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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칼럼] ’조국의 시간‘은 없다

책을 내기 전에 했어야 할 일

가급적이면 조국 전 장관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온 가족이 고생을 치르고 있는 사람이다. 배우자는 감옥에 있으면서 2심 재판을 받고 있고, 딸은 입시부정 문제 때문에 입학 취소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법을 어긴데 대한 책임이라고 하지만, 누구에게든 가족이 소중함을 알기에 마냥 모질게 그를 비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네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는 그저 재판의 결과들을 지켜보며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

지켜보는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 전 장관은 『조국의 시간』이라는 책을 냈다.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책 소개를 통해 그가 어떤 얘기를 했는지를 파편적이나마 대략 알 수 있었다. 자신과 가족들이 당한 수사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 수사를 한 ’윤석열 검찰‘을 향한 적개심, 그리고 정치적 재기에 대한 의지가 담겨있는 책이다.

“검찰은 압수수색 이후 내가 사모펀드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를 접지 않고, 나와 내 가족 전체에 대한 전방위적 저인망 수사로 나아갔다. ‘멸문지화’(滅門之禍)의 문을 연 것이다.”(55-56쪽)

“수사가 아니라 사냥이 시작되었다. 수십 개의 칼날이 쑤시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가족의 살과 뼈가 베이고 끊기고 피가 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보아야 하는 절통(切痛)이었다.” (159쪽)

“죽을힘을 다해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내디딜 겁니다. 언제 어디까지일지 모르지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볼 생각입니다.” (239쪽)

“나는 죽지 않았다. 죽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 나의 흠결을 알면서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생환(生還), 그것이면 족했다.” (279-280쪽)

“날벼락처럼 들이닥친 비운(悲運)이지만, 지치지 않고 싸우겠습니다. 송구하고 감사합니다.” (302쪽)

“윤석열에게는 촛불혁명보다 검찰 조직의 보호가 더 중요했다. 민주보다 검치(檢治)가 우위였다. 그는 영웅에서 반(反)영웅으로, 공무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345쪽)

송구하다고는 했지만,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사과가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강변이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정치적 목적을 가진 검찰이 그렇게 사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사실을 다투는 재판이 진행 중이건만 조 전 장관은 여전히 사실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과 주장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 쿠데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걸 보노라면,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의 의식세계를 읽게 된다. 그에게 묻고 싶다. 드러난 사실 앞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조국의 책은 예약 주문만으로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그의 지지자들이 출간을 계기로 다시 결집하는 모습이다. 언론과 SNS는 책 출간을 둘러싼 성원과 비난으로 온통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니 ‘다시 조국’이다.

당장 난처하게 된 것은 더불어민주당이다.  4.7 보궐선거에서 그 당의 2030 의원들은 “조국사태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했다. 물론 문자폭탄에 겁먹고 하루만에 없었던 일이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민심이 어디로 가있는가를 알고는 있기에 가능한 반응이었다. ‘조국’ 얘기를 하면 할수록 손해임을 아는 민주당으로서는 이제는 조국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싶어하지만, 그의 책이 나오면서 다시 발목이 잡혀 늪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장 경선을 의식해서 강성 당원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민주당의 대선주자들은 조국을 엄호하고 나섰다.

“가족이 수감되시고, 스스로 유배 같은 시간을 보내시는데도 정치적 격랑은 그의 이름을 수없이 소환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미안하다.” (이낙연 전 대표)

“공인이라는 이름으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발가벗겨지고 상처 입은 그 가족의 피로 쓴 책이라는 글귀에 자식을 둔 아버지로, 아내를 둔 남편으로 가슴이 아리다.” (정세균 전 총리)

“조국의 시련은 개인사가 아니다. ‘조국의 시간'은 우리의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추미애 전 장관)

이러니 대선을 앞둔 민주당이 조국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다시 어렵게 되었다.  돌고 돌아 결국 제 자리로 가는 모습이다. 조국의 유난히도 강한 나르시시즘이 민주당을 다시 곤혹스럽게 만드는 역설적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그는 자신의 언행으로 인한 부담을 고스란히 안게 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배려를 망각할 정도로 한없는 자기애에 갇혀버린 것일까.

책을 내는 것은 누구이든 자유이다. 하지만 법을 연구했고 한때 법치를 책임졌던 사람이라면, 먼저 했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그것은 진실을 밝히려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고, 드러난 진실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보이는 일이다. ’형사소송법 제148조‘를 말하며 300번의 증언 거부를 하고, 재판이 진행 중인데도 이렇게 '장외투쟁'을 계속하는 모습은 그런 겸손한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이러기에 앞서, 571쪽에 달하는 판결문으로 자신들의 거짓말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11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린 1심 법원 판결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 한번 쯤은 있어야 마땅했다.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입으로 ’촛불 십자가‘를 말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골고다 언덕길을 조국과 그의 가족이 걸어가고 있다”던 음식평론가 황교익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십자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대체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예수가 언제 그런 거짓말들을 했던가.

독일의 심리학자 야야 헤릅스트(Jaya Herbst)는 『피해의식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 ‘피해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한다.

“과거의 상처나 절망으로 인한 정신적 결핍감에서 생긴 피해의식은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태도를 지닌다. 피해의식을 가진 이들은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으로 항상 불만에 가득 차 있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우리는 떳떳하다는 보상 심리를 낳고, 지지자들에게 동정을 유발하며, 그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둔다. 과거 나치 정권은 ‘유대인은 독일인을 착취하는 가해 자’라는 의식을 국민들에게 주입시켰다. 그 결과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유대인에게서 자신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만 갇히게 되었다. 이러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통한 선동은 그 사회가 지켜왔던 옳고 그름의 가치를 전복시킨다. 반성없는 피해자 코스프레가 그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이유다.

'윤석열 검찰'이 일으킨 쿠데타였다는 조국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한들, 자신과 가족들의 잘못 또한 컸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닫고 근신하며 재판의 결과를 지켜본다. 그렇게 고개 숙이는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억울함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국은 너무도 태연하게 SNS 활동을 하고 다시 책을 써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고 나선다. '배반당한 촛불'을 토로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건만 태연하게 '촛불시민'을 말한다. 청년들의 마음에 상처를 준 가해의 기억들은 그의 머리 속에서 지워졌고, 자신이 겪은 피해의 기억들만 절절히 남아있다.  그러나 다시 자신의 입으로 ’조국의 시간‘을 말할 때가 아니다. 이제는 ’국민의 시간‘이어야 한다. 온 나라를 갈갈이 찢어놓은 지난 시간도 모자라 다시 ’조국의 시간‘이라니. 이 나라에 ’조국의 시간‘은 분열과 갈등의 시간이다.  그런 시간을 다시 맞고 싶은 생각이 내게는 없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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