국채보상기념공원에서는 ‘동남권 신공항 밀양유치 범시·도민 결사추진위원회’가 연 발대식에 3000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고 적었다. 

영도대교가 도개하는 가운데 11일 오후 부산 중구 유라리광장에서 부산·울산·경남 시민단체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취소하고 가덕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시민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영도대교가 도개하는 가운데 11일 오후 부산 중구 유라리광장에서 부산·울산·경남 시민단체가 김해공항 확장안을 취소하고 가덕신공항 건설을 촉구하는 시민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입지결정 연기가 몇 차례 이어지자 양측은 항의성 입장을 내놨다. 3월에 발표하지 않으면 대정부 투쟁을 벌이겠다는 각오였다. 대구를 비롯한 4개 시·도는 서울에서도 홍보전을 펴고, 지역에서 700만명의 서명을 받았다. 양측 모두 현수막을 내걸고 도시 전광판에 홍보물을 상영했다. 수만명이 동원된 군중대회를 열었다. 

영남권이 사분오열하자 정치권의 고민이 커졌다. 지역 국회의원들은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열며 공항유치에 적극 나섰지만, 다음해 총선을 앞두고 있던 한나라당은 어느 한 쪽 편도 들 수 없었다. 당시 입지 선정으로 논란이던 충청권 ‘과학벨트’ 논란까지 불거진 상황이었다. 선정 발표를 앞두고 정부에서 백지화 얘기가 나오자, 두 지역 자치단체장은 선거 때 보자며 이를 갈았다. 

전국이 싸움터가 됐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 김무성 의원은 2011년 2월 기자간담회에서 “현 상황에서어디로 가든지 반대편에 가면 다 죽게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치논리를 배제해야 한다”거나 “경제논리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으로 벌어진 심각한 지역 갈등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발언으로 임기 후반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3월 30일 김황식 총리가 사업 백지화를 발표하자, 즉시 허남식 부산 시장은 독자적인 가덕도 해상공항 추진 의사를 밝혔고, 대구·경북 지역 자치단체장들은 국제적 전문기관의 재평가를 요구하며 신공항 지속 추진 의사를 밝혔다.

 

외국에서 온 평가자가 내놓은 김해공항 확장안
이명박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에도 불구하고,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2013년 4월 국토교통부는 영남권 신공항 재추진을 공식 발표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013년 6월 영남권 5개 시·도지사는 항공수요조사 등을 위한 공동합의서를 체결했다. 국토교통부는 영남권 항공 수요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타당성 검사에 들어갔고, 2014년 10월과 2015년 1월 영남권 5개 시도는 정부의 신공항 입지 타당성 조사 결과를 수용하겠다고 합의했다. 

2016년 영남권 신공항 타당성 조사 당시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가덕도 신공항 안. <사진=연합뉴스>
▲ 2016년 영남권 신공항 타당성 조사 당시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가덕도 신공항 안. <사진=연합뉴스>


2015년 국토교통부는 교통연구원과 파리항공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사전 타당성 검토 용역계약을 체결한다. 그런데 2016년 6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온다. 국토교통부의 결론은 가덕도, 밀양도 아닌 김해공항 확장안이었다. 김해공항 활주로를 브이(V)자 형태로 증설하고 국제선터미널과 관제탑 등을 건설하는 내용이었다. 파리항공공단엔지니어링의 용역보고서는 김해 신공항, 밀양, 가덕도 순으로 순위를 매겼다.

당시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 결정이 항공안전, 경제성, 환경 등을 고려한 합리적 결론이라며 김해공항 확장방안은 “장래 영남권 항공수요에 대응하고 영남권 거점 공항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대안”이라고 평가했다.

