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미국 백악관>
▲ <출처=미국 백악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이후 전개한 정책은 미국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의 관심사였다. 올 초만 해도 미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마치 흑사병이 창궐하던 중세 유럽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3천여만명 감염, 사망자 60여만명을 헤아리는 참혹한 상황. 크나큰 인종갈등과 대공황 같은 경제적 파탄까지 겹쳤다. 전임 대통령의 빗나간 정책까지 겹쳐 미국 국내외 정치는 그 근간이 크게 흔들린 상태였다. 의회가 점령당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며 턱 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지난 70여년 간 굳건하게 유지되어온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이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마치 무너져가는 로마제국 같은 이미지가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오버랩 되고 있었던 게 현실이었다.

이제 바이든 정부는 100일을 넘어 200일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바이든 정부의 성적표는 꽤 괜찮은 편이라는 게 미국 언론들의 평가이다. 일단 코로나19를 진정시켰고, 경제성장도 예상을 뛰어넘는다. 오히려 물가상승,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정도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대 실책으로 꼽혔던 미국의 추락된 대외 위상도 순식간에 회복시켰다.

12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 12일(현지시간) 오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개최된 G7 정상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문재인 대통령,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출처=연합뉴스>


G7정상회의, NATO정상회의, 미러정상회의 등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지역, 심지어 러시아와도 공동이해관계를 확인했다. 미국의 대중 대응전선이 다시 복원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문제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미국의 이런 변화를 들어 “중국을 과소평가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최소한 몇 년간에 걸친 중국의 공격적인 대미전략은 실패한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 언론들의 톤도 많이 달라졌다. 취임 직후에는 "둘로 쪼개진 미국 민심", "산더미처럼 쌓인 난제" 등의 기사 제목이 주류를 이뤘다. 지금은 "우리가 예전에 알던 바이든이 아는 것 같다" 또는 "아메리카 르네상스를 이야기해야 할 단계가 되는 것 아닌가" 등으로 매우 우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렇게 성공을 거둔 바이든표 정책 모두 관통하는 개념은 무엇일까. 일부 언론에서는 '바이든 독트린'이라고 칭한다. 또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미국 국가안보담당보좌관의 이름을 빌어 '설리번 모델'이라고도 한다. 요약하자면 '바이든 독트린' 또는 '설리번 모델'은 취임 이후 쏟아낸 바이든 행정부의 수많은 대내외 정책을 한마디로 지칭하고 있다.

바이든 독트린으로 알려진 중산층 부활 비전을 전개한 인물로 꼽히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출처=백악관>
▲ 바이든 독트린으로 알려진 중산층 부활 비전을 전개한 인물로 꼽히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 <출처=백악관>


하지만 그 모든 정책이 단 하나의 최상위 목표를 지칭하고 있는 점은 매우 특이하다. 그것은 바로 무너진 미국의 중산층을 살려내자는 것이다. 국가위기 속에 거대한 구조적 개혁을 겨냥한 정책목표로서는 다소 의외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우리도 음미해야 할 중요한 대목이 숨어 있다.

사실 바이든 행정부를 받쳐주는 미국 내 지지기반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한편으로는 미국 진보지성을 대표하는 90대 석학 놈 촘스키 교수, 그 반대편으로는 극우보수 네오콘의 최고 이론가 빌 크리스톨까지 아우른다. 버클리 출신들이 대거 자리잡은 루스벨트인스티튜트까지 한 몫을 하고 있다.

이런 모든 이들이 가진 열망의 공통분모를 핀셋처럼 집어내 꺼내든 것이 바로 미국의 중산층을 다시 살려내고 키우자는 정책목표이다. 민주당 내 온건성향의 보수와 당 내외 진보진영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목표이다. 중산층 기반을 최대한 확충해야 미국경제도 살아나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도 복원된다는 인식이다. 이를 기반으로 '팍스 아메리카나'로의 완전한 복귀가 가능해진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미국의 중산층이야말로 바로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의 최종목표가 되고 있다. 그래서 모든 사안에 대응하는 만능잣대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며 붕괴된 미국 중산층을 이제 다시 복원하자는 정책에 야당인 공화당도 대놓고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 네거티브와 마초정치로 점철된 트럼프 시대 이후 반 트럼프와 친 트럼프로 선명하게 갈라졌던 미국여론도 이 정책목표에 솔깃할 수밖에 없다.

이 만능잣대는 국내만이 아니라 국제정치와 경제문제에도 적용되고 있다. 백악관은 글로벌 반도체, 배터리 문제에도 중산층 잣대를 들이댄다. 미국의 반도체와 배터리산업 육성 및 발전이 미국 중산층의 복원과 육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보문제에 있어서도 미국 중산층을 기준으로 한다. 동맹의 강화와 아프간 철수 모두 여기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막대한 전비와 청년들의 목숨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미국 중산층에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워싱턴 일부 싱크탱크에서는 이런 잣대에 기대어 한 때 주한 미군 유지비용 등 미묘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 중산층이라는 만능잣대가 이처럼 미국의 국내 정치경제와 국제정치까지 적용되는 데에는 일각에서 이의를 제기되기도 한다. 복잡하고 민감한 사안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큰 무리 없이 작동하고 있고 큰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지난달 2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 지난달 2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한국전쟁 명예 훈장 수여식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물론 바이든 정책의 성공여부를 판단하기에는 200일도 안되는 기간은 아직 이르지만,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중산층 복원은 사실 원대한 비전이다. 현실화하려면 'made in USA'라는 미국산 물건을 전세계 사람들이 앞다퉈 사야 한다. 이는 미국 전성기였던 1950~1960년대와 같은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에게 이런 만능잣대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정책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그 정책이 겨냥한 최상위 목표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환자의 상태를 원인이 아닌 증세만으로 치료하는 대증요법이었던 것은 아니었나. 과연 국가와 국민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었나. 그런 생각들이 최근 국민의 뇌리 속에 스멀스멀 자라나 차츰 자리 잡아가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이런 가정이 맞는다면 이미 서울 및 부산시장 재보선 실패를 겪은 여권으로서는 단순한 정책 조정만으로는 어렵다. 과연 진정한 정책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되새겨보고 좌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국가모델과 시스템을 깊게 생각하고 그에 기반을 둔 정책목표를 정해 정책을 설계했더라면, 표심이 순간적으로 변화한 듯 보이더라도 예전과 같은 주장을 자신 있게 밀어붙일 수 있다.

표심에 맞춘다고 정책을 일부 변경해서 지지도를 높여봐야 일시적 효과에 불과할 수 있다. 현재 대선후보 경선의 시기 논쟁이 여권에서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여야를 막론하고 어떤 정책으로 나라와 국민을 이끌어가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득표에 밀려 뒷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국민의 표심을 국면전환용 선심성 정책으로 낚을 수 있다고 본다면 오산일지 모른다. 민심이 정치를 다른 시각에서 살펴보고 있다는 느낌이있지 않은가. 그런 만큼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최상위 정책목표를 최대한 잘 설정해야 할 시점이 되고 있다. 내년 3월 대권을 잡고자 한다면 우리나라 현안 어디든 적용할 수 있는 만능열쇠가 있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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