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역대급 폭우가 쏟아져 물난리가 났다. 특히 서울 지역에서 침수와 수해의 피해가 컸다. 이를 둘러싸고 정치권에서는 책임을 묻는 목소리들이 크게 울려 퍼진다. 서울시장도, 대통령도 국민의힘이니 당연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아비규환 와중에 대통령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전화로 위기 상황에 대응했다는데 대통령이 무슨 스텔스기라도 된단 말인가.”(박홍근 원내대표)
“대통령이 어디로든 이동을 못 하게 갇혀 있었단 건 경호상 심각한 사건이 생긴 것이다. 이건 경호실장 경질 사유다." (윤건영 의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고민정 의원)
“몇 개월 사이에 정말 나라가 없어진 기분이다.” (강선우 의원)
집중 호우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이나 현장으로 가지 않고 사저에서 상황을 지휘한 것에 대해서는 물론 판단들이 다를 수 있다. 대통령이 노란 점퍼를 입고 상황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주는 심리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로 애당초 퇴근을 안했다면 모르겠지만, 당시 폭우가 쏟아지던 상황에서 대통령이 경호인력들을 대동하고 이동했을 때의 문제도 분명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복기를 통한 검토와 매뉴얼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대통령이 자고 있거나 연락이 두절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정상적으로 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면, 그것을 갖고 대통령이 재난 대처에 손을 놓아버린 것처럼 비난하는 야당의 공격은 과도해 보인다.
민주당과 그 지지층에서는 서울시의 올해 수해방지·치수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며 오세훈 시장의 책임이 따르는 인재(人災)임을 부각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시의 수방·치수 대책과 관련된 여러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민주당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 드러났다. 올해 수방 예산이 크게 삭감되던 과정은 민주당이 절대 다수였던 서울시의회의 입장 때문이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2011년 우면산 산사태 이후 당시 오세훈 시장이 강남역과 신월동 등 7곳에 대심도 배수 터널 건설을 제안했지만, 박원순 전 시장의 취임 후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산되었다. 이번 폭우로 침수 혹은 수해 피해가 컸던 지역에는 무산된 6곳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권과 서울시장이 바뀐 뒤 이번 수해를 겪고 나서야, 중단되었던 대심도 배수터널을 다시 짓기로 가닥이 잡히게 되었다.
사실 하늘에서 기록적인 물폭탄이 쏟아지는 이번 같은 집중호우 속에서 무사할 대도시는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10년, 20년 이상을 내다보며 진행해야 하는 수방·치수 정책의 책임이 어느 시장, 어느 정당에게 있는가를 칼로 무 베듯이 잘라 말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10년, 20년씩 걸리는 대규모 공사들이 지연되거나 중단되었다면 그것이 누구의 책임인가를 꼭 집어 말하기도 어렵다. 단계마다의 책임의 소재가 다를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현직 시장인 오세훈 시장의 책임도 있을 것이고, 3선이었던 박원순 전 시장의 책임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를 맞아 예상하지 못했던 자연 재난들이 닥쳐오는 상황에서 정파적 사고에만 갇혀 누구의 책임인가만을 놓고 싸우는 정치권의 모습은 무척 부적절해 보인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집중해야 할 것은 이런 수해의 반복을 막을 정책대안을 제시하며 중지를 모으는 일이지, 상대 편에게 책임을 씌우기 위한 정치공세에 매달리는 일은 아닐 것이다. 아직도 비가 내리는 와중에 ‘오세훈 탓’이냐 ‘박원순 탓’이냐를 놓고 싸우고 있는 광경은 볼썽 사납다. 윤 대통령이 사저에서 지휘를 한데 대한 민주당의 총공세도, 관심이 수해 보다는 정권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히는데 가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물론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사저로 정시 퇴근을 했던 판단, 반지하 침수 사고 현장의 사진을 대통령 홍보에 사용한 대통령실의 무개념 같은 문제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서툴렀던 일들은 분명 대통령실이 자성하며 돌아봐야 할 일들이다. 다만 재난의 와중에서도 상대를 악마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재난의 정치화’ 때문에, 오히려 집중해야 할 본질적 문제들이 가리워져 버릴지 모른다는 우려를 버릴 수가 없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폴리뉴스>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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