 

김해 신공항 재검증으로 가덕도 불씨 이어간 부산
국토교통부의 결론은 두 지역 모두에게 외면받았다. 대구·경북은 이 결정을 계기로 독자적인 공항 건설을 추진했다. 2017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대구 K-2 군 공항과 대구국제공항의 통합 이전 움직임이 본격화했고, 현재 군위·의성의 공동 유치로 입지 선정을 마친 상태다. 부산은 자체 용역 결과를 들며, 가덕도 신공항안이 부적절하다는 결론이 나온 안을 수긍하기 힘들어했다. 하지만 당시 서병수 부산시장(새누리당 소속)은 “2030년 세계등록박람회 전에 신공항을 개항하려면 어쩔 수 없다”며 수용하는 모습이었다.

이후 부산의 가덕도 신공항 건설 추진 동력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2012년 18대 대선에서 “동남권 신공항이 생겨서 부산이 육해공을 아우르는 세계 중심지가 돼야 한다”며 사실상 가덕도 신공항안에 힘을 실어줬다. 훗날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동남권 관문공항과 복합도시 건설’을 공약으로 세웠다. 이에 힘입어 오거돈 부산시장도 2018년 6월 부산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국민의힘 하태경(오른쪽), 박수영 의원이 20일 국회 의안과에 국민의힘 부산지역 국회의원 15인이 공동발의한 '부산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국민의힘 하태경(오른쪽), 박수영 의원이 20일 국회 의안과에 국민의힘 부산지역 국회의원 15인이 공동발의한 '부산가덕도 신공항특별법'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8년 10월 오거돈 부산시장·송철호 울산시장·김경수 경남도지사가 합의해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검증단)을 출범시켰다. 검증단은 6개월 간 검증 과정 끝에, 지난해 4월 국토부의 김해신공항 기본계획 검증평가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놨다. 국토부의 기본 계획이 입지선정과 정책결정 과정에서 공정성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국토교통부는 김해신공항 기본계획을 2018년 12월 발표하며, 김해공항 확장안을 밀고 나갔다. 이에 대응해 오 시장은 국토부의 김해신공항 기본계획을 검증하겠다고 나섰다. 지난해 5월 동남권 관문공항 대국민보고회에서 오 시장은 “김해공항 확장안은 안정성, 소음, 환경, 확장성, 경제성 등 어느 것 하나 관문공항으로 역할을 할 수 없는데 잘못된 정책결정을 해놓고 밀어 부치는 것은 결단코 잘못된 생각”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김해공항의 수요와 동남권 물류 허브 역할을 하기에 김해공항은 부족하며, 인천공항에 버금가는 제2의 중추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남권 신공항’ 원점에 서다
국토부와 부·울·경, 대구경북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이낙연 총리가 나섰다. 국토부 스스로 자신의 결정을 뒤집을 수 없으므로 상급 기관이 중재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2019년 6월 김현미 장관과 3개 시·도지사가 합의해 “동남권 관문공항으로 김해 신공항의 적정성에 대해 총리실에서 논의하고, 그 검토 결과를 따르기로 한다”고 합의했다. 

같은 해 12월 이낙연 총리실 산하에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검증위)가 출범했다. 검증위는 안전, 시설운영·수요, 소음, 환경 4개 분야 11개 쟁점, 22개 세부 항목에 대해 21명의 전문가가 검증 작업을 진행했다. 검증위는 “치열한 논의와 현장조사, 전문가 의견청취,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법제처 등 관계기관의 유권해석을 구하는 등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17일 검증위는 이날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김해신공항 계획은 상당부분 보완이 필요하고, 확장성 등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면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놨다. △안전 △시설운영·수요 △환경 △소음분야에서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며, 미래에 예상되는 변화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사용가능한 부지가 소진돼 활주로 확장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러면서 ‘매우 타이트한 기본계획’이라는 표현을 썼다. 

2011년의 사업 무효 결정과 2016년의 김해공항 확장안, 그리고 다시 2020년 김해신공항 백지화 결론은 15년에 걸친 논란 끝에 사실상 동남권 신공항 건설 원점으로 돌아왔다. 정치권은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이 여러 이해당사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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