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지급결제 관리·감독 시각차…2009년에도 국회로 갈등 번져
금결원 한은 연계 업무, 금융위 감독서 제외…한은 “그 정도로 해결 안 돼”

모바일 결제 화면 모습. <사진=연합뉴스>
▲ 모바일 결제 화면 모습. <사진=연합뉴스>


폴리뉴스가 20주년을 맞아 제3창간을 기치로 내세우며 추진한 국회 중심 뉴스룸에서, 국회 상임위별로 쟁점이 되고 있는 법안에 대해서 취재해 보도한다. [편집자주] 

[폴리뉴스 강민혜 기자] 네이버·카카오 같은 빅테크(금융산업에 진출하는 대형 ICT회사) 기업의 계열사나 자회사 사이에 오가는 돈은 누가 감시해야 할까. 이 문제를 금융위원회가 관리·감독하도록 규정한 법안이 마련되자 은행 등 기존 금융사의 지급거래 업무를 관리해 온 한국은행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금융위가 아닌 한은에게 맡겨야 한다는 상반된 내용의 법안도 발의된 상태라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갈등의 씨앗은 지난달 2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다. 금융위가 마련한 초안을 정무위원장인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엔 한은이 '과잉규제'라고 지적한 전자금융업자의 외부청산 의무화, “중앙은행의 고유 업무를 침해한다”고 반발한 금융위의 전자지급거래 청산기관 허가·감독권 등의 조항이 담겼다.

전자금융업자는 네이버·카카오페이 같은 빅테크 기업의 금융계열사 등을 뜻하고, 지급거래 청산은 거래에서 발생하는 채권·채무를 차감해 결제 금액을 확정한 뒤 결제를 지시하는 업무(일종의 거래 간소화 업무)를 말한다. 그동안 이런 업무는 한은이 담당해왔다. 금융기관 간 발생하는 거액의 ‘지급-결제-청산’은 한은이, 금융기관과 개인·기업 등 고객 사이에 발생하는 소액의 ‘지급-결제-청산‘은 금융결제원이 맡는 식이었다. 반면 빅테크의 경우 고객의 선불충전금 등을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등 지금까지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한은이 전금법 개정안에 반발한 건 금융위가 새롭게 등장한 전자금융업(빅테크·핀테크)의 지급거래 청산 담당기관을 지정하고, 이를 직접 감독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자지급거래 청산 업무도 결국 은행 등 금융사와 소비자 간 ‘지급-결제-청산’ 과정을 관리해 온 금융결제원이 맡게 될 텐데, 금융결제원에 대한 감독권을 금융위가 가져가면 한은의 고유 업무을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위와 한은, 지급결제 관리·감독 시각차…2009년에도 국회로 갈등 번져

우리나라의 지급결제시스템 관리·감독을 둘러싼 금융위와 한은의 갈등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09년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한은법 개정안’ 사례가 대표적이다. 개정안은 한은이 지급결제시스템에 참여하는 금융사들을 조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 핵심이었다. 당시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한은의 지급결제 업무 자체를 금융위에 넘겨주도록 하는 ‘금융위 설치법 개정안’을 곧바로 발의, 한은의 지급결제 감독권 강화 시도를 저지했다.

양 기관의 갈등의 원인은 지급결제 업무에 대한 생각 차이에서 비롯됐다. 한은은 국가의 지급결제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이 중앙은행의 태생적 업무라는 입장이다. 금융사가 결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등 ‘지급-결제-청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이를 메울 수 있는 건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 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은의 생각을 뒷받침 하는 한은법 28조는 한은 금통위가 지급결제제도의 운영 및 관리에 관한 기본적 사항을 심의·의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26일 금통위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은은 금융위의 법안 개정안 전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한은의 영역을 건드리는 지급결제청산업에 관한 조항을 우려하는 것”이라며 “지급결제시스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태생적 업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위가 빅테크의 내부 거래까지 (시스템에) 집어넣으면서 금융결제원을 포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은 결국 중앙은행에 대한 과도하고 불필요한 관여”라고 강조했다.

반면 금융위는 지급결제 업무를 한은이 독점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한은이 운영하는 거액결제시스템(BOK Wire)이 아닌, 금융결제원이나 예탁결제원이 운영하는 소액·증권결제시스템의 경우엔 한은의 관리 역할이 시스템 개선 및 자료 요청하는 정도로 제한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한은법 81조 1항은 한은이 운영하는 지급결제제도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2항과 3항은 한은 외의 자가 운영하는 지급결제제도에 대하여 필요한 경우 해당 운영기관 또는 감독기관에 운영기준 개선, 지급결제관련자료 등을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14일 온라인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한은이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은법 81조 1항, 2항, 3항 등에 분명히 나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은 입장에선 빅테크가 금융결제원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한은의) 업무 영역이 커지는 것이라 한은 권한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며 “부칙에 한은이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자금융법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해 놨다"고 덧붙였다.

금융결제원 한은 연계 업무, 금융위 감독서 제외…한은 “그 정도로 해결 안 돼“

이처럼 금융위와 한은의 갈등이 지속되자, 윤 위원장은 이번 전금법 개정안에 ‘금융결제원 업무 중 한은과 연계된 업무에 대해서는 금융위의 감독·검사에서 제외한다’는 문구를 부칙으로 포함시켰다. 또한 ‘금융결제원에 대한 전자지급거래 청산업 허가 절차도 면제한다’는 내용을 명시했다. 두 기관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절충안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한은 결제정책팀 관계자는 “전금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는 변함이 없다”며 “부칙에 추가된 내용은 일전에 금융위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미 이야기가 나왔던 것으로, 당시에도 그 정도로는 곤란하다고 입장을 전달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 지급결제 청산을 제도화한다고 하는데, 청산과 결제는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중앙은행의 지급결제 제도를 통해 관할되어야 한다”며 “이를 금융위에서 관할하게 되면 기관 간 다툼 등 문제가 있고, (부칙을 통해) 한은 업무의 일부만 관할에서 제외한다고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보고, 자료제출 등의 감독업무가 일부 빠지긴 했지만, 금융위에 제재나 허가취소 권한도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의 전금법 개정안이) 불충분하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빅테크의 내부거래에 굳이 청산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이를 의무화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시각도 있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금융위가 (한 업체의) 내부거래를 감독하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빅테크, 핀테크 업체의 내부거래까지 지급결제시스템에서 (외부청산) 하도록 하는 나라는 중국뿐이고, 그런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혹시라도 내부 거래 확인이 필요하면 다른 법을 만들어 보고하게끔 하면 된다”며 “전금법 개정안에 굳이 포함시켜서 한은의 고유 업무인 지급결제 권한을 침범하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반면 금융위는 은행이 아닌 빅테크와 핀테크 업체를 통한 금융거래가 늘어남에 따라 거래 투명성 확보, 사용자 충전금의 내부자금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빅테크·핀테크 주무부처(금융위)가 이들의 ‘지급-결제-청산’ 과정을 직접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에 하나 터지는 사고를 예방하고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취지에서다.

한편 지급결제 업무를 둘러싼 금융위와 한은의 갈등은 이번에도 국회로 넘어간 모양새다. 국회 기재위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관석 정무위원장보다 일주일 가량 앞서 발의한 ‘한은법 개정안’은 디지털을 이용한 자금 이체, 결제 업무 등에 대한 결제 리스크 관리 방안을 한은에서 마련하게 하는 등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한은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윤 위원장과 양 의원의 법안이 모두 통과될 경우 금융위와 한은의 업무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향후 국회에서의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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