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회에서 우리 역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소추안 의결이 이루어졌습니다. 양승태 사법부 사법농단 당사자 중 한 명인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대상입니다. 찬성 179표, 반대 102표였습니다. 국회의원 1/3이 발의하고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는데, 이번 탄핵소추안은 161명의 의원이 공동발의해서 통과는 기정사실인 상황이었고, 여기에 18명이 추가되었습니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결정만 남았습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현직판사 길들이기다’, ‘3권분립 침해다’라고 비판하며 반대를 표했고, 특히 임 판사가 2월말로 퇴직할 예정이라 그 전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 어려운데 ‘형식적이고 무리한 사법부 길들이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제 녹취파일이 공개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국회 의결 이전에 조사한 법관 탄핵에 대한 여론은 찬반이 팽팽합니다. 2일 두 차례의 조사가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조사한 결과는 탄핵찬성이 44.3%, 반대가 45.4%였습니다. 폴리뉴스 의뢰로 미디어리서치가 조사한 결과는 찬성 46.9%, 반대 43.5%입니다. 찬반 우세가 엇갈리지만 모두 오차범위 이내입니다. 사안의 중요성이나 상징성에 대한 판단보다는 진영으로 갈라진 수준의 의사표현으로 보입니다. 그만큼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사안이라 하겠습니다.

이제 하나 하나 짚어보겠습니다.

탄핵은 공직자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직무를 박탈하는 헌법상 제도입니다. 탄핵으로 대통령 파면까지 이끌어 낸 대한민국의 법치와 민주주의 질서지만, 법관에 대한 탄핵은 단 한차례도 이루어진 적이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월권과 직권남용, 헌법에 배치되는 행태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단 두 번 사법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가 있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12대 국회 때 유태흥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지만 부결되었고, 18대 국회인 2009년 신영철 대법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자동폐기 되었습니다.

법관 탄핵에 대한 사례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헌법 106조는 판사가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도록 그 신분을 보장하고 있고, 그에 따라 법관에 대한 징계는 정직 1년이 최고입니다. 다만 헌법과 법률에 위배될 경우 탄핵소추의 절차로만 직무를 박탈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 국민들은 법관의 탄핵에 대해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이를 대신해 유일하게 탄핵의 권한과 의무를 가진 것이 국회입니다. 삼권분립 침해를 얘기하지만, 법관탄핵을 하지 않는 것이 국회의 직무유기입니다. 

21대 국회에서 역사상 최초로 법관탄핵소추안 의결(찬성 179표, 반대 102표)
▲ 21대 국회에서 역사상 최초로 법관탄핵소추안 의결(찬성 179표, 반대 102표)

그러면 국회는 왜 법관 탄핵에 몸을 사려 왔을까요? 여야를 막론하고, 사법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국회의원들의 자기보호적 대응이 가장 직접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이 의원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한 예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대법관이 맡게 되어있는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해서 각급 선관위원장을 판사가 겸직하는 구조입니다.

특히 정쟁에 의해 ‘정치의 사법화’라는 현상을 자초합니다. 입법자로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갈등에 대해 고소·고발을 남발함으로써 스스로의 운명을 검찰과 법원, 사법권력의 손에 넘겨왔습니다. 이에 편승하여 검찰과 법원은 ‘사법의 정치화’라는 정치세력화의 모습을 보입니다. 정치와 사법의 끊지 못하는 고리, 여기에 법관 탄핵 사례가 없는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혐의를 받은 법관은 모두 15명입니다. 그 중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사직으로 징계에서 벗어났고, 6명은 불기소 처리되고 나머지 8명에 대해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반대 급부로,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여러가지 사법 이슈에 개입하여 일선 판사의 판결에 직접 영향을 주었습니다. 

세월호 7시간 관련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 세월호 7시간 관련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탄핵 의결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재직시, 세월호 7시간 관련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입니다. 당시 담당 재판부에 대한 ‘지시성 조언’은 물론, 빨간 펜으로 ‘이건 넣고 저건 빼라’ 식으로 판결문을 직접 수정했다고 합니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고 비방의 목적이 없어 무죄’라는 문구를 ‘박근혜 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되지만…’식으로 변경했다고 합니다. 

임성근 판사의 1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직무상 범죄인 ‘직권남용’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형사상 무죄를 판결했습니다. 재판에 개입할 권한 자체가 없으니 ‘직권남용’이 아니라 ‘월권’행위이고, 월권은 직무상 범죄는 아니라는 해석입니다. 다만 재판의 독립을 침해하는 헌법위반행위를 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재판의 독립 원칙과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헌법위반 행위로 탄핵의 대상은 될 수 있다고 평결한 것입니다. 결국 헌법위반 행위에 의한 탄핵소추가 없으면 사법농단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2월말까지 헌재의 심판이 가능한가를 두고 탄핵의 실효성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나 검찰 수사와 재판을 거치며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는 거의 완료된 상황이고, 헌재가 사건의 중대성과 상징성을 고려해 ‘임성근 판사의 위헌 행위 여부’ 본안판단으로 직접 가서 신속하게 종결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의 사례를 보면 2007년 BBK특검법 권한쟁의심판은 사건 접수에서 판단까지 14일 만에 끝낸 적이 있습니다. 또한 1992년 14대 총선 당시 무소속 후보가 낸 국회의원 선거법 헌법소원은 선거일정을 감안해 18일만에 결론 냈다고 합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2번째 탄핵 위기에 처한 트럼프 前 대통령
▲ 미국 역사상 최초로 2번째 탄핵 위기에 처한 트럼프 前 대통령

새 정부가 출범한 미국에서는 트펌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논쟁이 뜨겁습니다. 1월 20일 임기를 마치는 대통령을 두고, 미국 하원은 1월 13일 탄핵안을 의결했습니다. 탄핵을 최종 결정하는 상원도 이미 퇴임한 대통령이지만 그에 대한 탄핵절차를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퇴임한 대통령도 탄핵의 대상이 되며, 트럼프의 공직 출마를 금지해 본보기를 삼겠다는 것입니다. 내란을 선동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외면하는 것은 의회가 헌법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은 9명 중 6명의 찬성으로 결정됩니다. 사건의 중대성과 상징성을 감안하여 가급적 빨리 절차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불가피하게 지체되는 경우라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는 충분히 참고할 만한 사례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탄핵안 발의에 앞장선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은 2017년 법원행정처 재직시 사법농단 의혹을 제기하고 사표를 던졌던 인물입니다. 이 의원은 탄핵 추진에 대해, 법관 탄핵 자체가 아니라 법관 탄핵을 통한 사법부의 신뢰 회복이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말처럼 역사상 최초의 법관 탄핵은 사법부의 실질적 개혁을 추동할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2018년 11월 19일 전국 법관대표회의는 사법농단 관련 법관의 탄핵소추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법관 사회의 관료화, 반 헙법적 행위에도 처벌받지 않는 특권적 행태,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워온 구태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국회 역시 정쟁의 차원을 벗어나서, 국회 본연의 헌법적 책무를 다하고 삼권분립의 국가질서를 공고히 하는 관점에서, 본 탄핵소추의 결과를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판사들 저변의 의견을 수렴한 사법부 개혁방안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이미 발의된 법안을 포함해서 사법부 개혁과 관련한 각종 입법에 속도를 더해주길 기대합니다. 그것이 국민의 대의기관 국회가 해야 할 책무입니다. 촛불 시민혁명의 준엄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2016~2017년 연인원 1600만명이 운집한 촛불시민혁명 <사진=폴리뉴스>
▲ 2016~2017년 연인원 1600만명이 운집한 촛불시민혁명 <사진=폴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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